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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주의 “추천사(鞦韆詞) -- 춘향(春香)의 말 일(壹)”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원
  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 배를 내어 밀 듯이, / 香丹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 나무와/ 벼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뎀이로부터, / 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 / 아조 내어밀듯이, 香丹아 // 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눌로 / 나를 밀어 올려다오/ 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 // 西으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 바람이 波濤를 밀어 올리듯이 /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다오 / 香丹아. (“鞦韆詞 --春香의 말 壹”, 『서정주시선』, 1955)

  서정주(徐廷柱, 1915〜2000)의 시 “추천사(鞦韆詞)--春香의 말 壹”은 춘향과 이 도령의 연애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5월 단옷날 춘향이가 푸른 나무 사이로 그네 뛰던 모습을 처음 본 이 도령이 사랑을 느꼈던 그 장면을 모티프로 쓴 시이다. 그네뛰기는 아슬아슬한 어지러움과 아찔한 상쾌감을 노리는 놀이이자 운동이다. 1연에서 춘향은 그들의 만남이 시작되었던 그네에서 향단이에게 그넷줄을 밀라고 한다. 춘향이 그네를 타고 하늘을 향해 나아가도록 미는 행위는 1연에서 선원이나 어부가 바다를 향해 배를 미는 행위에, 4연에서는 바람이 파도를 미는 행위에 비유된다. 즉 춘향은 그네뛰기를 통해 지상을 벗어나 하늘로 날아가기를 꾀하고 있는데 뭔가 사연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2연에 오면 그네뛰기의 감각적 느낌이 잘 드러난다. 초여름 5월의 푸른 풀꽃 더미 속에서 나비가 날고 꾀꼬리가 우짖는데, 물오른 수양버드나무에서는 그네가 매어져 흔들리는 아름다운 계절감이 감각적으로 선명히 드러난다. 여기서 2연을 자세히 읽어 보면 단순히 5월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묘사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묘사된 자연물은 실제의 자연물이라기보다 ‘벼갯모’에 수놓인 조형적인 자연물이다. 춘향이 자유를 느꼈던 그네뛰기의 현실적인 5월의 풍경은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던 베겟모의 조형물로 그대로 축소, 이동된다. 단순히 풍경만이 옮겨지는 게 아니라 여기에 더하여 그네뛰기의 어지러움, 현기증, 엑스타시, 심미적 쾌감 등이 함께 옮아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3연에 보면 춘향은 침실 베겟모에 수놓인 5월의 아름다운 풍광 속의 그네뛰기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산호도 섬도 없는 하늘로, 지상을 아주 벗어나려 하고 있고, 4연에서는 서쪽으로 가는 달처럼 구도자의 길을 걸어가려 한다. 달의 속성을 살펴보면 첫째로, 어둠 속에서 빛을 내며 어둠 속에서 고통받는 자를 빛으로 이끄는 존재로 상징된다. 둘째로는 달이 바다의 조수(파도)에 영향을 준다든가 차서 기울고 완전히 기울다가 사흘 동안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추어 버린다든가 하는 과정에서 그 사흘 간의 사라짐은 흔히 죽음으로 비유한다. 이렇게 다시 나타난 달은 재탄생으로 죽음과 재생을 끝없이 이루어가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그런 점을 생각할 때 춘향은 달처럼 죽음을 통해서 부활의 세계로 가고자 하거나 지상을 떠나 서방정토로 가는 구도자의 해탈문에 들어서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데 왜 그럴까? 그것은 춘향과 이 도령의 연애담을 생각하면 잘 알 수 있다. 춘향이 5월 단오에 이 도령을 만나 사랑의 흔들림을 맛보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신분상의 격차를 넘어설 수 없어 이 도령과 이별해야 했고, 한편으로 변 사또의 수청 강요에 대해 살아서 수청을 듣느냐, 죽어서 정절을 지키느냐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자유 의지를 시험당하게 됐다. 이때 춘향은 삶보다는 오히려 죽음을 택한다. 서정주를 비롯한 많은 시인들이(김영랑, 박재삼 등) 춘향의 이런 결단의 순간을 시로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서정주는 단순히 고통을 못 이겨 죽음을 동경한 것이 아니라 춘향도 사랑과 욕망을 떠나 멀리 목숨과 시간에서 벗어나, 달이 서방정토로 가듯이 해탈의 길을 가고 싶다는 불교적 염원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5월 단옷날 그네뛰기 하던 현실의 어지러움은 베겟모의 수(繡) 조형물과 관련된 어지러움으로 바뀌고 다시 지상과 현실을 벗어나려는 우주적인 이동의 어지러움으로 바뀌고 있다. 이 과정을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현실 (5월 단오에 광한루에서 그네뛰기할 때의 어지러움)
축소 (베겟모의 어지러움)
확대 (목숨을 초월하는 도 닦음의 어지러움)

  이와 같이 시 ‘추천사’는 그네뛰기에서 생기는 현기증의 장면을 중심으로 하여, 그 장면의 축소인 베겟모의 장면은 남녀가 만나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면서 느끼는 엑스타시를 보여주고, 다시 달이 지상을 떠나 구름처럼 파도처럼 산호도 섬도 없는 하늘로의 확산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어린 춘향이 사랑에 눈 뜨게 되면서 죽음 같은 고통을 통하여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성숙을 지향함을 보여준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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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