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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고려대학교 한국어문화교육센터/중국)
  음식에는 단맛과 쓴맛, 신맛, 매운맛, 짠맛 등 여러 가지 맛이 있다. 나는 생활의 느낌과 음식의 맛이 같아서 생활의 느낌을 음식의 맛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외국에서 생활할 때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통해 여러 가지 느낌을 갖기 마련이다. 나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지만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했다. 나는 그 느낌을 지금 맛으로 표현해 보려고 한다.


  

  고려대학교 한국어문화교육센터에 등교하는 첫날 일어났던 일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길을 잘 잃어버리는 편이었다. 다른 데도 아니고 우리 고향에서도 길을 잃어버릴 뻔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입학 전에 내 친구가 나를 데리고 집에서 라이시움까지 어떻게 가는지를 자세히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계속 걱정을 하면서 지도를 그려 주려고 했는데 그때 나는 “내가 바보니? 지도는 필요 없어. 혼자 갈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면서 친구 앞에서 똑똑한 척을 했다.
  우리 집에서 라이시움까지는 걸어서 10분쯤 걸린다. 입학식 날에 나는 8시 30분쯤 출발해서 8시 45분쯤에 라이시움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그때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그런데 수업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갑자기 길을 잃어 버렸다. 집으로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전혀 몰랐지만 친구한테 전화해서 물어볼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길에서 만난 여학생에게 “안암동이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그 학생이 깜짝 놀라면서 “안암동이요? 여기가 안암동인데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우리 집이 분명히 안암동에 있는데 혹시 이 사람도 나처럼 길을 모르나?’하고 혼자 생각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한 후에 또 다른 사람에게 길을 물었는데 뜻밖에도 좀 전의 그 여학생과 대답이 같았다.
  사실 나는 안암역을 물어 보려고 했는데 착각을 해서 안암역이 아니라 안암동이 어디인지 질문을 했던 것이다. 나는 고려대학교를 걸으면서 기분이 정말 안 좋았다. ‘배고파 죽겠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어떡하지?’ 생각할수록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때 내 느낌을 맛으로 표현한다면 정말 ‘쓴맛’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 앞에 있는 ‘김밥천국’이 생각났다. 그래서 길가는 다른 사람에게 “김밥천국이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다. 내 질문을 듣고 그 사람은 웃으면서 ‘김밥천국’이 정말 많다고 대답했다. 다행히 나는 ‘하나은행’이 생각나서 “하나은행 맞은편에 있는 김밥천국이에요.”라고 말했다. 그 사람이 드디어 내 말을 알아들었다. 그리고 나를 거기까지 데려다 주어서 나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또 다른 어느 날, 나는 장을 보러 경동시장에 갔다. 야채와 고기를 다 산 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에 진간장이 없는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시장으로 되돌아갔다. 산 물건들이 너무 무거워서 나는 시장에서 제일 가까운 가게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가게 아저씨는 술에 취했는지 가게 안에는 술 냄새가 많이 났고 나를 무시한 채 계속 전화만 하고 있었다. 다른 가게에 가고 싶었지만 짐이 너무 무거워서 포기하고 그냥 아저씨 옆에 서서 아저씨가 전화를 끊기만을 기다렸다. 아마 30분 정도 기다린 것 같았다.
  드디어 그 아저씨가 전화를 끊고 나를 보고 물었다. “뭐 사려고 해요?” 나는 “이거 사려고요”라고 말하면서 진간장 한 병을 아저씨한테 주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오랫동안 기다려서 힘들었죠?“라고 질문하고 이런저런 말을 계속하면서 비닐 팩과 비닐장갑 같은 것을 가져와서 진간장과 같이 한 봉투에 넣었다. 나는 그 아저씨가 왜 그렇게 하는지 몰라서 “아저씨, 저는 외국인인데요, 지금 아저씨가 하시는 말씀을 잘 못 알아듣겠어요. 죄송하지만 저는 진간장만 사려고 하거든요.”라고 아저씨에게 말했다. 아저씨는 “아, 정말 외국인이에요? 못 알아봤어요. 이거 모두 3,000원이에요.”라고 말하면서 나에게 그 봉투를 주었다. 내가 깜짝 놀라면서 “아저씨, 저는 진간장만 살 거예요.”라고 말하자 아저씨는 “이건 공짜예요. 내가 전화할 때 오랫동안 기다려서 주는 선물이에요. 한국생활이 힘들죠? 잘 사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정말 감동했다. 부모님을 떠나 외국에서도 이런 따뜻한 말을 들을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그때 느낌을 맛으로 표현한다면 정말 ‘단맛’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생활한 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한국생활에 대한 느낌이 아직 다양하지 않다. 앞으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또 어떤 느낌을 받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 느낄 수 있는 ‘맛’이 무엇일지 정말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