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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찬(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일본어 투 용어 가운데에는 순 일본어, 일본식 한자어 말고도 일본식 발음의 서구 외래어, 일본식 외래어(대개 영어임), 이들 외래어의 혼합형 등도 적지 않다. 이는 과거에 서구와 직접 문화를 교류하는 과정에서 서구 외국어를 차용하지 않고 일본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서구 외국어를 차용한 데 따른 결과이다.
  일본식 발음의 서구 외래어로는 초기에 ‘고뿌( kop, →잔)’, ‘란도셀( ransel, →멜빵 가방)’, ‘렛테루( letter, →상표)’, ‘뼁끼( pek, →페이트)’, ‘엑키스( extract, →진액)’ 등이나 ‘자몽( zamboa, →그레이프프루트)’, ‘조로( jorro, →물뿌리개)’ 등처럼 네덜란드어나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 말들이 많았다. 일본은 아주 오래전부터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등과 문물을 교류해 왔다. 그 결과 일본어에는 네덜란드어나 포르투갈어에서 차용한 말이 상당히 많다. 이들은 우리가 일본어에서 일본식 발음 그대로 다시 차용해서 쓰는 말이다. 우리말로 완전히 굳어진 ‘빵’도 포르투갈어에 기원을 두고 있는 일본어에서 차용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선 영어에서 유래한 일본식 발음의 서구 외래어가 크게 압도하고 있다. 일본 또한 20세기 이후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등보다는 영어권 국가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아서 영어로부터 차용된 말이 일본어에서 크게 늘어난 때문이다. ‘공구리(concrete, →양회 반죽)’, ‘다스(dozen, →열두 개)’, ‘다시(dash, →줄표)’, ‘도랏쿠(truck, →화물차)’, ‘마후라(muffler, →소음기)’, ‘바케쓰(bucket, →들통)’, ‘반도(band, →띠)’, ‘밤바(bumper, →완충기)’, ‘밧테리(battery, →건전지)’, ‘빠꾸(back, →후진)’, ‘빠찌(badge, →휘장)’, ‘샷시(sash, →창틀)’, ‘샷다(shutter, →덧닫이)’, ‘쓰레빠(slipper, →실내화)’, ‘조끼(jug, →잔)’, ‘카타로구(catalogue, →일람표)’, ‘화이바(fiber, →안전모)’, ‘후롯쿠(fluke, →엉터리/어중치기)’ 등이 영어에서 유래한 일본어의 대표적인 예인데 우리는 이들을 일본식 발음 그대로 다시 차용해서 쓰고 있다.
  특히, 이들 일본식 발음의 서구 외래어는 외래어 표기법과 관련하여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공구리’, ‘다시’, ‘도랏쿠’, ‘마후라’ ‘반도’, ‘밤바’, ‘빠찌’, ‘샷다’, ‘샷시’ 등이 외래어 ‘콘크리트’, ‘대시’, ‘트럭’, ‘머플러’, ‘밴드’, ‘범퍼’, ‘배지’, ‘셔터’, ‘새시’ 등과 함께 마구잡이로 뒤섞여 쓰이고 있어 표기상의 혼란을 초래하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표기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일본식 발음의 서구 외래어는 적어도 올바른 한글 표기로 바꾸어 쓸 필요가 있다. ‘사라다(←salad)’, ‘주부(←tube)’ 등을 ‘샐러드’, ‘튜브’ 등으로 다듬어 쓰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일본어 투 용어 가운데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지만 일본식 영어도 크게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식 영어는 가짜 영어로서 일반적인 영어 지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일반 국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로막는다. 그런데 우리가 쓰고 있는 가짜 영어의 대부분은 이러한 일본식 영어에서 기원한다. 일본식 영어로는 ‘난닝구(←running shirt, →러닝셔츠)’, ‘도란스(←transformer, →변압기)’, ‘레지[←register, →(다방) 종업원]’, ‘멜로(←melodrama, →통속극)’, ‘빵꾸(←puncture, →구멍)’, ‘스뎅(←stainless, →안녹쇠)’, ‘에로[←erotic, →선정(적)]’, ‘오바(←overcoat, →외투)’ 등처럼 영어 단어나 구의 앞부분을 잘라서 새로이 만들어 낸 것도 있고 ‘미숀(←transmission, →트랜스미션)’, ‘뻬빠(←sandpaper, →사포)’, ‘홈(←platform, →플랫폼)’ 등처럼 영어 단어의 뒷부분을 잘라서 만들어 낸 것도 있다. 그리고 ‘레미콘[←ready-mixed concrete, →회 반죽 (차)]’, ‘리모콘(←remote control, →원격 조정기)’, ‘퍼스컴[←personal computer, →개인(용) 컴퓨터]’ 등처럼 영어의 구 구성에서 각 단어의 앞부분을 잘라 이들 조합하여 새로이 만들어 낸 것도 있고 ‘쇼바(←shock absorber, →완충기)’처럼 영어의 구 구성에서 앞 단어의 앞부분과 뒤 단어의 뒷부분을 잘라 이를 조합하여 새로이 만들어 낸 것도 있다.
  심지어 ‘리야카(rear car, →손수레)’, ‘백미라(back mirror, →뒷거울)’, ‘올드미스(←old miss, →노처녀)’ 등처럼 영어 단어를 인위적으로 조합하여 새로이 만들어 낸 것도 있고 ‘워카(walker, →군화)’처럼 영어 본래의 뜻을 바꾸어 쓰는 것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일반적으로 일본어식 발음이 아닌 영어 본래의 발음에 가깝게 소리 내거나 적는다. 그리하여 일반 국민 상당수에게 이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진짜 영어처럼 인식된다.
  그 밖에 일본어 투 용어에는 ‘가라오케[←空(から)orchestra, →녹음 반주]’, ‘가라쿠[←空(から)cushion, →민쿠션 치기]’, ‘가오 마담[顔(かお)madam, →얼굴 마담]’, ‘한쓰봉[←半(はん) jupon, →반바지]’ 등처럼 일본어와 서구 외래어가 서로 뒤섞인 국적 불명의 외래어도 있다. 그리고 ‘세무가죽(chamois--, →섀미 가죽)’, ‘만땅(←滿tank, →가득)’, ‘세라복(←sailor suit服, →해군복)’ 등처럼 일본식 발음의 서구 외래어, 일본식 외래어 등과 일본어 투 용어가 우리말과 서로 뒤섞여서 우리말로 잘못 인식되는 말도 있다. 이들은 모두 일반 상식으론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이다. 사회 전체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도 이러한 일본식 발음의 서구 외래어, 일본식 외래어(대개 영어임), 이들 외래어의 혼합형 등의 일본어 투 용어는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다듬어 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