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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나(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동아시아학 박사과정)
   나는 불가리아에서 와서, 벌써 5년 넘게 가족과 떨어져 한국 생활을 해 온 밀레나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아들과 손자가 먼 미국으로 떠나 외로워하시는 우리 부모님께서는 막내딸까지 ‘세상의 반대편 끝’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는 말을 듣고, 슬픈 마음을 억누르시면서 "한국화만 되지 말고 빨리 돌아와라."라고 하셨다. ‘한국화는 무슨…….’ 아무리 타국에서 생활을 해도 남의 문화에 쉽게 동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러한 나의 확신과 함께 여행 가방 하나 달랑 들고 2002년 8월 나는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이렇게 시작한 나의 한국 생활은 계획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 과정을 마치고 국제교육진흥원에서 받아 왔던 국비 장학금 기간이 만료되었는데도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동아시아학 전공 박사 과정에 입학하기로 결정하였다. 교육이 내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했고 한국 생활 자체가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즐거운 경험이자 교육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을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문화나 관습이 서서히 나에게도 배어들었다.
   한국 민족은 참 착하다. 단순히 나만의 견해로 볼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 착한 민족이라고 부를 만한 민족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한국 민족이다. 한국에서는 성격 중에 착하다는 것을 매우 높이 사는 것 같다. 또한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한 한국 사람들은 개인보다 사회를 중요하게 여기며 남을 배려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자기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자란 나는 처음에 그러한 한국 문화의 특징을 우습게 보기도 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한국 생활을 하다 보니 양보와 배려 그리고 조화를 위해서 참는 것을 선택하는 마음을 점점 이해하게 되었고, 정이 많고 사귀기 쉬운 나의 한국 친구들이 정말 고맙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착하고 인내심이 많은 것은 무감각하다는 것과 다르다. 자기 감정 표현에 서툰 한국 사람들이 실제로는 매우 섬세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번은 한국 친구와 토론을 할 때 나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한 친구가 가만히 웃는 것을 보고 그 친구가 내 말을 이해 못한 것이라고 오해한 경험이 있다. 그 친구를 붙잡고 한 말을 하고 또 하고 하였다. 돌이켜보면 그 친구도 꽤 답답했을 텐데 심한 말 한 마디도 없이 계속 들어주었다. 외국인 친구의 감정과 기분을 고려하여 다 아는 얘기를 인내심을 갖고 들어준 것이다. 나도 그런 넓은 마음을 가지고 싶다.
   한국 사람들은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이 참 많다. 처음에 한국에 와서 매일 똑같은 질문을 받고 똑같은 대답을 해주는 것도 나에게 정신적인 부담이 되었다. 국적, 나이, 개인 생활 등을 물어보는 아저씨, 아줌마,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리아 문화와 불가리아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궁금해서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 문화와 외국 사회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은 애국심이 부족하지 않지만 자기 것만이 최고라는 오만한 마음이 없고 외국의 문화를 배워서 나라를 더 발전시키려는 자세를 갖고 있다. 또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는 것에 대해 고맙고 기특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마음을 호기심으로 표현해주는 것이다. 어느덧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러한 질문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렇게 한국에서 살면서 개인적인 성향이 누그러지고 이기적인 면이 많이 꺾였다. 직접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것도 배웠다. 가장 큰 변화는 더 이상 한국화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게 된 것이다. 민족과 민족, 문화와 문화는 서로 장점을 받아들이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화되는 것도 세계화되는 과정의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생활이 여러모로 감사하게 생각된다. 오랜 한국 생활을 하면서 점차 늘어난 물건처럼 그동안 내가 얻은 한국과 세계에 대한 경험과 이해, 그리고 쌓인 정은 한국을 떠나게 되면 소중한 기념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