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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사)전국국어교사모임 사무총장, 한성과학고 교사)

  내가 몸담고 있는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는 해마다 <전국 중·고등학생 이야기대회>를 열고 있다.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는 이 행사는 그야말로 방방방곡에서 모인 이야기꾼들이 벌이는 이야기꽃 잔치다. 이야기대회가 뭐냐고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을 줄 안다. 그거 ‘웅변 대회’, ‘자기 주장 말하기 대회’와 비슷한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렇게 헛갈리는 분들은 먼저 이야기 한 도막을 들어 보시라.

  그래 가 거창에 건계정에 가니깐 비가 안 오는 기라. 나는 좋다고 막 “아빠, 여기 있네, 여기 있네.” 이카면서 딱 뛰어 내렸거든. 그 밑에 내리막길이라 갖고 폴짝 뛰내리다가 미끄럼 탔는 기라. 엉덩이 아파 죽겠는데 막 똥구멍 째질라 카고 막.(손을 엉덩이에 갖다 대고 폴짝폴짝 뛰면서)(청중 : 하하하…) 엄마는 막 꼬라 보면서 “전촐싹, 전촐싹” 이카는 기라. 또 엄마가 머라칼까바 무서버 갖고 “아이고, 재미있다, 재미있다.”카면서 재미있는 거처럼 하고 있었거든. 아빠는 저 위에서 천천히 낚싯대 내려놓고. 아빠가 와 갖고 “뒤에 나와라이 뒤에 나와라이.”이카고 낚싯대 딱 잡고 딱 던졌어(마이크를 잡고 낚시 던지는 시늉을 하며). 그래가 낚싯대가 바늘이 돌에 딱 걸렸어. 저 아래. 그러이까 “아이구 천 오백원, 천 오백원, 천 오백원 어짜노.”이카고 마악 막 이카고 있는데. 낚시 바늘 그거 버리고 한 개 더 달아 갖고 “뒤에 나와라이.”카는데 존나 흥분 돼 갖고 뒤에 폴짝폴짝 뛰어 다니고 있는데 입에 뭐가 차악 이카는 기라.(하하하…) (2002년, 중1 전병헌)

  아빠와 함께 낚시를 하러 갔다가 일어난 일을 아주 신명나게, 듣는 사람들에게 마치 그 곳에 있는 듯이 생생하게 표현하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야기’가 우리말 교육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갈래임을 알 수 있다.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제 스스로 하거나, 또는 남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상하는 힘을 길러준다. 또 이런 마음에서 꿈꾸고 생각한 바는 어떻게든 행동으로 나타나고 현실에 드러나고야 만다. 이렇게 행동으로 드러내려면 이야기 거리(자료)를 마련하고, 엮어 낼 수 있는 솜씨가 있어야 한다. 이런 솜씨가 곧 창조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또한 이야기는 언제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가운데서 주고받는다. 이야기판에는 언제나 웃음이 용솟음치고 재미가 넘친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나 괴로워하거나 힘들어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다투어 이야기를 하려고 나서고, 서슴없이 끼어들어 비평하여도 속상하지 않는다. 이렇게 누구나 거리낌없이 나서서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을 이야기 교육은 만들어간다. 여기에 보탤 게 있다. 백성들이 가슴과 가슴으로 이어온 우리 입말, 토박이말들이 이야기를 타고 되살아온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 동네 토박이말을 찾아서 즐겁게 부려 쓸 수 있을 때 교육도, 사회도 훨씬 풍성해지지 않겠는가?
  자, 앞에 이야기꾼이 전해주는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을 위해 더 들어보자.

  놀래 갖고 딱 보니까 (윗입술을 잡으며) 여기 낚시 바늘이 걸렸는 기라.(하하하…) 아빠는 “돌 빼라, 돌 빼라, 바늘 돌에 걸렸다”이카는데 돌이 아니고 나한테 걸렸는데 얼매 아프겠노.(하하하…) 자꾸 돌 빼라 이카제. 뭐 끌려 가제. 으으 이카고 끌려 가제. 말도 못하는 기라. (하하하…) 바늘이 걸려 갖고 말도 못하는 기라. 그래가 아빠보고 엄마는 “아이구 현이 아빠 현이 아빠, 현이 입에 걸렸어요.” “뭐라?”카니까 낚시 바늘이 입에 물려 갖고 피가 막 나는 기라. 아빠가 차에 올라가디마는 연장을 가 오는 기라. 그날따라 연장 뺀찌가 이 장딴지만한 기라.(하하하…) 내가 놀라 갖고 막 엄마는 기겁해서 119불러라 카제. 우리 아빠는 나보고 “야 임마, 내가 만물박사다.” 막 이카는 기라. (하하하…) “내가 의사다.”이카는데 할말 있나. 우리 아빠 어떻게 해서 두 개는 뺐어. 한 개가 깽기가 안 나오는 기라. 그래 갖고 막 빼니까 빵꾸가 뽕 난 기라.(하하하…) 피가 줄줄 흐르고 막 “아이고, 우야겠노, 우야겠노. 병원 가자” 우리 엄마는 이카는데 우리 아빠가 “괘앤찮다, 괘앤찮다.”카면서 집에 휴지로 막고 왔어. (아래 줄임)

  우리 교실은 언제나 학생들의 말로 시끌벅적하지만 정작 여러 사람 앞에 나와서 재미있게 이야기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펼쳐서 말하는 학생은 드물다. 동무하고 놀 때는 입말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비해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할 때에는 알게 모르게 표준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부담감 또한 적지 않다. 이런 딱한 사정에 놓여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야기꽃이 교실마다, 동네마다, 활짝 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여러분도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이야기꽃 잔치에 한번쯤 귀동냥 해 보시기를….

※ 이야기대회에 대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은 전국국어교사모임(www.naramal.or.kr)을 두드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