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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은 셀프(self)라고요?
박용찬(朴龍燦) 국립국어원
  얼마 전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식탁 건너편에서 식당 주인이 나이 드신 할아버지와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식당 주인을 불러 가게 벽에 커다랗게 써서 붙여 놓은 차림표에 대하여 한마디 하신 것이 실랑이의 발단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차림표 밑에 적어 놓은 ‘물은 셀프입니다’라는 문구에서 비롯되었다.
  할아버지께서 그 문구를 보고 “도대체 셀프가 뭐야?”라고 혼잣말처럼 가볍게 질책하듯이 말한 데 대하여 식당 주인이 그 말을 듣고 “그럼 물은 제가 갖다 드리겠습니다.” 하고 친절을 베풀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셀프’라는 말까지 굳이 써야 하느냐 하는 뜻이었는데 식당 주인은 그런 할아버지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아마도 식당 주인은 ‘노인에게 물을 직접 떠다 먹으라니 이게 어느 나라 법이야!’ 정도로 이해했던 모양이다) 할아버지의 말이 더 길어진 것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셨다. “‘물은 손수’나 ‘물은 자기가 직접’ 하면 얼마나 좋아? ‘셀프’ 하면 우리 같은 늙은이가 어떻게 알겠어. 요즘 사회 전반적으로 노인들을 홀대하는 분위긴데 쓰는 말까지도 저러니……” 그러자 식당 주인도 참다 못해 “아니 제가 언제 노인들을 홀대했다고 그러세요?”라고 어조를 높여서 대응하기에 이르렀다. 할아버지께서는 이에 질세라 “그게 아니라 요즘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는 거예요. 주인장에게 하는 말이 아니오. 노인네들이 이런저런 일들로 크게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데 말 때문에 더욱 그걸 실감하고 있다는 말이오. 젊은 사람들은 영원히 안 늙는답디까? 제발 우리 같은 늙은이를 생각해서라도 쉬운 우리말을 씁시다.” 할아버지와 식당 주인은 이처럼 다소 동문서답 식으로 느껴지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실랑이를 벌였다.
  이를 보면서 요즘 모 텔레비전에서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세대 공감”이라는 프로그램의 한 꼭지가 불현듯 생각났다. 신세대와 기성 세대 간의 언어 차이가 아주 커져서 이젠 정상적인 의사소통마저 쉽지 않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신세대는 잘 알지만 기성세대는 전혀 알지 못하는 신조어나 인터넷 언어, 기성세대는 잘 알지만 신세대는 거의 모르는 순수 우리말을 대상으로 알아맞히기 놀이 방식으로 진행하는 꼭지였다. 다소 오락화되어 과장되어 있긴 하지만 거기에서 알아맞히기 놀이의 대상으로 제시되는 말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세대 간의 언어 격차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할아버지와 식당 주인 간에 벌어졌던 실랑이도 결국은 점점 심해져 가는 세대 간의 언어 격차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셀프’는 ‘셀프서비스(self-service)’를 줄여서 쓰는 말로 ‘셀프서비스’는 영어에서 유래한 외래어지만 ‘셀프’는 영어권에서 통용되지 않는 국적 불명의 영어, 즉 가짜 영어이다. 젊은 층에서야 늘 쓰고 보는 말이라서 아주 익숙한 할지 몰라도 초등 교육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분들에게는 ‘셀프서비스’는커녕 ‘셀프’도 아주 낯설기만 할 터이다. 그런 면에서 나이 많은 분들이 이런 말 때문에 크게 ‘홀대받는다’거나 ‘소외당한다’는 생각을 갖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할지 모른다. ‘셀프서비스’, ‘셀프’를 ‘손수 하기’로 하면 뜻도 쉽게 통하고 좋은데 왜 이런 말들을 함부로 쓰는지 참 모를 일이다.
  요즘에는 디지털 사진기나 캠코더가 보급되면서 ‘셀프카메라(self-camera)’라는 신조어도 널리 쓰이고 있다. 줄여서 ‘셀카’라 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을 직접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셀프카메라’는 영어권에서 쓰이지 않은 말이다. ‘셀프서비스(self-service)’에 유추하여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 낸 가짜 영어일 뿐이다. 이 말은 자기 자신을 사진으로 찍는 일이므로 ‘자가촬영’으로 써도 된다.
  ‘셀프(self)’와 ‘셀프카메라(self-camera)’와 같은 가짜 영어를 함부로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들 신조어들은 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데 기성세대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라도 되도록 ‘손수 하기’나 ‘자가촬영’처럼 쉬운 우리말로 대신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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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