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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용 표현의 이해
  관용 표현과 화자의 의도
김한샘 / 국립국어원
  대부분의 관용 표현은 의미가 같은 단어나 구로 풀어서 표현할 수 있다. ‘미역국을 먹다’는 ‘(시험 등에서) 떨어지다’로, ‘손을 들다’는 ‘항복하다’로 바꿀 수 있다. 한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간단하고 명료한데도 굳이 관용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관용 표현에 화자의 의도를 담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단어나 구를 쓰지 않고 관용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강조, 비난, 비하’ 등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1) ㄱ. 이번 사업 수주를 정치권 인사를 등에 업은 경쟁 회사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ㄴ. 이번 사업 수주는 정치권 인사가 개입해 경쟁 회사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2) ㄱ. 최 박사는 대중 연설을 할 때도 문자를 쓴다면서?
ㄴ. 최 박사는 대중 연설을 할 때도 어려운 한자로 된 말을 섞어서 말한다면서?
  (1ㄱ)의 ‘등에 업다’는 ‘남의 세력에 의지하다’라는 뜻이다. (1ㄱ) 문장에 쓰인 ‘등에 업다’를 일반적인 표현으로 바꾸어 맥락에 맞게 고친 문장이 (1ㄴ)이다. (1ㄱ)과 (1ㄴ)이 전달하는 객관적인 의미는 동일하지만 (1ㄴ)에는 화자의 의도가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등에 업다’라는 관용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1ㄱ)에는 정치권 인사에게 기대어 사업을 수주한 경쟁 회사에 대한 ‘비난’의 뜻을 강하게 드러났다. ‘등에 업다’와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관용 표현으로 ‘등에 지다’가 있다. (2ㄱ)에서 ‘문자를 쓰다’는 한자를 사용해서 불필요하게 현학적인 연설을 하는 ‘최 박사’를 비난하려는 화자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쓰였다. (2ㄱ)을 (2ㄴ)으로 바꾸어 표현하면 이런 화자의 의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3) ㄱ. 저는 능력이 없으니 이번 일도 치마폭 넓은 박 선생한테 맞기시죠.
ㄴ. 저는 능력이 없으니 이번 일도 인맥이 다양한 박 선생한테 맞기시죠.
(4) ㄱ. 그 친구 감투를 쓰더니 주위 사람은 안중에도 없고 안하무인이 되었습니다.
ㄴ. 그 친구 요직에 오르더니 주위 사람은 안중에도 없고 안하무인이 되었습니다.
  (3~4)는 어떤 대상을 비꼬는 데에 관용 표현을 사용한 경우이다. (3ㄱ)의 ‘치마폭이 넓다’는 화자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으면 (3ㄴ)과 같이 바꾸어 쓸 수 있다. 그러나 ‘치마폭이 넓다’는 단순히 아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남의 일에 쓸데없이 간섭하고 참견한다는 의미이다. (3ㄱ) 문장은 실제로 박 선생이 자신보다 능력이 좋고 인맥이 넓으니 일을 양보를 하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라 쓸데없이 나서기 좋아하는 박 선생을 비꼬려는 말이다. ‘치마폭이 넓다’에서 ‘치마폭’을 ‘치맛자락’으로 바꾸어도 같은 뜻이다. (4ㄱ)의 ‘감투를 쓰다’는 벼슬자리나 높은 지위에 올랐다는 의미이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사람이 거만해지고 주위 사람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쓰였다.
(5) ㄱ. 부하 직원들이 다 그놈이 그놈이고 믿을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ㄴ. 부하 직원들이 다 비슷비슷해서 믿을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5ㄱ)의 ‘그놈이 그놈이다’는 둘 이상의 사람이나 사물을 비교할 때에 서로 큰 차이가 없음을 나타내는 관용 표현이다. 그러나 단순히 차이가 없음을 나타내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질이 낮다고 비하하는 뜻이 강하게 드러난다. (5ㄴ)과 같이 바꾸어 표현할 수는 있으나 부하 직원들의 능력이 모자람을 걱정하는 화자의 의도를 드러내기 힘들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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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