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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성(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회 선임연구원)

  이번 호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한글 주소: 말터, 영문 주소: www.malteo.net)’에서 다듬은 말들 가운데 글쓴이의 생각으로는 예쁘게 잘 다듬은 것 같은데도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말터’ 안에만 갇혀 있는 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말 다듬기의 주체로서 ‘말터’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만큼, 이젠 그동안 다듬은 말을 어떻게 널리 퍼뜨릴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1) 블로그(blog) → 누리사랑방

  ‘개인이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는 웹사이트’를 가리켜 ‘블로그’라고 한다. ‘웹(web)’의 ‘w'도 아닌 ‘b’에다 ‘항해 일지’나 ‘여행 일기’를 뜻하는 ‘로그(log)’를 합쳐서 만든 말이라니 영어를 어지간히 한다는 사람도 아마 이 말을 처음 듣고는 어떤 말인지 알아채지는 못했을 것이다. 주위 사람의 설명을 들어 보니, 처음에는 ‘공개된 일기장’과 같은 개념으로 출발한 것인데, 지금은 여론 형성의 도구로 쓰이거나 전문 지식을 널리 알리는 도구로도 많이 활용된다고 한다. ‘블로그’의 주인이 자기의 일상이나 관심사, 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전문 지식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여기를 방문해서 좋은 정보가 있으면 퍼 가기도 하고, 의견을 덧달기도 하면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옛날 ‘사랑방’이 꼭 이런 공간이었다. 친인척이나 이웃, 또는 지나가던 나그네가 사랑방에 들러 집주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사극에서 더러 볼 수 있는데, 지금은 ‘블로그’가 그런 일을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블로그’ 대신 ‘누리사랑방’을 쓰기로 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누리사랑방’은 ‘미니홈피’의 다듬은 말로 더 적절할 것 같다고도 하는데, ‘미니홈피’는 정보의 공유보다는 개인의 일상이나 관심사를 드러내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블로그’와 차이가 있어, ‘미니홈피’를 ‘누리사랑방’으로 다듬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공식적으로 다듬은 말은 아니지만 흔히 ‘홈페이지’를 ‘누리집’으로 고쳐 부르고 있으므로 ‘미니홈피’는 이 말을 이용해서 다듬는 것이 나을 것이다.

  (2) 커플 매니저(couple manager) → 새들이

  요즘엔 새로운 직업, 특히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업의 이름은 대개가 외국어이다. ‘네일 아티스트’, ‘웹 디자이너’, ‘펀드 매니저’, ‘파티 플래너’, ‘숍 마스터’ 따위가 그런 예들이다. 외국어로 불려야 더 전문적이고 고급스러워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는 우리말로 불러왔거나 우리말로 쉽게 고쳐 쓸 수 있는 직업 이름마저도 요즘에는 외국어로 바꿔 부르는 일이 흔하다. ‘매니저’, ‘시이오(CEO)’, ‘프로듀서’, ‘엠시(MC)’, ‘스튜어디스’ 따위가 그런 예들이다. 우리말이 이렇게 천대를 받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우리 정부의 언어 정책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심히 안타까울 따름이다.
  ‘커플 매니저’도 중매를 전문으로 하는 결혼 정보 회사라는 것이 생기면서 더불어 나타난 새로운 직업 이름이다. 직업으로 인정받지도 못하던 ‘중매쟁이’가 어엿한 전문직으로 거듭난 셈인데, 하필 외국어인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렇다고 ‘중매쟁이’ 또는 ‘중매인’을 ‘커플 매니저’의 다듬은 말로 정하기는 어렵다. 낱말마다 사전적인 의미 말고도 그 사회에서 공유되는 말맛이 있는데, ‘중매쟁이’나 ‘중매인’에는 왠지 천박하고 속된 느낌이 담겨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들이’는 이런 고민을 말끔히 씻어 주는 말이다. ‘새들이’는 ‘혼인을 중매하다’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인 ‘새들다’를 이용하여 누리꾼이 직접 만든 말인데, 말맛도 좋고 발음도 듣기 좋아 여러 모로 ‘커플 매니저’를 대신할 말로 적절해 보인다. 앞으로 이런 말이 많이 발굴되어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

  (3) 드레싱(dressing) → 맛깔장

  글쓴이는 고기를 그냥 먹기보다는 된장이든 소금장이든 찍어 먹는 걸 좋아한다. 볶음밥을 먹을 때는 케첩을 덧뿌려서 먹는 게 더 맛있고, 맥주 안주로 제격인 육포를 먹을 때는 잘게 썬 마늘을 넣은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 걸 즐긴다. 어떤 이는 뭘 찍어 먹거나 덧뿌려 먹으면 음식의 제 맛을 느낄 수 없다고도 한다. 식성이야 제각각이므로 이 자리에서 뭐가 더 나은지를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글쓴이는 음식의 제 맛보다는 그 음식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을 찾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 제대로 그 음식을 먹는 거라고 생각한다.
  음식마다 그 맛을 돋워 주는 장이나 소스, 또는 양념이 있게 마련인데 요즘엔 그 종류도 무척 다양해져서 요즘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것들도 많이 보게 된다.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이 바로 ‘드레싱’이다. 영어가 짧은 나는 처음엔 음식 만드는 일이 옷 입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기에 그러나 했는데, 나중에 그것이 서양식 요리에 두르는 소스를 가리키는 말인 것을 알고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식당에서 드레싱이 뭔지 몰라서 허둥지둥하기 전에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맛깔장’은 그래서 참 반가운 말이다. 말 그대로 맛깔스럽게 지은 말이라고나 할까? 이 말을 처음 듣는 사람도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해서 찍거나 뿌려서 먹는 장’이라고 해석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기에, 그게 뭔지 몰라서 허둥지둥할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우리말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말을 다듬는 것은 아니다. 다듬은 말이 다듬을 말보다 사람들을 더 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듬을 말이 소외해 온 많은 이들을 다듬은 말은 소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널리 퍼져 있는 외국어를 갑자기 우리말로 다듬어 쓰는 그 잠깐 동안은 불편할 수 있지만,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다듬은 말을 쓰게 되면 그런 불편함은 금세 사라지게 된다. 이미 ‘누리꾼’에서 그것을 확인하지 않았는가?

  (4) 후카시(ふかし[吹かし]) → 품재기

  우리나라에서 ‘후카시’는 ‘실제로는 별 볼일 없으면서도 남에게 대단하거나 멋있어 보이도록, 어깨나 눈에 잔뜩 힘을 주거나 목소리를 착 깔거나 말을 과장하여 하는 따위의 일’을 속되게 이를 때 쓰는 말이다. 한번은 아내에게 ‘후카시를 잡다’를 우리말로 하면 뭐가 좋을지를 물어 본 적이 있었는데, 아내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폼을 잡다’로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나에게 되물은 적이 있다. 내가 ‘폼(form)’은 영어라고 하니까 그제야 무릎을 치면서 새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뽐을 내다’의 ‘뽐’이 ‘폼’과 소리가 비슷하여 그렇게 착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했지만, 뻔한 영어마저 우리말로 인식될 만큼 우리말의 입지가 점차 줄어드는 현장을 목격한 듯하여 마음이 아팠다. 정작 ‘후카시를 잡다’를 대신할 우리말은 찾지도 못한 채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말터’에서 ‘후카시’를 ‘품재기’로 바꿨다는 소식을 듣고, 역시 여럿이 머리를 모아야 좋은 말도 찾아진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품재기’는 ‘행동이나 말씨에서 드러나는 태도나 됨됨이’를 뜻하는 ‘품’과 ‘잘난 척하며 으스대거나 뽐을 낸다’는 뜻을 가진 ‘재다’를 이용하여 만든 말이다. ‘품’과 ‘재다’의 사전 의미만으로도 쉽게 ‘품재기’의 뜻을 알아낼 수 있을 만큼 잘 지은 말이다. 우연하게도 ‘품’은 ‘폼(form)’과 소리도 비슷하다.
  ‘후카시’를 ‘품재기’로 다듬었으면 ‘후카시를 잡다’는 ‘품재기를 잡다’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도 더러 있다. ‘후카시를 잡다’는 ‘품재기하다’ 정도로 다듬어 쓰면 될 것이다.

  (5) 그룹 홈(group home) → 자활꿈터

  우리 주위에는 조금만 둘러보면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이 있다. 실제로 그런 곳을 손수 찾아나서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을 베푸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달동네에서 야학을 운영하는 이들, 억울한 피해를 입은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해 주는 이들, 가정 폭력이나 학교 폭력에 시달린 아이들을 위로하며 보호해 주는 이들, 노숙자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해 주는 이들 등등.
  그런데 요즘의 봉사 활동은 어려운 이들의 피난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 방법을 마련하는 데에 더 관심을 둔다. 그런 대표적인 예가 ‘그룹 홈’이다. ‘그룹 홈’이란 ‘어려운 환경에 처한 노숙자, 장애인, 가출 청소년 등이 자립할 때까지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공동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든 소규모 시설. 또는 그런 봉사 활동이나 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기존의 대규모 보호 시설에 비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가족처럼 세심하게 보살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룹 홈’이라는 말만 듣고는 위에서 설명한 봉사 활동이나 제도를 쉽게 떠올릴 수는 없다는 점이다. 영어가 짧은 글쓴이는 단순히 ‘무리로 된 집’으로밖에 생각이 안 들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대체로 우리말로부터도 소외되어 있다. 그들은 신문에 쓰인 어려운 외국어나 한자어를 이해하지 못해 정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관보에 쓰인 어려운 행정 용어를 이해하지 못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어려운 법률 용어를 이해하지 못해 입지 않을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결국 우리말로부터 소외된 사람은 대체로 경제적으로도 어렵게 되는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공공의 언어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특히 소외 계층을 배려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쓰여야 하는 것이다. 정보의 불균형 상태는 끊임없이 소외 계층을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소외 계층을 위한다는 ‘그룹 홈’은 역설적이다. 비소외 계층을 위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도움을 원하는 한 가출 청소년이 ‘그룹 홈’이 바로 자기가 원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나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번에 ‘그룹 홈’을 ‘자활꿈터’로 다듬은 것은 참으로 환영할 만하다. 앞으로는 이름 하나 짓는 데에도 늘 이와 같은 배려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