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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론과 쟁점
 
여론과 쟁점
정희원 / 국립국어원

  1. 머리말

  이 글의 목적은 2004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비친 국어의 모습을 정리하는 것이다. 신문 기사와 방송 보도를 통해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국어 관련 주제들이 어떤 것이었나 살펴봄으로써 우리말에 대한 언중들의 주요 관심사와 여론의 동향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주요 조사 대상은 경향신문, 국민일보, 내일신문, 동아일보,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 서울에서 발간되는 11개 종합일간지와 KBS, MBC, SBS, EBS 등 지상파 4개 방송사 프로그램이다.


  2. 쟁점과 여론 -신문 보도를 중심으로

   2.1. 주요 쟁점

  신문 등 언론이 하는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특정한 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키는 것이다. 단순히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여 전달해 주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문제들을 부각시켜 공론화한다. 공론화의 대상이 되는 주제는 각 언론 기관에서 직접 판단하여 정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문제들이 여론에 의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마련이다. 이 절에서는 2004년 한 해 동안 신문 보도를 통해 주요 쟁점이 되었던 국어 관련 문제들을 정리해 보겠다.


      2.1.1. 서울시 정책 관련

         2.1.1.1. 영어 공용화

  3월 8일자 <서울신문>은 서울시의 ‘영어 공용화’ 계획을 보도하였다. 그에 따르면 서울시는 2004년 하반기부터 각종 공고나 공시문을 한글과 영어로 병기하기로 하는 등의 ‘영어 공용화’ 및 ‘영어 상용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생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와 함께 학생과 시민들의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계획, 시 공무원의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 등이 보도되었다.
  처음 보도가 나간 후 <한겨레>, <세계일보>, <동아일보> 등이 영어 상용화에 대한 후속 조치와 독자들의 반응을 보도하면서 이 문제를 쟁점화하였다. <한겨레>(4. 26.)는 이러한 조처가 “서울이 세계 일류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정책”이라는 서울시 관계자의 설명과 함께 한글학회·한글문화연대 등의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의 반대 의견을 보도하였다(「서울시 ‘영어공화국’ 만드나」). <세계일보>는 서울시가 시 공무원들에 대해 추진하고 있는 ‘공무원의 외국어 인사 가점 제도’의 내용을 보도하면서 서울시 공무원들의 반응이 회의적이고 충분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실현될지는 미지수라는 내용의 보도를 하였다(「“업무는 산더미인데 영어 공부는 언제 하라고 …” 서울시 공무원들 외국어 가점제 반발」, 5. 11.). <한겨레>(5. 4.)와 <동아일보>(5. 12.)는 서울시의 영어 상용화에 대한 독자 및 네티즌들의 반응을 찬성과 반대로 나누어 각각의 논리를 정리하여 소개하는 보도를 하였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영어 상용화는 세계적 추세로서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길이라는 논리를 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일류 도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른 나라 도시들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국제화 시대일수록 우리말을 중심으로 우리 문화를 발전시켜 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2.1.1.2. ‘서울’의 중국어 표기

  서울시는 ‘서울’의 중국어 표기를 지금까지 써 오던 ‘한성(漢城)’에서 ‘서울’과 발음이 비슷한 다른 한자로 바꾸어 보고자 하였다. 1월 27일자 <세계일보>는 漢城(중국어 발음 ‘한청’)이라는 표현에는 중국이 서울을 자국의 지방 정부로 여기는 시각이 담겨 있어 우리의 수도 이름을 표기하는 것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과 함께 정부 차원에서 대체 용어를 발굴해야 할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후 서울시는 서울의 중국어 표기를 바꾸기 위해 ‘서울 중국어 표기 개선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개선안을 공모하였다. 시민들이 제안한 1,000여 건의 후보 중에서 서울시는 首爾(서우얼), 首午爾(서우우얼), 首沃(서우워), 中京(중징) 등 4개를 후보작으로 선정하였으며,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한 투표를 통해 首爾(서우얼)과, 首午爾(서우우얼) 두 가지를 최종 후보로 선정하였다. 5월 말까지 서울의 새 중국어 표기는 최종 확정 절차만 남겨 두고 있어 곧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처럼 보였다. 이와 관련하여 몇몇 신문에서는 중국인들도 ‘서울’의 우리말 발음에 가까운 한자를 사용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서울시의 입장을 옹호하는 글을 싣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종안 확정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중국 측의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가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게 되었다. 7월 29일자 <서울신문>은 중국 측의 무반응과 외교통상부의 눈치 보기 때문에 서울의 표기 개선 작업이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8월 11일에는 서울시가 독자적으로 표기를 바꾸더라도 사용 당사자인 중국이 이를 외면할 경우 ‘반쪽 표기’로 전락할 우려가 있으므로 중국과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한중 수교일인 8월 24일 전후에 발표하려던 서울시의 애초 계획은 중국과의 사전 협의가 없어서 이루어질 수 없으리라는 예측이 여러 신문을 통해 보도되었다. 특히 <서울신문>(9. 8.)은 데스크 칼럼을 통해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함으로써 서울시의 대처 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우선 최종안으로 거론되는 한자가 너무 어렵다는 점, 표기안을 홍보하기 위한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과 함께 가장 큰 문제는 중국 정부의 냉담한 반응임을 지적하면서 중국인들이 새 표기안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서울시는 더욱 철저한 준비를 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후로는 한동안 서울의 중국어 이름과 관련한 보도가 없다가 11월 29일 <한국일보>에 중국 측의 미온적인 반응 탓에 최종 결정이 연말까지 미뤄진다는 것이 보도되었다. 그러나 이후로는 특별히 추진된 것이 없어 이와 관련한 논쟁은 해를 넘기게 되었다.
  서울시 중국어 표기 개선 소위원회는 그 밖에도 한강의 한자 표기를 漢江에서 韓江으로 변경하자고 제안하였다(<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국일보>, <국민일보> 등 3. 11.). 한강의 ‘漢’자가 중국의 한(漢)나라를 연상시키므로 ‘韓’자로 바꾸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에 대해 서울시는 타당성이 있다고 보아 변경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서울의 중국어 표기인 漢城의 새 이름이 결정되면 시 지명위원회와 시민 설문조사 등을 거쳐 건설교통부 중앙지명위원회에 한강의 한자 표기 변경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의 중국어 표기가 중국 측의 비협조로 표류하면서 한강의 표기와 관련한 논의도 더는 진척이 되지 않았다.


         2.1.1.3. 서울 버스 영문 도안

  서울시는 7월 1일부터 대중교통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기로 하고 버스의 새 디자인을 공개하였다. 기능별로 색깔을 달리한 시내버스 겉면에 큰 알파벳으로 각 색깔의 영어 단어 첫 글자인 G(Green), B(Blue), R(Red), Y(Yellow)를 표기하였는데, 이런 조처는 시민들에게 큰 비난을 받았다. 대부분의 신문이 6월 2일자 및 3일자로 이와 관련한 내용을 보도하였는데, 그 제목을 보이면 아래와 같다.
「R은 뭘 말하지? B는 또 뭐야? ‘알쏭달쏭 버스 디자인’에 시민들 비판」(조선일보)
「서울시 4가지 색깔별 버스 분류 추진에 시민들 비판」(한겨레)
「버스 알파벳이 색깔 표시한 거라고? ‘엉뚱한 서울시’ 시민들 실소」(경향신문)
  시민들은 서울시 인터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버스 디자인을 당장 바꾸라는 등의 비판적인 글을 많이 올렸다. 관련 시민 단체에서도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였다. 한글문화연대는 서울시에 ‘버스 도안 시정 요청서’를 보내 영문자 표기를 철회하도록 요청하였으며, 한글학회는 ‘서울시 영어 공용화 당장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해 서울시의 정책을 비판하였다.
  비난 여론이 빗발치는 가운데 서울시는 홈페이지에 자신들의 입장을 해명하는 글을 올렸다. 시는 “기능을 상징화하는 엠블럼을 반드시 한글로만 하라는 것은 편향된 생각”이라며, 영어 대문자 표기는 홍보를 위한 디자인 전략이므로 변경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의 이와 같은 설명에도 시민들의 비난은 줄어들지 않았다. 특히 시민단체인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은 “서울시가 영문 표기를 계속 부추긴다면 이명박 서울시장을 올해의 ‘우리말 으뜸 훼방꾼’으로 선정하겠다.”라고 경고하였다.
  시민들의 계속되는 비난 여론에도 서울시가 버스의 영문 도안을 고집하자 시민 단체들은 헌법 소원과 감사 청구 등의 실력 행사를 시작하였다. 한글문화연대, 세종대왕 기념사업회 등 20여 개 한글 단체들은 “서울 시내버스에 새겨진 영문 도안이 우리 국민의 언어생활에 혼란을 일으켜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라며 이를 고치기 위한 헌법소원을 9월 22일 제출하였다. 이 헌법소원에는 한글 단체 대표와 소속 회원 외에 인터넷을 통해 참여 의사를 밝힌 시민 200여 명 등 500명이 공동 원고인단으로 참여하였다. 이와 별도로 한글학회는 서울시가 시내버스 등에 불필요하게 외국어를 남용함으로써 한글을 짓밟고 있다며 감사원에 감사 청구서를 내기도 하였다.
  이 같은 비난이 계속되자 서울시는 10월 4일 버스 옆면에 큰 글자로 표기된 알파벳을 지우겠다고 밝혔다. 대신 그 자리에는 ‘서울 사랑’이라는 캠페인 광고를 붙이기로 하였다. 그러나 알파벳 표기를 완전히 폐지한 것은 아니며, 뒷면의 작은 표기는 계속 유지하였다. 결국, 시민들의 비난 여론에 못 이겨 버스 옆면의 영문 표기는 석 달여 만에 철회되었다. 그러나 한글날을 맞아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은 우리말 가꾸기 으뜸 훼방꾼으로 서울시를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선정 사유는 “세계화를 핑계로 영어를 상용화하겠다며 시내버스에 로마자를 대문짝만 하게 써 붙이고, 각종 인쇄물에도 영어를 도배질한 것”이라고 겨레 모임 측은 밝혔다.


      2.1.2. 기업이 주도한 한자 학습 열풍

  한자 학습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풍성한 한 해였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러한 논의를 기업들이 앞장서 촉발시켰다는 것이다. <세계일보>(1. 15.), <한국일보>(1. 20.) 등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 5단체가 2004년부터 신입 사원 채용 시험에 한자를 포함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단체들은 또한 소속 회원사들인 일반 기업에도 신입 사원 채용 때 한자 구사 능력을 반영하도록 적극 권장하기로 하고, 한자가 병기된 명함을 사용하자는 캠페인도 전개하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재계의 이 같은 결정을 두고 업계와 학계는 물론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도 찬반양론이 엇갈렸다. 일부 기업 및 전경련 등 경제 단체들은 중국, 일본 등 한자 문화권 국가와의 교류가 증가하는 시점에 한자 지식은 필수라는 논리를 폈다. 이에 대해 한자 관련 단체들은 한자를 제대로 알고 써야 우리 말과 글도 발전할 수 있다며 재계의 조처에 환영의 뜻을 나타내었다. 반면 한글학회 등 한글 관련 시민 단체는 ‘불필요한 이중 부담’이라며 반대를 하였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각기 다른 한자를 쓰는 만큼 국제 교류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중국어나 일본어 능력자를 선발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 반대의 논리였다. 또 채용 시험에 한자를 포함할 경우 사교육비 증가 등 사회적인 비용이 추가될 것이 우려된다고 하였다. 이미 한자 시험을 치르고 입사한 직원들의 반응도 대체로 한자 능력과 업무가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아 불필요하다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4월에는 서울대 학생들의 한자 실력이 형편없다는 보도가 나와 다시 한번 한자 교육 강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다. 서울대가 대학 국어 과목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한자어 기초 실력을 평가한 결과 전체 응시자의 약 60%가 낙제점(100점 만점 중 50점)을 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공교육에서 한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러 신문에 실리는 계기가 되었다.
  5월에는 많은 기업이 경제 단체의 권고를 받아들여 채용 시험에 한자 과목을 포함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채용 정보 전문 업체인 인크루트에서 주요 대기업 145개 사를 대상으로 한자 시험에 대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76%를 넘는 111개 회사가 경제 5단체의 권고안에 찬성 태도를 보였다. 채용 시험에 한자 과목을 포함할 계획이라고 밝힌 기업은 1년 전 조사에 비해 85%나 늘어났으며, 일부 기업들은 입사 시험에 한자 과목을 포함하지는 않지만 한자 자격증 소지자에게 가산점을 주겠다고 하였다. 수출업체들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였다. 한국무역협회가 상위 30개 수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입사 응시자의 한자 능력을 검증할 계획이 있는 업체는 전체의 43.3%로 2003년보다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한자 능력이 업무와 직접 연관되지도 않는 마당에 취업자들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조처라는 비난 여론이 일부 있었으나 한자 학습 열기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특히 취업 준비생들은 한자를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기업들의 이 같은 발표 이후 수십 종의 한자 교재가 쏟아져 나오고 대형 서점마다 전용 코너가 따로 생겨났으며, 어린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자 학습지의 시장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게 되었다. 한자 자격증 시험에 응시한 인원도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 한자 교육의 강화를 촉구하는 대회가 열렸다. 7월 16일에는 사회 각계 인사 1000여 명으로 구성된 사단법인 ‘전국 한자 교육 추진 총연합회’가 “동북아 한자 문화권 시대에 역행한다.”라며 국어기본법과 법률 한글화를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모임을 열었다. 이들은 한글 전용을 앞당기려는 국어기본법 추진을 중단할 것과 동북아 시대를 대비해 초등학교부터 한자 교육을 강화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였다. 9월 11일에는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주최로 열린 ‘한자 교육과 한자 정책에 대한 국제 학술회의’에서 국어학계의 원로 학자들이 한자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특히 이기문, 심재기, 이익섭, 송민 등 전임 국어연구원장들이 우리 말글의 발전을 위해 고유어와 한자의 장점을 살려 함께 써야 한다는 요지의 발표를 하였다.
  이후에도 삼성이나 롯데 등 특히 한자를 중시하는 기업의 움직임이 간간이 신문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일부 신문들은 「不知漢字 難就業」(<동아일보> 9. 22.), 「한자를 알면 中·日 시장이 절로 보인다」(<조선일보> 10. 14.), 「한자·국사 모르면 승진도 못해」(<국민일보> 11. 19.) 등의 기사를 실어 한자 능력을 중시하는 기업의 분위기를 보도하였다. 이에 고려대학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자 이해 능력 인증 시험을 치른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11. 24.) 2004년 입학생부터는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얻지 못하면 졸업할 수 없는 이 시험의 시행 배경이 증가하고 있는 기업체의 한자 능력 요구에 부응하고 국어의 활용 능력 증진을 통한 수학 능력 향상을 위한 것이라고 고려대는 설명하였다.


      2.1.3. 영어 열풍

  우리 사회에 만연한, 영어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풍조와 관련한 보도가 많이 있었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우리나라의 지나친 영어 조기 교육 풍토를 비판하는 AP 통신의 보도가 있었다.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의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어린이들의 혓바닥 아랫부분을 절개하는 수술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영어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은 이처럼 나라 밖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였는데 1년 내내 그 열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기업 이름에 지나치게 많은 영어가 사용되는 문제가 여러 차례 언론에 지적되었다. 특히 기업이미지 통합(CI) 변경을 할 때에 회사 이름을 영어식으로 짓거나 영어 약자 표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라는 지적이 주를 이루었다. <문화일보>(3. 2.)는 지난 5년간 상장·등록사 4개 가운데 1개꼴로 회사 이름을 바꾸었으며, 바뀐 이름은 대부분 영어식이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함께 전하였다. 그 밖에 식품업계의 무분별한 외국어 남용을 지적하는 보도도 있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많이 먹는 과자나 국수류 등에 외국어 이름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사례가 많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8월에는 기업들이 한글 없이 영문으로만 간판에 표기를 하는 것은 현행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는 지난 2002년 국어문화운동과 한글학회, 세종대왕 기념 사업회 등 한글 관련 민간단체들이 기업 이미지 통합 과정에서 한글 간판 대신 영문을 사용한 KB*b(국민은행)와 KT(옛 한국통신)에 낸 손해 배상 소송에 대한 판결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법원은 옥외 광고물에 외국 문자만 쓰거나 한글을 너무 적게 쓴 것은 ‘옥외 광고물 관리법’의 한글 병기 조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하였다. 다만, 시민단체 회원들의 손해 배상 청구권에 대해서는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 놓았다. 이 같은 판결 내용이 보도되면서 세계화를 명목 삼아 우리말을 가볍게 여기는 기업들의 풍조가 다시 한번 여론의 비난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뜻 모를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는 비판이 기업 등 민간 분야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정책 자료에도 외국어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있었다. 특히 참여 정부가 들어서서는 ‘로드맵, 코드, 올인, 어젠다’ 등 외국어 사용이 급격히 늘어 정부가 국어 오염의 선봉에 섰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동아일보>(5. 20.)는 지방 자치 단체의 공문서나 정책 관련 자료에 외국어 용어를 사용해서 주민들이 정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적에도 11월에는 재정경제부가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국판 뉴딜’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다시 한번 구설에 올랐다. 미국의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나왔던 ‘뉴딜’이라는 명칭이 우리의 경제 상황에 맞지도 않거니와, 국민이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에 이해찬 총리는 11월 8일 총리실 간부회의에서 ‘앞으로는 정책 및 기타 용어에서 가능한 한 한국어를 쓰도록 하자’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조기 영어 교육에 대한 관심은 나라 곳곳에 영어 마을을 조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어 마을은 청소년들이 입소해 체험식 영어 교육을 받아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온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마련한 영어 체험 학습장이다. 8월 경기도 안산에서 처음으로 개원한 이래 서울, 부산, 전남, 인천, 대구 등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영어 체험 학습장 조성 사업이 붐을 이루었다.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영어 마을 조성이 혈세 낭비와 우리말 경시, 영어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영어 마을이 해외 어학연수와 조기 유학을 감소시켜 외화를 절약하고 영어 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기대에 따라 많은 학생이 입소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월에 서울시가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공개 모집에는 1만여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려 입소 경쟁률이 8.5대 1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회 일각의 영어 공용어화 논쟁과 지나친 영어 사용 풍조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시각에 대한 보도도 있었다. 박영준 부경대 교수 등 5명의 학자는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국가의 언어 실태와 문제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영어 공용화 실시와 국가 경쟁력 사이에 인과관계를 찾기 어려우며, 영어 공용화를 시행할 경우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국제번역학회 학술대회 참석차 8월 방한한 테오 허만스 번역학회 이사장은 영어 공용화 정책은 고유의 문화자산을 파괴하는 행위로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8월 26일에는 한글문화연대가 ‘외래 전문용어, 우리의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각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전문용어들은 영어가 많고 그나마 각 단체나 기관별로 제각각 표기되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이에 대해 전문용어를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통일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의 위원회 설치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2.1.4. 한국어 능력시험 아시아 지역 응시자 급증

  외국인과 재외 동포를 대상으로 치르는 한국어 능력 시험에 ‘한류 열풍’을 타고 아시아 국가 응시자가 급증하였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실시한 한국어 능력 시험 원서 접수 결과 2003년에 비해 44%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아시아 지역 응시자의 수가 더 많이 늘어났다.
  일본의 경우는 2001년 대학 입학시험에 한국어가 채택된 뒤 응시자가 꾸준히 늘고 있으나 2004년에 특히 크게 늘어난 것은 드라마 ‘겨울 연가’의 영향인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에서는 드라마를 한국어로 직접 보고자 하는 욕구가 한국어 학습의 직접 동기가 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 지역과 중국에서는 한류의 영향도 있지만 이 시험을 통한 외국인 고용 허가제가 실시된 것이 응시자가 늘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한편, 한국어의 해외 보급을 보다 체계화해야 한다는 기사들이 실리기도 하였다. <경향신문>(10. 9.)은 급증하는 한국어 수요에 비해 한국어 교육과 보급을 위한 정책은 아직 걸음마 단계임을 지적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지 사정에 맞는 한국어 교재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출간해야 하며, 외국인을 위한 표준 한국어 사전 편찬과 한국어 교사 육성 및 교수법 개발 등이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지적하였다. 특히 일본과 중국의 상황을 취재하여 나라별로 상황에 맞는 정책 지원이 필요함을 지적하였다.


      2.1.5. 국어순화

  국어순화와 관련해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www.malteo.net) 사이트의 개설이었다. 국립국어원은 7월, 그동안 일부 학자들이 순화 대상어를 선정하고 그에 대한 순화어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온 국어순화가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고 판단하여, 외래어 순화를 대중에게 맡기는 방향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국립국어원이 인터넷 사이트에 순화 대상어를 제시하면 네티즌들이 순화 용어를 자유롭게 제안하고, 이 중 일부를 투표에 부쳐 가장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은 말을 순화어로 결정하여 발표하는 형식이다. 이 사이트의 운영은 국민을 일방적으로 계몽하던 것으로부터 나아가 대중들이 스스로 언어를 가꾸도록 하는 방향으로 국어 정책이 변화한 것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여러 신문이 이 사이트 운영의 배경과, 이를 통해 결정된 새 말들을 소개하는 기사를 실어 대중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개별 분야에서도 국어순화 운동이 꾸준히 전개되었다.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친 것은 건설 분야였다. 7월에는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가 중심이 되어 ‘건설 용어 우리말 쓰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보험 용어 중에 어려운 한자어나 일본어투로 된 용어들을 골라서 쉬운 우리말로 바꿔 쓰도록 하였다. 금융감독원도 ‘알기 쉬운 보험용어 만들기’ 추진반을 구성해 보험 용어를 쉬운 말로 바꿔 나가겠다고 하였다. 그 밖에 행정 용어, 당구 용어, 일부 가정 용어들을 중심으로 외국어 표현이나 비속어 표현들을 순화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었다. 의학계에서는 10년간의 노력 끝에 쉬운 우리말로 풀어 쓴 <의학용어 큰사전>을 발간하여 의학 용어 대중화 작업에 성공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2.1.6. 법률 한글화

  국민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률이 지나치게 어려운 말로 되어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온 문제였다. 법제처는 이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각종 법률을 한글로 표기하도록 하는 ‘법률 한글화를 위한 특별 조치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특별법안은 앞서 2003년 8월에도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법제사법위에서 논란을 벌이다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자동 폐기되었던 것이다. 12월 21일 국무회의에서 759개 법률에 혼용된 한자를 전부 한글로 표기토록 하는 법안을 심의 의결하였다. 이는 2005년 한글날로부터 시행하도록 하였다. 다만, 한글로 표기했을 때 올바른 뜻의 전달이 곤란하거나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용어에 한해서는 괄호 안에 한자를 함께 쓸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민법과 형법 등 한글화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한 법안에 대해서는 중장기적인 연구를 거쳐 점진적으로 시행하기로 하였다.
  법률의 한글화와 함께 법 이름의 띄어쓰기도 추진되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9월 11일자 <일간스포츠>에 「띄어쓰기 없는 법률안 도대체 무슨 소리야?」라는 제목으로 문제점이 지적된 바 있다. 기사에 따르면 일제 시대부터의 관행에 따라 법률 명칭은 한글 맞춤법에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붙여 적어 왔으나 국회가 예규 개정에 나서 곧 띄어쓰기가 적용될 것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법률 이름이 길어지는 추세여서 가장 긴 법률은 66음절, 비준 동의안 중에는 213음절짜리 이름을 가진 것도 있어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서는 무슨 내용인지 파악할 수조차 없음을 지적하였다. 이 문제와 관련해 법제처에서는 2005년부터 제정되거나 개정되는 모든 법령의 이름은 띄어쓰기를 하는 것으로 점진적으로 바꾸어 나가겠다고 하였다.


      2.1.7. 언론의 잘못된 국어 사용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언론 특히 방송에서 국어를 잘못 사용한다는 지적이 연중 계속되었다. 1월에는 서울 YMCA 시민 중계실이 방송 3사의 예능 오락 프로그램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YMCA는 이 프로그램들이 외계어, 이모티콘 등을 무분별하게 사용해 청소년들의 언어에 혼란을 주는 등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지적과 함께 이의 사용을 자제해 줄 것을 각 방송사에 요청하였다. 방송위원회 산하 방송언어특별위원회는 방송 언어를 지속적으로 조사하여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2월에는 심야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분석한 결과 비속어와 은어, 불필요한 외국어들이 남발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중모음을 잘못 발음하거나 불필요한 경음 발음 문제 등도 지적되었다. 4월에는 텔레비전 어린이 만화 프로그램의 언어 사용 실태를 조사하여 프로그램 제목과 등장인물 및 대사에서 외국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조어가 남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방송 토론 프로그램을 조사하여, 불필요한 외국어와 지나친 약어 사용을 자제해 줄 것을 권고하였다. 6월에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날씨·교통 정보 프로그램의 언어 사용을 분석하였다. 어법의 파괴, 부적절한 어휘 사용, 비논리적인 문장, 장황한 수식 등의 문제가 있으므로 간명하고 구체적인 표현을 사용하도록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송 언어 실태 보고는 해마다 반복되어 이뤄지고 있으나 달라진 점이 없이 같은 잘못이 계속 반복되고 있어, 방송 언어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출연자 및 제작자 교육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한편, KBS와 MBC, 두 방송사가 각각 ‘우리말 지키기’에 앞장서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이 보도되었다. MBC는 2004년을 우리말 바로 세우기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어 온 자막 오류를 90% 이상 해결하기 위해 맞춤법 교정 기능을 갖춘 자막 교정기를 도입하였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말 청정 프로그램’을 지정하여 방송 언어에 오류가 없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로 하였다. 방송사 내에 ‘우리말 대학’을 설치하여 진행자, 기자, 프로듀서들을 대상으로 우리말 교육을 의무화하도록 하였다. KBS는 방송사 직원들의 모국어 구사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2005년부터 신입 사원을 뽑을 때 ‘한국어 능력 시험’을 필수 과목으로 채택하였는데, 토익이나 토플 등 영어 성적보다 높은 비율로 반영하겠다고 하였다.
  11월에는 한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이 “방송 언어 순화에 앞장서겠다.”라는 자정 선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비속어를 특히 많이 쓰는 것으로 알려진 한 연예 오락 프로그램의 연출자가 재미를 위해 변질된 언어를 사용하기보다는 프로그램의 언어 수준을 높이고 바른말 고운 말을 쓰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하였다. 12월에는 시민단체인 국어문화운동에서 국어를 왜곡시키는 방송 언어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너무’의 쓰임새를 꼽고 이에 대한 바로잡기를 방송사 측에 요구하였다.


      2.1.8. 그 밖의 주요 기사

         2.1.8.1. 허웅 한글학회 회장 별세

  1월 26일 허웅 한글학회 회장이 돌아가신 일은 2004년 국어학계의 가장 큰 사건 중의 하나였다. 평생을 국어 연구와 한글 운동에 헌신하신 선생의 별세 소식을 모든 신문들이 앞다투어 보도하였다. 부고 기사와는 별도로 지면을 할애해 「고인을 기리며」, 「고 눈뫼 허웅 선생의 발자취」 등의 제목으로 선생의 업적을 되새기며 고인을 기리는 글을 싣기도 하였다. 특히 한힌샘 주시경 선생과 외솔 최현배 선생의 뒤를 이어 국어학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던 학문적 업적과 함께, 30여 년간 한글학회 회장직을 맡아 생활 속에서의 국어 운동에도 열심이었던 것을 크게 평가하였다. <한겨레>와 <한국일보>는 각각 남기심 국립국어원 원장과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의 추모 글을 따로 실었다. 남기심 원장은 눈뫼 허웅 선생을 “국어학을 언어과학의 수준으로 올려놓으신 분”으로 회고하는 글을 썼으며, 권재일 교수는 “탁월한 업적을 남기신 국어학자이시면서 우리 민족 문화의 바탕을 꿋꿋하게 지킨 국어운동의 실천가”로 고인을 기리는 글을 썼다. 정부는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였다.
  공교롭게도 7월 31일에는 유열 김일성대학 교수가 4월에 별세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유 교수는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학회의 회원으로 <우리말 큰 사전>의 편찬 등에 참여하였으며 한국전쟁 중에 월북하여 북한에서 국어 연구와 사전 편찬을 주도한 인물이다. 고 허웅 선생과 동갑으로 각기 남과 북에서의 업적도 비슷하며, 특히 200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감격의 포옹을 한 일화가 있어 허웅 선생을 함께 언급하는 기사가 많이 실렸다. 어쨌거나 남북 국어학계의 거목이었던 두 분이 86세를 일기로 한 해에 사망한 일은 국어학계의 중요 사건으로 기억할 만하다.


         2.1.8.2. 신조어 및 통신 언어에 대한 관심

  청소년들이 온라인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소위 외계어 및 신조어에 대한 보도가 많이 있었다. 특히 신문들이 주말판을 따로 냄에 따라 새로운 사회 풍조나 유행에 관한 기사를 많이 싣게 되면서 가벼운 읽을거리로서 청소년 언어 실태에 대한 보고와 그에 대한 의견 기사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기존의 통신 용어들은 통신 요금이나 자판을 두드리는 수고를 줄이기 위해 흔히 음절을 줄이거나 맞춤법을 무시한 채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이었으나 최근에는 일반인들이 쉽게 그 뜻을 짐작할 수 없는 암호 형태의 말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외계어의 사용 확산과 함께 비속어의 남용 문제 등이 특히 청소년 언어의 실태 및 문제점으로 많이 지적되었다.
  청소년 언어에 대한 보도 관점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 부정적인 시각은 국적 불명의 외계어나 통신 언어의 남용이 우리 글, 우리 말을 훼손시키고, 세대 간 의사소통의 단절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므로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언어 도 넘었다」(문화, 3. 20.), 「통신 언어 절반 이상이 비속어」(경향, 5. 31.), 「네티즌 글장난 한글 멍든다」(매일경제, 10. 8.)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통신 언어를 무조건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외계어와 이모티콘(표정 문자)은 사용하는 사람의 개성과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긍정적 기능을 가지는 것으로 크게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온라인 은어, 책읽기 등 긍정 측면도…」(한국, 1. 5.)와 「통신 언어 나름대로 장점 존재」(경향, 6. 7.)등의 보도를 들 수 있다.


         2.1.8.3. 국어기본법 제정

  12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어기본법이 통과되었다. 여러 신문이 이 법 제정의 의의를 ‘대한민국의 국어이자 공용어는 한국어이며 한글은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문자’임을 법에 처음 명기한 일이라고 보도하였다. 매체에 따라 「“한국 공용어는 한국어”」(동아, 12. 31.), 「국어 능력 인증 시험 생긴다」(한국, 12. 31.) 등 제목은 조금씩 달랐으나 모든 신문들이 2005년 하반기에 시행될 국어기본법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였다. 법안의 주요 내용으로는 정부가 5년마다 국어발전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그 시행 결과를 2년마다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며 중앙 정부 기관과 지방 자치 단체에 국어책임관을 두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소개되었다. 국어 능력의 검정, 국어 상담소의 지정과 운영 등 국민의 국어 능력 향상과 한국어의 국외 보급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도 마련되었다. 전체적으로 국어기본법은 국어 사용에 대한 규제보다는 한국어의 보전과 발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의 국회 통과를 앞두고 일부 원로 국어학자들이 ‘한자와 관련한 조항을 포함시켜야 한다.’라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한 것과 관련, 한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곁들이고 있다.


         2.1.8.4. 동티모르 한글 수출 해프닝

  1월 12일자 신문들은 일제히 21세기 첫 독립국가인 동티모르에 한글을 수출하게 되었다고 보도하였다. 동티모르에는 떼뚬이라는 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나 표기하는 글자가 없어 로마자를 이용한 표기 방안을 추진 중인데, 한글을 이용하는 방안도 연구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를 방문 중이었던 동티모르의 대통령 부인과 외무장관이 경북대와 한글 표기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협정을 맺음으로써 성사되었다는 것이다. 여러 신문은 이 일이 성공하면 “한글 수출 1호”가 될 것이라며 이러한 일이 한글의 우수성을 보여 주는 사례라면서 크게 보도하였다.
  그러나 며칠 후 이것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경북대에서 애초 그러한 제안을 동티모르 대통령 부인 일행에게 할 예정이었으나 외교 마찰 등이 우려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초의 한글 수출과 관련한 보도는 결국 오보에 의한 해프닝으로 끝났다.


         2.1.8.5. 남북 공동 ‘겨레말 큰사전’ 편찬

  잊혀져 가는 우리 고유의 말을 묶은 겨레말 사전이 최초로 남북 공동으로 편찬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경향, 한국, 한겨레 등 1. 29.) 사단법인 통일맞이 늦봄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는 “통일을 대비한 언어와 문화 교류 차원에서 북측과 겨레말 사전을 공동으로 편찬하기로 하였다.”라고 발표하였다. 가칭 ‘남북 공동 겨레말 큰사전’으로 명명된 이 사전에는 현재 표준말로 쓰이고 있는 서울과 평양 말을 포함하여 남북 각 지역의 방대한 방언을 수록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공동 편찬 사업은 2003년 10월 평양에서의 실무 접촉에서 북측의 민족 화해 협의회가 통일맞이에 먼저 제안하여 시작되었다. 실사 작업을 하는 데 3년, 편찬 작업을 하는 데에 2년이 걸릴 것이므로 실제 사전은 2009년쯤 완성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2.1.8.6. 동남아시아 언어 외래어 표기법 제정

  문화관광부는 12월 말레이인도네시아어와, 타이어, 베트남어 등 동남아시아 3개 언어에 대해 외래어 표기법을 제정하여 고시하였다. 동남아시아 외래어 표기법은 그동안 허용하지 않던 된소리(ㄲ, ㄸ, ㅃ)를 쓰도록 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대부분의 외국어는 파열음이 유성과 무성 대립만 있어, 무성파열음은 우리말의 거센소리(ㅋ, ㅌ, ㅍ)로, 유성파열음은 예사소리(ㄱ, ㄷ, ㅂ)로 쓰도록 하였었다. 그러나 타이어와 베트남어는 우리말처럼 ‘ㄱ, ㄲ, ㅋ’ 세 가지 소리가 구분되므로 그들 소리를 각각 구분하기 위해 된소리를 쓰도록 한 것이다. 표기법 제정과 고시를 전후해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큰 규모의 지진해일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새로 제정된 동남아시아 외래어 표기법이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2.2. 신문 기획 특집

  이 절에서는 우리 말과 글을 바로 쓰자는 취지로 한 해 동안 기획되었던 특집 기사나 고정란을 정리해 보겠다. 2004년은 어느 해보다 신문들이 우리 말과 글에 대한 기획 기사를 많이 실었던 해이다. 점점 거세지는 영어 열풍에 밀려 우리말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으로부터 이러한 움직임이 더욱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일보>와 <경향신문>은 각각 국립국어원과 공동으로 우리말 전반에 걸친 문제를 짚어보는 기획 특집을 마련하였다. <한겨레>는 3년째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고정란을 통해 우리 말과 글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키고자 노력하였다. <중앙일보>는 교열기자들이 직접 집필하는 우리말 바루기 난을 통해 잘못 쓰기 쉬운 말들을 바르게 이끌고자 노력하였다. <동아일보>는 호칭어 지칭어를 중심으로 표준 화법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난을 꾸려 왔다.


      2.2.1. 세계일보 「우리말 바르게」

  <세계일보>는 국립국어원과 공동으로 2003년 11월부터 2004년 4월까지 약 6개월에 걸쳐 「우리말 바르게」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하였다. 이는 통신 언어의 유행과 외래어의 급속한 유입에 따라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말의 오염 실태를 살펴보고 이를 방지하고자 기획된 것이었다. 연재의 시작을 알리며 쓴 글에서 세계일보는 특히 우리말을 잘못 사용하는 현상이 일부 계층이나 세대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말 파괴는 사회 계층 간이나 세대 간의 의사소통을 어렵게 하고 사회 갈등마저 부를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므로 우리말 파괴를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일은 사고력의 증진과 문화의 계승 발전에 중요하게 작용하므로 우리말을 지키는 일은 결국 우리 문화와 민족을 보전하는 일이다. 이러한 취지로 시작된 「우리말 바르게」는 국어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우리말의 혼란상과 언어예절 붕괴, 외래어 침투 현황, 인터넷 언어 파괴 현상 등 언어생활 전반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하였다. 매주 월요일마다 문화면 1면 전체를 기획 기사로 채웠는데, 그날의 주제와 관련한 담당 기자의 실태 파악 및 문제 제기 기사와 전문가의 대안 모색 위주의 기고문으로 구성되었다.
  6개월간의 기획 기사를 마치는 시점에서는 국립국어원 남기심 원장과 한국외국어대 유재원 교수의 좌담회를 마련하였다. 좌담회에서 두 전문가는 국어에 대한 접근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우리말의 위기는 심화될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국어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 아래 국어 연구 분야를 확충하고, 전 국민이 참여하도록 하는 복합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특히 가정과 학교에서의 모국어 교육이 변화해야 하며, 자국어를 경시하는 풍조에는 사회 지도층의 책임이 크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우리말 바르게」 기획 기사에서 다루어진 주제와 기사 제목, 기고자와 신문 게재 날짜는 아래와 같다.
1. <연재를 시작하며> 국어는 국가 정체성의 뿌리 / 신세대들 일상대화까지 엉망…나라 장래 걱정(남기심 국립국어원장) 11.03.
2. <막 가는 통신 언어> 맞춤법만이라도 지키자 / 통신 언어도 장점과 단점 조화시키면 쓸만(최용기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11. 10.
3. <외래어 순화> 일본식 영어와 한자가 1차 순화 대상 / 외래어 사용 기준 미루면 우리말 점점 도태(김세중 국립국어원 어문자료연구부장) 11. 17.
4. <한글 브랜드 실종> 외국어 이름 붙이면 명품 되나 / 영어 광풍에 설 자리 잃은 우리말 안타깝다(박용찬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11. 23.
5. <우리말 경시하는 TV> 어느 나라 국민을 위한 방송인가 / 김희진(국립국어원 어문실태연구부장) 12. 01.
6. <허물어지는 언어 예절>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 어색하더라도 고운 말 써 보자(송민 국민대 명예교수) 12. 08.
7. <국어 기본법> ‘국한문 혼용 여부’ 등 합의 시급 (권재일 서울대 교수) 12. 15.
8. <따로 가는 남북 언어> 국토 통일보다 급한 건 언어 통일 / 민족어 통합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전수태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12. 22.
9. <고유어를 살리자> 사투리, 속담에도 좋은 우리말 많다 / 이상규 경북대 교수 12. 29.
10. <국어 정보화> 디지털 이용 ‘글로벌 언어’로 키우자 / 언어, 문자 정보화에 국가 미래 달려(홍윤표 연세대 교수) 01. 05.
11. <7차 교육과정의 보완점> 교육 정책이 바로서야 국어교육도 바로선다 (민현식 서울대 교수) 01. 12.
12. <국어 지키기 운동 시급> 우리말 생과 사의 기로에… / 국어사전 이제라도 제대로 만들자(안상순 금성출판사 사전팀장) 01. 19.
13. <어문규범 현실화> 로마자 외래어 표기 교통 정리 시급 / 약속된 표기법은 일단 지키자(정희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01. 26.
14. <인쇄 매체 언어사용 실태> 신문은 대중이 보는 국어 교과서 / 기사도 문장-문법적 요건 갖춰 써야(양명희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02. 02.
15. <올바른 언어 예절> 남편을 아빠로 부르는 일본식 습관 여전, 높임말-낮춤말 대상과 나이에 맞게 써야 / 강신항 성균관대 명예교수 02. 09.
16. <표준 발음> 젊을수록 세게 발음…부드럽게 말하자 / 표준 발음 시대 따라 변화해야(배주채 가톨릭대 교수) 02. 18.
17. <화법 교육의 중요성> 말하기 듣기 교육 소홀 “대화가 없다” / “말 한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 명심을 (구현정 상명대 교수) 02. 25.
18. <한국어의 위상과 국외 보급> 해외 동포들에 모국어 가르치자 / 외국인 위한 표준어 사전 편찬을 (박영순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장) 03. 03.
19. <방언을 살리자> “사투리엔 그 지역 특유 정서 역사 함축” / 복수 표준어 제정…어휘 다양성 높여야 (이태영 전북대 교수) 03. 10.
20. <실용문의 글쓰기> “뜻만 통하면…” 언어 불감증 확산 / 정확한 뜻 알 수 있게 쉬운 단어 쓰도록(장소원 서울대 교수) 03. 17.
21. <영어 조기 교육> “어릴수록 빨리 배운다” 근거 없어 / 외국어는 중학교 가서 배워도 늦지 않다 (박병수 경희대 교수) 03. 24.
22. <전문용어를 일상어로> ‘어려운 단어’ 쓴다고 지식인인가 / 전문지식 모두가 공유할 수 있어야 (김하수 연세대 교수) 03. 31.
23. <‘외래어로 얼룩’ 간판들> 세계화 구호 한글 이름 냉대 / ‘국적 불명 현수막’이 언어생활 혼란 주범(이병규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04. 07.
24. <교양국어 폐강 위기> “학점따기 힘들다” 신입생 외면 / 글쓰기, 책읽기, 말하기 집중 교육(송철의 서울대 교수) 04. 14.
25. <연재를 마치며> “언어는 민족의 살아있는 역사” / 언어정책 ‘질서 있는 다원주의’로 나가야(이성원 문화관광부 문화정책국장) 04. 21.
26. <끝·대담> “국어교육은 생활 현장에서 이뤄져야” (남기심 국립국어원장, 유재원 한국외대 교수, 권오문 세계일보 문화생활부장) 04. 28.

      2.2.2. 한겨레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

  한글만 쓰는 신문으로 창간하여 처음부터 가로쓰기 편집을 해 온 <한겨레>는 국어 관련 고정란을 가장 오랫동안 운영해 왔다. 우리의 말과 글을 바르고 아름답게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여 왔는데, 2002년 5월부터 시작한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는 그런 운동의 하나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회 언어생활에 대한 전문가들의 짧은 글을 실어 왔다. 필자에 따라 한 가지 주제를 꾸준히 집필하기도 하고, 언어생활에 관련한 일반적인 글들을 두루두루 쓰기도 하였다. 그동안 게재되었던 것들은 주로 바른말과 잘못된 말을 이분법적으로 제시하는 글이 많은 편이었고, 편당 500자 내외의 짧은 글이라서 심화된 설명이 없다는 아쉬움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2004년에는 정재도(한말연구회 회장), 권재일(서울대 교수), 이수열(국어순화운동인), 조재수(사전편찬인), 최용기(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최인호(한겨레 교열부장), 안인희(번역가) 등 8명의 필자가 참여하였다.
  오랫동안 언론에서 교열 관련 일을 하고 국어사전 편찬에도 깊이 관여하였던 정재도 한말글연구회 회장은 주로 국어사전과 관련한 글을 발표하였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하여 최근에 발간된 우리 국어사전의 잘못을 지적하는 내용이 많았다. 특히 본래 우리말 어휘가 아니라 일본어나 중국어 어휘인 것을 번역하거나 우리 한자음으로 읽어 수록된 표제어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어원 표시의 잘못을 깨우쳐 주는 글도 많이 있었다. 본디 고유어인데 음이 같은 한자말을 원어로 밝혀 실은 것이나 취음 표기한 것을 원어로 실은 것 따위를 지적하였다. 뜻풀이가 잘못된 것 등 사전 편찬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도록 하는 글도 많이 있었다. 그 밖에 상표나 이름짓기, 일상생활 언어 등에서 우리말을 가벼이 여기는 풍조를 꾸짖고 바로잡도록 촉구하기도 하였다.
  권재일 서울대 교수는 언어와 관련하여 그때그때 대중들이 가장 관심을 가질만한 시의적절한 소재를 찾아 설명을 해 주거나 의견을 개진하는 글을 실었다. 방송 등 대중매체 언어에서 흔히 쓰이는 잘못된 표현을 지적하고 바로잡아 주기도 하였다. 새말 만들기의 원리 소개나 외래어 사용 문제와 국어 의식, 어문규범과 언어 현실 사이의 차이 및 해결 방안에 대한 고민 등을 주제로 삼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흔히 혼동하기 쉬운 언어학 전문 용어의 풀이 및 공용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의 핵심이나 입말과 글말의 차이 등을 알기 쉽게 해설해 주기도 하였다. 그 밖에 북한어 및 해외 동포 언어에 대한 소개, 수화, 국어 정보화와 국어 정책 등에 대한 글도 발표하였다.
  오랫동안 국어순화 운동을 펼쳐 온 이수열 선생은 신문이나 방송, 법률 문장 등에서 잘못 사용되는 우리말 표현들을 바로잡는 내용을 주로 다루었다. 장단음 구분이나 모음의 음가 등 발음을 잘못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하였다.
  국어사전 전문가인 조재수 선생은 어휘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루었다. 기본적은 뜻은 같으나 문맥에 따라 쓰임이 조금씩 다른 다양한 어휘들을 용례와 함께 소개하는 글이 많았다. 현대의 언어생활에서는 널리 사용되지 않는, 잊혀져 가는 고유어들을 문맥과 함께 소개하기도 하였다. 북한어에 대한 소개 글도 많은 편이다.
  국립국어원 최용기 연구관은 마구잡이로 들여다 사용하는 일본어투 용어나 어려운 외래어 용어들의 순화어를 제시하는 내용을 주로 다루었다. 최범영 한국지질자원 연구원은 우리나라 여러 지명의 유래를 설명하는 글을 실었다.
  최인호 한겨레 교열부장은 새말이나 준말 만들기 방식, 의미가 비슷한 어휘들의 자세한 쓰임 차이, 규범에 대한 설명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었다. 가게나 기업, 정당 등이 이름을 짓는 방법이나 외래어 들여다 쓰기와 언어 의식과의 관련성 등 생활 주변의 우리 말글살이에 대한 단상을 적은 글들도 눈에 띈다. 그 밖에 새로운 정책의 이름이나 구호를 영어로 붙이는 서울시의 행정 방식, 영어마을 추진, 서울의 중국어 새 이름 짓기 등의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히기도 하였다.
  전문 번역가인 안인희 선생은 국어와 외국어의 차이를 통해 문장 구조 등 우리말의 특징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글을 주로 실었다. 글 가운데에 외국어를 학습하는 데 있어서 국어의 역할이 중요함을 여러 차례 강조하기도 하였다.


      2.2.3. 중앙일보 「우리말 바루기」

  중앙일보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주 5회씩 교열부 기자들이 돌아가며 쓰는 「우리말 바루기」 고정란을 운영해 오고 있다. 2004년에는 1월 5일 206회로 시작하였는데, 6월 18일 316회로 일단 끝을 맺었다가 7월 5일부터 「새 우리말 바루기」라는 이름으로 다시 연재를 시작하였다. 「새 우리말 바루기」는 12월 30일까지 총 126편의 글을 실었다. 2004년에 필자로 활약한 기자들은 김형식, 한규희, 배상복, 최성우, 권인섭, 이은희, 김준광, 김승욱 등 8명이었다.
  주로 다룬 내용은 한글 맞춤법이나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바른 표기 및 표준어·비표준어의 구분, 표준 발음법이나 띄어쓰기 등 어문 규범에 관한 것들이 많았다. 그 밖에 발음은 비슷하지만 의미나 쓰임이 다른 말들의 구분, 한자말의 뜻풀이 등을 예문 중심으로 알기 쉽게 다루었다. 특히 화제가 되는 드라마나 보도 문장, 문학 작품 등 사람들에게 친숙한 예문을 인용하여 다룸으로써 비슷한 종류의 다른 글들에 비해 흥미롭게 쓰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2.2.4. 경향신문 「우리말글이 흔들린다」

  5월 18일부터 12월 30일까지 총 31회에 걸쳐 우리말과 글에 관한 에세이를 연재하였다. 연재를 시작하며 경향신문은 우리 말과 글이 처한 현실을 위기라고 진단하였다. 그렇게 진단한 이유를 연재 시작을 알리는 글에서 전풍식 기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거리에는 국적 불명의 외래어 간판이 판을 치고 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지문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 대화에서는 언어예절이 사라진 지 오래고, 통신 언어는 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 상품과 기업 이름은 십중팔구 외국어이고, 회사명은 대부분 로마자로 표기되어 있다. …… 무엇보다 바른 언어생활을 선도해야 할 신문과 방송에서도 잘못된 표현이나 비속어들이 사용된다.” 경향신문은 이와 같이 설 자리를 읽어가고 있는 우리 언어 현실에 언론으로서 책임을 느껴 이와 같은 연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기획의 첫 번째 글을 시작하며 남기심 국립국어원장은 우리 말글이 흔들리고 있는 현실이 가정교육의 탓인지, 아니면 학교 교육이나 정부의 탓인지 짚어보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 언어 현실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깊이 생각하고 묘안을 내는 사람들은 별로 없음을 지적하고, 이 시리즈를 통해 언어생활의 문제점의 원인을 찾아내고 개선 방향을 모색해 보자고 제안하였다.
  이 시리즈는 경향신문과 국립국어원, 한글문화연대가 공동으로 기획하여 매주 화요일자에 연재되었다. 국어 운동가, 국립국어원의 연구진, 대학교수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사례 중심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글을 실었다. 다뤄진 내용은 어문규범, 언어예절, 문장과 표현, 국어교육, 국어순화, 통신 언어, 방송 언어 등 우리 언어생활 전반에 관한 것들이었다. 실린 글들의 제목과 필자, 게재된 날짜는 아래와 같다.
1. <외래어 남용 문법 파괴 극심/ 세대 간 말 달라 딴 세계 온 듯> 남기심(국립국어원 원장) 5. 18.
2. <양반 한문 쓰듯 영어 사용 조장/ 우리말 보호 ‘정치적 결단’ 필요> 김영명(한글문화연대 대표) 05. 26.
3. <통신 언어 절반 이상이 비속어/ 갈수록 거칠어지고 일상어화> 성기지(한글문화연대 운영위원) 06. 01.
4. <통신 언어 나름대로 장점 존재/ 확산 땐 사회적 소통 단절 우려> 김선철(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06. 08.
5. <방송 등 신조어 마구잡이 사용/ 우리말 파괴로 이어질까 우려> 박용찬(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06. 15.
6. <인사말도 제대로 못하는 방송> 이동우(한글문화연대 운영위원) 06. 22.
7. <자주 쓰는 글도 틀리는 방송 자막/ 지침서 마련 등 근본적 처방 필요> 정희창(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06. 30.
8. <언론·정부가 외국어 남용 앞장/ 국어 순화로 정체성 되찾아야> 최용기(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07. 07.
9. <세계화 내걸고 바꾼 영어식 회사명/ 우리 정체성 알릴 기회 포기한 것> 정희원(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07. 14.
10. <온통 외래어인 극장 이름, 영화 제목/ 한때 유행으로 보기엔 너무도 심해> 이기만(한글문화연대 운영위원) 07. 21.
11. <영어로 회의하면 외국 자본 몰려오나/ ‘경제특구’가 ‘언어 특구’로 변질 우려> 이건범(한글문화연대 대외협력위원) 07. 28.
12. <공용어는 여러 언어 사용될 때 쓰는 말> 김세중(국립국어원 어문자료연구부장) 08. 04.
13. <한글 이름은 시대착오?> 이기만(한글문화연대 운영위원) 08. 11.
14. <문학박사도 잘 모르는 단어들… 쉽고 편한 우리말로 순화해 사용을> 허철구(창원대 교수) 08. 18.
15. <알 수 없는 국영혼용체로 ‘현대판 이두’ 외국어 홍수…한글 ‘문화 창조력’ 흔들> 김문오(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08. 25.
16. <영어·일어식 번역투 문장 넘쳐> 고정욱(소설가) 09. 01.
17. <처남·고수부지·갓길·윤중제 … 틀린 줄 알면서도 쓰는 말 수두룩> 정재도(한말글연구회장) 09. 08.
18. <취학 전 옛얘기로 언어 감각 키워야> 김영주(초등국어교과모임 회장) 09. 15.
19. <초등생 언어 예절 교육 강화 절실> 이병규(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09. 22.
20. <쪽글읽기·문제풀이 위주 교육/ 독서·토론 문화 배양 가로막아> 김주환(우리말교육연구소 부소장) 10. 06.
21. <영어 안 섞으면 말 못하는 지식인/ 전통 이해에 국어 소중함 알아야> 임동훈(한림대 교수) 10. 13.
22. <어문규정 모순·불분명으로 혼란> 김영봉(연세대 연구교수) 10. 26.
23. <류씨냐 유씨나 두음법칙 논란 /폐지든 강제든 표기 통일 필요> 김세중(국립국어원구원 어문자료연구부장) 10. 27.
24. <‘표준어만 맞는 말’ 인식 배타적> 안상순(금성출판사 사전팀 부장) 11. 03.
25. <표준 발음법 인식 부족/방송인·교육자도 엉터리 발음> 김창진(초당대 교수) 11. 10.
26. <외래어 제멋대로 표기 혼란 초래/ 견해 달라도 합의된 표기법 지켜야> 정희원(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11. 17.
27. <한글 영어식 너무 달라 혼란/ 원음 근접 로마자표기법 따라야> 서반석(레이든대 박사과정) 11. 24.
28. <방언은 국어 어휘의 보물창고> 이태영(전북대 교수) 12. 08.
29. <외국인 한국어교육 들쭉날쭉> 한재영(한신대 교수) 12. 15.
30. <在美 한인2세 한국어교육 열악> 손창현(재미한인학교협의회 회장) 12. 23.
31. <언어규범도 사회유지 위한 약속> 민현식(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12. 30.

      2.2.5. 동아일보 「우리 서로 제대로 불러요」

  <동아일보>는 바람직한 호칭과 지칭어를 포함한 언어예절을 다루는 기획 기사를 2월부터 7월까지 19회에 걸쳐 연재하였다. 호칭과 지칭이 매우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많이 있는데, 실제로는 제대로 쓰고 싶어도 몰라서 못 쓰는 경우가 적지 않기에 이 시리즈를 시작한다고 <동아일보>는 밝히고 있다. 이 글은 실제 사례 중심으로 현실을 진단하고 국립국어원 전수태 연구관의 도움말을 지침으로 제시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수태 연구관이 제시한 전문가 의견은 1992년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표준 화법의 내용을 따르고 있다. 기사에서 다룬 내용과 게재된 날짜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부부 호칭 02. 20.
2. ‘언니’ … 아저씨가 “언니”라니 02. 27.
3. ‘남편’ 지칭 03. 05.
4. ‘아내’ 가리킬 때 03. 12.
5. ‘님’자 붙이기 03. 19.
6. 처부모-시부모 부를 때 03. 26.
7. 여성상사-동료의 남편 04. 09.
8. 오빠의 아내가 나이 어릴 때 04. 23.
9. 여동생남편이 자신보다 나이 많을 때 04. 30.
10. 남편의 동생 부를 때 05. 07.
11. 직장 동료의 부인 부를 때 05. 14.
12. 부모의 형제를 부를 때 05. 21.
13. 연상의 5촌 조카 부를 때 06. 04.
14. 여동생 시부모를 부를 때 06. 11.
15. 항렬이 아래인 먼 친척 부를 때 06. 25.
16. 부친 이름을 주위 사람에 밝힐 때 07. 02.
17. 우리나라를 지칭할 때 07. 06.
18. 문상 땐 말 않는 게 예의 07. 13.
19. 오빠의 아내는 나이 어려도 ‘언니’ 07. 20.

   2.3. 여론 동향

  이 절에서는 신문에 실린 외부 필자들의 기고 및 투고 내용을 중심으로 여론을 정리해 보겠다. 신문에 실리는 글은 각 신문사의 기자들이 쓰는 보도문, 논평문과 외부 인사들의 기고문으로 나눌 수 있다. 사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쓰이는 보도문과 달리 기고문은 특정 사안에 대해 개인의 의견을 표시하는 것이므로, 기고문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여론의 움직임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주요 일간지에 실린 기고문과 독자 투고를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정리해 보겠다.


      2.3.1. 서울시 정책 비판

  국제도시를 표방하며 서울시가 내세운 여러 가지 정책과 관련하여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한글문화연대 대표인 김영명 한림대 교수는 「정신나간 서울시」(<한국일보>, 04. 01.)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하는 일마다 영어를 앞세우는 서울시의 정책이 ‘반풍수 짓’이라고 비난하였다. 버스에 영문자를 크게 써 붙인 일, 도시개발공사의 이름을 ‘SH’라는 영문으로 바꾼 일, ‘하이 서울’이라는 표어를 시내 곳곳에 써 붙인 일, 회의와 공문서를 영어로 하겠다는 일 등이 모두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당장 취소하라고 촉구하였다. 비슷한 내용의 독자 투고들도 여러 건 있었다. 5월 1일부터 1주일간 진행된 서울시의 축제 이름이 ‘Hi! Seoul Festival 2004’였던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낸 의견들이 많았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민간단체가 아닌 서울시가 주최가 되는 만큼 우리말 명칭을 써야 했으리라는 지적이었다(<동아일보> 05. 03., <세계일보>, 05. 07.).
  6월에는 동아일보의 <발언대>란을 통해 서울시 정책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서울시의 해명, 또 다른 반박 의견이 잇따라 게재되었다. 우선 유병한 문화관광부 국어정책과장이 「영어 많이 쓴다고 일류도시 되나」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그는 우리말을 소중히 하는 바탕 위에서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이뤄져야지 서울시처럼 영어 공용어화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신용목 서울시 홍보담당관은 「‘하이 서울’ 한글 경시 아니다」(06. 18.)라는 글로 반론을 제기하였다. 도쿄를 비롯한 세계의 많은 대도시가 상징 표어로는 영어를 사용한다는 예를 들면서 ‘하이 서울’이 우리말을 무시한 결과가 아니라고 해명하였다. 또한, 서울시는 영어 공용화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영어 구사 능력이 향상되도록 도와주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6월 21일자 동아일보 <발언대>에는 김영명 한글문화연대 대표의 「‘하이 서울’ 외국인이 웃는다」는 제목의 재반론이 다시 실렸다. 그는 사업마다 영어를 앞세우는 서울시가 영어 강조 정책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서울이 국제도시가 되려면 외국 도시가 갖지 못한 서울만의 장점을 찾아 홍보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김영명 대표는 이 외에도 <한국일보> 고정 칼럼에 「서울시와 황소개구리」(04. 22.), 「제나라에서도 대접 못 받는 한글」(05. 13.), 「한국 없는 서울, 매력 없는 서울」(07. 15.) 등의 글을 통해 서울시의 영어 관련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2.3.2. 쉬운 말 쓰기 제안 및 우리말 경시 풍조 비난 글

  많은 독자가 우리 생활 주변에 산재해 있는,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어려운 글쓰기에 대해 비판하고 더욱 쉬운 우리말 표현을 찾아 쓰자는 제안을 하였다. 우선 한자 일색의 법률 용어를 쉽게 쓰자는 제안이 눈에 띈다. 4월에 새로 구성된 17대 국회에 대한 제안 형식으로 쓰인 「쉬운 우리말로 법률 만들었으면」(<서울신문>, 05. 07.), 「법률용어 알기 쉽게 바꿨으면」(<세계일보>, 10. 29.) 등이 대표적이다.
  새로 짓는 아파트 등 공동 주택 이름에 뜻을 알 수 없는 외국어투가 많이 사용되는 현실을 비판하는 의견들도 여럿 있었다. 「시티파크 스윗닷홈 디오빌 … 외래어 이름 왜 쓰나 몰라」(<한겨레>, 05. 13.), 「아파트, 주상복합 외래어 이름 눈살」(<문화일보> 05. 14.) 등에서 독자들은 외국어 이름을 더 고급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비난하고 우리말로 주택 이름 짓기 캠페인을 벌여 나가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설명서나 안내문의 내용이 지나치게 어렵다는 지적도 많이 있었다. 「의약 용어 쉬운 우리말로」(<문화일보> 06. 12.), 「이해 안 되는 설명서」(<내일신문> 06. 14.), 「분리수거 표시 한글로 쓰자」(<세계일보> 06. 18.) 등의 독자 투고가 있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관습적으로 한자나 한자말을 많이 사용하는 분야에 대해서도 이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한글로 쓰자는 제안도 여럿 있었다. 「경조사 봉투 한글 이름 썼으면」(<세계일보> 11. 05.), 「‘부고 광고’ 한문 일색 재고해 봐야」(<동아일보> 12. 13.), 「정치인 오찬·만찬 어려운 말 꼭 써야 하나」(<세계일보>, 12. 15.) 등의 글에서 독자들은 우월감이나 권위 의식을 반영하는 한자 사용을 자제하자는 의견을 나타내었다.
  그 밖에 영어에 비해 홀대를 받는 우리말의 현주소를 걱정하고 반성을 촉구하는 내용의 글들이 많이 있었다. 「‘영어 열풍’에 한글 경시 풍조 반성해야」(<문화일보> 05. 06.), 「신문 잡지 제호 왜 외국어인가」(<세계일보> 08. 11.), 「한글을 짓밟는 외래어 간판」(<경향신문> 10. 07.), 「스포츠 유니폼 한글 표기를」(<경향신문> 11.10.) 등이 있다. <내일신문>(11.19.)에는 우리말을 제쳐 두고 영어를 쓰는 정부 기관의 행태를 고발하는 칼럼이 실렸다. 안병찬 경원대 교수가 「정부 ‘그물집’의 쓰레기」라는 글에서 정부 기관의 홈페이지에 마구잡이로 사용되는 영어 표현을 비판하였다.


      2.3.3. 언론의 언어 사용 비판

  누구보다도 바른 언어생활에 앞장서야 할 언론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이 있었다. 「언어 순화 언론이 앞장서야」(<경향신문> 01. 12.)에서는 본래 어휘 의미보다 과장되게 사용하는 언론 특유의 표현 문제를 지적한 것이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총선과 관련한 보도에서 ‘영향력’이면 충분할 것을 ‘파괴력’ 같은 선정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의 문제와 함께 무신경한 외래어 남용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TV 오락 프로 연예인들 비속어 남발」(<세계일보> 01. 30.)에서는 교육적 관점에서 방송에서의 비속어 사용을 비판하였다. 그 밖에 「방송사 우리말 바로 쓰자」(<세계일보> 05. 07.), 「‘방송 언어 오염’ 지적 공감」(<경향신문> 09. 06.), 「방송의 언어 사용 오류 심하다」(<조선일보> 10. 18.) 등에서 독자들은 발음, 규범, 문법, 표현 등 국어의 모든 분야에서 방송이 오류를 범하는 사례가 많음을 지적하였다. 또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방송사의 노력과 함께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할 것을 촉구하였다.


      2.3.4. 우리 말과 글의 중요성

  특정 분야의 언어 사용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말과 글의 중요성을 깨닫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거시적인 시각의 칼럼들이 특히 한글날을 전후하여 많이 실렸다. 남기심 국립국어원장은 「한글이 없었다면…」(<서울신문> 10. 06.)이라는 글에서 우리에게 한글 창제는 서양의 산업 혁명에 비길 수 있는 큰 사건임에도 오늘날 한글을 홀대하는 풍조를 비판하였다. 또한, 한글이 오늘날 우리가 이룬 정보사회의 기초가 되었음을 밝히고, 한글에 보다 긍지를 가질 것을 주문하였다. 한글학회 회원이기도 한 구법회 인천 연수중학교 교장은 「한글 사랑, 평소의 말과 글부터…」라는 글을 <동아일보>(10. 08.)에 실었다. 한글날을 맞아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고 바로 쓰자고 소리를 높이기보다는 평소 자신이 사용하는 말과 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덧붙여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 교육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한자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과 일상적인 문자 생활에 한자를 병용하자고 하는 것은 아주 다른 일임을 지적하였다.
  한글날인 10월 9일에는 관련 기고문이 여러 신문에 실렸다. 남기심 국립국어원장은 「‘1회성 한글 사랑’ 반성을」<문화일보>(10. 09.)이라는 글에서 바른 국어 생활을 위한 언론의 책임을 역설하였다. 1년 내내 국어 문제에 관심이 없다가 한글날만 되면 일제히 관련 기사를 싣곤 하는 언론의 태도를 비판하면서, 실제로는 언론이 우리말 오염과 어법 파괴의 주범임을 꾸짖고, 국어 발전을 위해 언론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글로 세계 문명을 바꾸자」(<중앙일보> 10. 09.)라는 글에서 김주성 한국교원대 학장은 정보화 시대에 적합한 한글을 수출하여, 기계화에 불편을 겪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문자를 한글로 통일하고 문자가 없는 소수 언어 사용자들에게 한글을 보급하자는 주장을 폈다. 김세중 국립국어원 어문자료연구부장은 <경향신문>(10. 09.)에 「세종대왕님, 죄송합니다」라는 기고를 했다. 이 글에서 그는 한글날만 되면 반짝 우리 말과 글을 소중히 여기는 듯하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우리말을 홀대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우리말과 한글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통해 우리 문화를 풍성하게 가꾸어 나가자는 제안을 하였다. 그 밖에 다른 여러 신문에 한글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기고문이 실렸고, 특히 기념일로 격하된 한글날을 다시 국경일로 지정하자는 독자들의 투고가 여러 편 실렸다.


  3. 방송사 우리말 프로그램

  2004년 한 해 동안 각 방송사가 제작하여 방송한 우리말 관련 프로그램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방송은 그동안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우리 언어생활을 오염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되어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꾸준히 우리말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 방영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말글살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2004년은 각 방송사들이 우리말 바로쓰기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한 해이기도 해서, 다른 해보다 관련 프로그램이 많이 제작 방영되었다. 특히 이전의 일방적인 훈계조의 프로그램 구성에서 벗어나 오락성을 가미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자 노력하였다. 방송사별로 우리말 관련 프로그램의 내용과 특성을 알아보고 한글날을 전후하여 제작 방영하였던 특집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3.1. 한국방송공사(KBS)

  KBS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의 정규 프로그램을 방송하였다.
- KBS 1TV 「바른말 고운말」 월~금 오후 4:55
- KBS 1라디오 「바른말 고운말」 월~토 오전 6:56~6:58
- KBS 1TV 「우리말 겨루기」수 오후 7:00 (11월부터 토요일 오후 5:10으로 옮김)
  텔레비전과 라디오로 방송되는 「바른말 고운말」은 1996년부터 시작된 장수 프로그램으로 대표적인 우리말 관련 교양 프로그램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상황을 드라마 형식으로 짧게 방영한 후에 그 속에 나오는 언어사용 예 중에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해설은 KBS 우리말 연구회 소속 아나운서들이 돌아가면서 한다. 한 회당 짧은 드라마가 한 편 또는 두 편씩 삽입된다. 드라마가 두 편 편성될 때에는 드라마 사이에 담당 아나운서가 해설을 하고, 한 편만 편성되었을 때에는 아나운서 외에 다른 전문가들이 출연하여 보다 깊이 있는 설명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주로 다루는 내용은 한글 맞춤법, 표준어, 표준 발음 등 국어 규범에 관한 것들과 어휘 의미, 외래어 순화, 표준 화법 등이다.
  KBS 1라디오로 방송되는 「바른말 고운말」은 우리말 연구회에서 직접 제작한다. 우리말 연구팀을 오랫동안 이끌어 왔던 박경희 아나운서가 출연하여 바른 우리말 표현을 알려 주는 형식이다. 내용은 텔레비전과 마찬가지로 어문규범을 중심으로 국어생활 전반에 대한 것을 두루 다룬다.
  「우리말 겨루기」는 2003년 11월부터 시작된 우리말 퀴즈 프로그램이다. 퀴즈에 참가해 총 5단계의 문제를 푸는데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더 많은 상금을 받게 된다. 최종적으로 5단계의 문제를 모두 맞히면 ‘우리말 달인’의 칭호를 받게 된다. 문제 형식은 맞는 말 틀린 말 골라내기, 우리말 어휘 의미 알아맞히기, 가로세로 퍼즐 풀기 등 다양하다.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의 딱딱한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인데, 교양 프로그램은 항상 재미가 없다는 선입견을 말끔히 없애 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동안 우리말 프로그램은 교수 등의 전문가가 출연하여 잘못된 말을 지적하고 그에 해당하는 맞는 말을 일방적으로 알려 주는 형식이 주를 이루었다. 「우리말 겨루기」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교육적 기능에 오락성을 더하는 시도를 한 것으로, 재미있게 퀴즈를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도록 구성되었다. 시청률도 상당히 높아서 성공적인 프로그램으로 평가받았다. 문제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국립국어원이 직접 참여해 내용 검토를 해 오고 있다.
  그 밖에 오락 프로그램인 「대한민국 1교시」에 국어와 관련된 꼭지가 있어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KBS 2TV를 통해 화요일 11시에 방송되었던 것으로 연예인 출연자들이 특정 주제에 대해서 전문가를 초대해 배우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그 중 9월 14일부터 방송된 41회부터 46회까지에는 ‘국어대국 나랏말쌈’이라는 꼭지를 넣어 평소 잘못 알고 쓰는 우리말을 배우도록 하였다. 인기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가 출연하여 문제를 풀어 가는 과정 속에서 바른 철자와 표준어 등 맞는 말을 알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박경희 KBS 한국어팀장이 전문가로 출연하여 해설을 해 주었다.


   3.2. 문화방송(MBC)

  MBC는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우리말 나들이」를 방송하였다.
- 텔레비전 「우리말 나들이」 월~금 오후 5:30
- 라디오 「우리말 나들이」
  ‘우리말 나들이’는 1997년 12월부터 계속되어 온 우리말 교양 프로그램이다. 아나운서국에서 직접 제작하는 프로그램으로 인기 아나운서들이 직접 출연하여 삽입되는 드라마의 연기도 하고 해설도 하는 형식이다. ‘우리말 나들이’는 오랫동안 방송을 하면서 초기의 규범 중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소재를 찾아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북한이나 연변의 말을 소개하기도 하고, 평범한 시청자를 출연시켜 언어 사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에는 작가들을 출연시켜 흔히 사용하지 않으나 살려 쓰면 좋은 우리말 어휘를 소개해 주도록 하는 방식도 채택하고 있다.
  MBC는 특히 2004년을 우리말 바로 세우기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우리말 청정 프로그램’을 지정하여 운영하였다. 이는 방송 언어에 전혀 오류가 없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겠다는 방송사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10시 50분부터 10분간 방영되는 ‘포토에세이 사람’을 첫 우리말 청정 프로그램으로 지정하였다. 프로그램 제목도 외래어를 벗어나 ‘사람, 사진으로 쓰는 이야기’로 수정하였으며, 이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자막과 대본은 MBC 우리말 연구팀의 사전 감수를 받아 제작하도록 하였다. 해설도 MBC 아나운서 중에서 발음이 가장 완벽하다는 평을 듣는 조일수 아나운서가 맡아 진행하였다. 이는 방송이 우리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은 가운데 그러한 오명을 벗고자 한 첫 시도로써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하겠다.


   3.3. 서울방송(SBS)

  SBS는 「사랑해요, 우리말」이라는 프로그램을 매주 토요일, 일요일 오후 5:00에 방송한다. 2003년 5월에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사실상 국어 관련 교양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만들어 보고자 했던 첫 시도였다. 이전까지 우리말 프로그램은 항상 전문가들이 출연하여 잘못된 말을 바른말로 수정해 주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아나운서들이 연기자로 출연한 드라마를 통해서 바른 표현을 알려 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이전까지 정돈되고 고정된 이미지만 지니고 있던 아나운서들이 다양한 역할을 맡아 연기를 펼치는 것에 많은 흥미를 보였다.
  그 밖에 오락 프로그램인 「학교 전설」에서 인기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받아쓰기를 했던 적이 있다. 토요일 오후 6:00에 방송되었던 이 프로그램은 9월부터 15회에 걸쳐 연예인 약 20여 명을 출연시켜 틀리기 쉬운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 표준 발음법에 대한 문제를 풀게 하였다. 그러나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방송이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였다.


   3.4. 교육방송(EBS)

  교육방송의 「우리말 우리글」은 약 1시간 동안 전문가를 초청해 특정 주제에 대해 알아보는 본격적인 우리말 관련 교양 프로그램이다. 매주 일요일 낮 12시 10분에 방송되었다. 어문규범뿐만 아니라 국어순화, 전문 용어 문제, 북한어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관련 전문가가 자세히 설명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출연 전문가들은 대개 대학의 교수나 국어연구원의 연구원들이다. 프로그램 중간에 ‘우리말 지킴이를 찾아서’, ‘화법 극장’, ‘그래서 이런 말이’ 등의 꼭지를 삽입하여 지루하기 쉬운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구성하였다.


   3.5. 한글날 특집 프로그램

  10월 9일 한글날을 전후하여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KBS 1TV는 1년여의 제작 과정을 거쳐 우리말의 탄생과 발달 과정을 다룬 「위대한 여정 한국어」를 3회에 걸쳐 방영하였다(10월 9일, 10일, 17일 오후 8:00~9:00). 1부 ‘말의 탄생-산과 바다를 넘어’에서는 한국어의 기원을 찾아 떠나는 과정을 추적하였다. 언어학자들은 세계 약 6,000여 종의 언어를 기원적 유사성에 따라 어족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말이 어떤 어족에 속하는지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람스테드가 우리말을 알타이어족으로 분류한 이래 일반적으로 우리말은 알타이어에 속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다른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있다. 방송은 우선 우리말이 알타이어족의 한 갈래라고 하는 북방 언어 기원설을 추적하기 위해 한국알타이어학회 회원들이 몽골과 시베리아 지역에서 한국어의 기원을 탐사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와 함께 유전학, 인류학,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우리 민족이 알타이어를 사용하던 북방으로부터 이동해 왔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한편, 한국어가 드라비다어와 유사한 점이 많다는 점에 착안하여 남방계 언어 기원설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방송 제작팀은 이것도 유전학적, 신화적 근거를 통해 신빙성이 있는 학설임을 보여 주었다. 결국, 지금까지 언어학자들을 만족할만한 결정적 증거를 찾지는 못하였지만, 초기 한반도에 정착한 사람들의 이동 경로로 추정해 볼 때, 우리 민족은 북방의 기마 민족과 남방의 농경민족이 만나서 함께 이루게 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말도 북방 언어와 남방 언어의 특색이 섞여 있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론하는 내용이다.
  2부 ‘말은 민족을 낳고’에서는 언어와 민족 간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현대 일본어와 한국어가 어휘나 문법 등 유사성이 많은 데 착안한 일부 언어학자들은 이 두 언어가 같은 언어로부터 파생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은 고대 한반도에 살던 고구려 사람들이 청동기 문명과 함께 한국어를 일본에 들여왔으리라는 가설을 가지고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들을 찾아본다. 또한, 본래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도 언어가 달라지면 결국 다른 민족으로 분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 언어가 민족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한다. 언어는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도구로서 민족에게 가장 소중한 것임을 언어와 흥망성쇠를 같이한 여러 민족의 예를 통해 보여 주었다.
  3부 ‘말의 길-한국어의 선택’은 영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의 생존 경쟁 상황을 취재하고 21세기 언어 전쟁에서 우리말이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보았다. 중국 헤이룽장성의 오르첸족에게 한글을 보급하고 있는 서울대 이호영 교수를 통해 한국어의 세계화 가능성도 타진해 보았다.
  MBC 텔레비전은 한글의 우수한 소리 표현 능력에 초점을 맞춘 「한글, 소리를 보이다」를 방송하였다. 국내외 언어학자들이 가장 우수한 문자이며,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으로 한글을 주저 없이 꼽는다. 이는 한글의 창제 원리가 과학적, 체계적이기도 해서이지만, 무엇보다도 언어음을 잘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 프로그램은 결론짓는다. 취재진은 청각장애인들이 구화를 배우는 과정과 판소리 창본 등 다양한 사례 연구와 다른 언어 사용자들과의 비교 실험을 통해 한글이 소리를 시각적으로 담아내는 데 뛰어난 문자임을 보여 주었다. 또한, 한글의 창제 원리를 응용하여 캐나다 인디언들에게 그들만의 문자를 발명해 준 국응도 교수의 사례를 들어 한글의 우수성을 보여 주고자 하였다.
  EBS TV는 아시아의 한글 배우기 열풍을 다룬 「아시아는 지금 한국어 전성시대」를 방송하였다. 몽골 울란바토르 대학에서 열린 ‘한글 큰잔치’, 베트남에 불고 있는 한류 바람과 한국어 붐을 취재하여 방영하였다. 현재 일본에서 영어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배우고 있는 외국어는 한국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학원과 공부방 등에서 한국어를 배운 일본인들이 한국어 학습 경험을 통해 한국의 역사, 전통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라디오에서 한국 노래를 소개하는 일본 가수, 사물놀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고교 교사 등을 통해 한일 관계에서 한국어가 갖는 위상을 점검하는 등 아시아 전역에 일고 있는 한국어 학습 열기를 취재한 내용이다.


  4. 맺음말

  지금까지 2004년 한해 동안의 국어 관련 쟁점과 여론을 신문과 방송 보도를 통해 정리해 보았다. 주요 신문들이 고정란을 할애해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등 어느 해보다 우리 말과 글에 대한 논의가 풍성한 해였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해 보면 해마다 비슷비슷한 논의들이 반복된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큰 쟁점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끊임없이 들어오는 영어의 도전에 관한 것이었다. 세계 시민으로 살아가야 할 후속 세대가 영어를 배워야 하는 것은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당위의 사실이다. 그러나 영어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일이 영어 공용어화 주장 등 일상적인 우리 국민 사이의 의사소통 체계에까지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지극히 당연한 이러한 원칙에 대해 충분한 합의가 없기 때문에 영어를 둘러싼 문제가 해마다 불거지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년 동안 가장 큰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서울시의 정책 관련 문제들도 같은 맥락 속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해묵은 논쟁 중의 하나는 한자와 관련한 것이다. 국어 어휘의 상당 부분을 한자가 차지하고 있는 만큼 한자 교육이 우리말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일상적인 문자 생활에 한자를 섞어 써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책의 큰 틀은 한글만 아는 사람들도 공적인 문자 생활을 하는 데에 큰 불편이 없도록 하는 가운데, 한자는 교양 있는 시민을 육성하기 위해 교육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해 한자 교육 열풍의 진원지가 되었던 기업들의 주장, 즉 중국이나 일본과의 교류를 위해서 한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와 일본·중국이 각기 다른 한자와 한자어를 사용하는 현재 상황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시민단체들의 지적대로 중국어나 일본어 전문가를 양성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한자 문제는 각기 층위를 달리해야 할 논점들이 뒤섞인 채로 논의가 반복되는 바람에 어떤 해결책도 찾지 못한 채 소모적인 논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으로는 쉽고 바른말 쓰기에 대한 필요성이 여러 분야에서 제기되었다. 그 중에는 법률의 한글화 등 눈에 띄는 성과를 낸 부문도 있었다. 그러나 언론, 특히 방송에서 비속어 등 잘못된 말을 쓰는 것에 대한 지적은 항상 반복되고 있다. 단순히 문제 제기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방송 언어를 실제로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의 수립과 실천이 필요하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2004년은 문제 제기는 많았던 반면, 구체적인 해결책은 찾지 못한 채 비슷비슷한 논의가 반복되었던 해였다.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더욱 진전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