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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오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생각이 뒤엉켜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서둘러 글을 쓰다 보면, 문장 성분의 호응 관계를 지키지 않는 실수를 종종 하게 된다. 우리 주변의 글에서 의외로 문장 성분의 호응 관계를 지키지 않은 예들이 많다.

1) 소수점 입력 방법은 _ 버튼을 누릅니다.
→ 소수점 입력 방법은 _ 버튼을 누르는 것입니다.
→ 또는 ‘소수점을 입력하려면, _버튼을 누르세요’
원문은 대체적인 의미만 전달할 뿐,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 관계를 지키지는 못했다. ‘방법은 …… 누릅니다.’가 아니라 ‘방법은 ……하는 것입니다.’로 고치든지 ‘소수점을 입력하려면, _ 버튼을 누르세요.’로 고칠 필요가 있다.
2) 가스 호스는 안전하게 설치하세요. 가스 누설이나 화재의 원인이 됩니다.
→ 가스 호스는 안전하게 설치하세요. 가스 호스 연결부가 느슨해지면 가스가 누설되거나 화재가 납니다.
원문은 주어가 누락되어, 가스 누설이나 화재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가스 호스가 안전하게 설치되지 않는 것은 가스 누설이나 화재의 원인이 됩니다.” 또는 “가스 호스가 안전하게 설치되지 않으면 그것이 가스 누설이나 화재의 원인이 됩니다.”처럼 주어를 밝히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은 좀 고지식하고 딱딱하게 문장을 다듬는 방법이다. 이를 좀 더 자연스럽게 고친다면 위 수정문처럼 다듬을 수 있다.
3) 제안서, 안내서의 교부는 신청자에 한하여 교부합니다.
→ 제안서, 안내서 신청자에 한하여 교부합니다.
주어와 서술어만 바로 연결해 보면 ‘…… 교부는 …… 교부합니다’로 된다. 주어 부분의 ‘의 교부’를 삭제하면 주어-서술어의 호응 관계도 맞고 의미상의 중복도 해결된다. 물론 “제안서, 안내서의 교부는 신청자에 한합니다.”로 고칠 수도 있으나 이 방법보다는 위 수정문처럼 고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4) 각 취급 기관의 장은 기술 개발 중인 사업자가 기술의 한계, 전문가 부족 등 애로 사항이 발생할 경우, 확보하고 있는 전문 인력에게 기술 지도와 상담을 하게 할 수 있다.
→ 각 취급 기관의 장은 기술 개발 중인 사업자가 기술의 한계, 전문가 부족 등 애로 사항을 호소할 경우, 확보하고 있는 전문 인력에게 기술 지도와 상담을 하게 할 수 있다.
맨 앞에 주절의 주어인 ‘각 취급 기관의 장은’이 놓이고, 그 뒤에 삽입절(기술 개발 중인 …… 경우)이 온 후, 주절의 나머지 부분이 이어지는 구문이다. 그런데 삽입절에서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 관계가 잘못되어 있다. 주어는 두 개(‘사업자가’, ‘애로 사항이’)가 있지만 서술어는 하나(‘발생할’)뿐이기 때문이다. ‘사업자가’를 주어로 한다면 그에 호응하는 서술어가 없으므로 나머지 부분을 주어에 맞게 수정하여 ‘사업자가 …… 애로 사항을 호소할 경우에’ 정도로 고쳐야 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문장 성분의 호응 관계가 깨어진 문장은 생각을 명쾌하고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문법을 잘 지키며 글을 쓰는 일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충분 조건은 아니지만 필요 조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글을 다 쓴 후에 문장 성분의 호응 관계만이라도 점검하는 일을 습관화한다면 좋은 글을 쓰는 데 진일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