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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이번 호에서도 지난 호에 이어 한국편집기자협회에서 마련한 상을 받은 제목을 보기로 한다.


  

  이 자리에서는 수사법에 따른 분류 중 원용법형을 활용한 제목을 살펴본다. ‘원용법형’은 여러 대상에서 원용하는 유형이다. 원용되는 대상에는 인용되는 대상과 마찬가지로 경구, 속담 · 격언, 관용어, 사자성어, 유행어 · 회자어(膾炙語), 통계 등이 있는바 여기에서는 유행어 · 회자어 원용법형으로 한정한다.

   (1)~(3)은 광고 문안이나 그 밖의 유행어이다. (1)은 30여 년 전부터 유행했던 어떤 약품의 광고, “이 소리가 아닙니다. 저 소리도 아닙니다. 이 소리입니다”라는 문안과 상당히 닮았다. (2)는 황상재 위원의 언급대로 코미디 황제 이주일 씨가 전성시대에 즐겨 말하여 널리 퍼졌던 ‘못 생겨서…’를 원용하였고, (3)은 ‘묻지 마 투자’, ‘묻지 마 채권’ ‘묻지 마 유학’ ‘묻지 마 패션’ 등으로 큰 세력으로 계속 번져 가는 ‘묻지 마’를 활용하였다. (4)도 제목을 보는 독자들이 순간적으로 봉준호 감독 · 송강호 주연의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5)와 (6)은 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려 우리에게 친숙한 시구(詩句)를 생각하게 한다. (5)는 김택근 위원의 언급대로 고(故) 김춘수 시인의 작품 ‘꽃’의 한 구절을 원용하였고, (6)은 ‘춘향전’의 이몽룡이 과객(過客) 차림으로 변 사또의 잔치 자리에 나타나 지은 시를 떠오르게 한다. “… 촛농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백성의 원성도 높아라(燭淚落時 民淚落 歌聲高處 怨聲高)와 리듬도 비슷하다.


  

(경향신문 정진호 2005. 7. 26. M1. 김택근)

  이 기사는 17개국의 대학생 봉사단이 민통선 마을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벌이는, 소재는 이색적이지만 비교적 평범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목이 전체 기사를 살아 있게 만들었다. 젊은 대학생들이 찾아가자 민통선은 민간인 통제선도 아니고, 민족에게 고통을 주는 분단의 선도 아니며, 비로소 민족이 소통하는 선으로 피가 돌았다는 것이다. 이는 취재기자가 사회학자라면 편집기자는 왜 철학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말해 준다. 분단으로 멈춰 서 있던 민통선의 시계를 젊은 대학생들이 다시 흐르게 만든 것을 편집기자는 기사의 행간에서 보았던 것이다.


  

(스포츠서울 이상표 2002. 8. 28. 1. 황상재)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이주일의 유행어를 상기시켜 주는 제목과 함께 그가 웃고 있는 사진을 역설적으로 사망 기사와 연계한 기사는, 스포츠 신문이라는 특성을 잘 살린 제목이라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에게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중도일보 김숙자 2005. 4. 6. 6. 김택근)

  “영세 전세버스 ‘묻지마 안전’”은 제목만 봐도 무슨 기사인지 훤히 알 수 있다. 명쾌하다. 읽어 보니 버스 영세업자들이 제도적 허점을 악용, 감독기관의 안전 점검을 받지 않아 사고 위험이 높다는 기사이다. 만일 이 기사에 “영세버스 안전 불감증”이라든지 “사고 싣고 달리는 영세버스” 등의 제목을 달았다면 밋밋할 뻔했다. 행락철 ‘전세버스’ 하면 ‘묻지 마 관광’이 떠오르고, 이를 다시 ‘묻지 마 안전’으로 변용한 기자의 재치와 순발력이 돋보인다.


  

(조선일보 한정일 2004. 1. 3. 2. 구자건)

  간결성과 함축성이 오히려 긴 여운을 남기는 ‘생각하게 하는 제목’으로 편집의 묘미를 한껏 살린다.


  

(영남일보 안희정 2004. 11. 29. 12. 김택근)

  김춘수 시인의 부음 기사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인의 시에서 이미지를 끌어와 ‘하늘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고 제목을 달았다. 하늘이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하늘에 올라 비로소 시인이 된다는 뜻일 것이다. 이런 제목을 다는 기자도 시인과 다름없다.


  

(경향신문 박세영 2003. 1. 17. 19. 조시행)

  허술한 ‘상가 임대차 보호법’을 잘 꼬집은 제목이다. 엉거주춤한 정부 측 태도에 한숨짓는 영세 상인들의 모습을 잘 반영한 점을 높이 샀다.

  이 인용· 원용법형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대목이나 그와 비슷한 내용을 보여 우선 심리적으로 거리감을 줄이고 친근감을 주어 독자에게 다가가게 하는 기법이라 하겠다. 수십, 수백 명이 모여 있는 중에서도 자신의 가족은 이내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 오페라를 감상하다가 귀에 익은 아리아가 나오면 더욱 귀를 쫑긋 세우고 들으며 연주가 끝나면 더 힘찬 박수를 보낸다는 사실과도 무관치 않으리라 본다.
   이 밖에도 수상 작품 못지않은 훌륭한 제목이 곳곳에 많이 숨어 있을 것이다. 또한 수상 작품이라도 일일이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저런 제약 속에서나마 이상의 몇몇 예를 보면 고뇌하면 고뇌할수록 큰 빛을 발하는 제목이 피어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