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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래

김창진 (초당대 교양학과 교수)

  교양인이라면 글을 바르게 쓰는 것처럼 마땅히 말도 바르게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글은 한글맞춤법에 맞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말은 적당히 말해서 문맥에 따라 알아들으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대부분 하고 있다. 심지어는 국어교육자들이나 방송인들도 거의 그렇다.
  프랑스어가 아름답다고 한다. 그것은 글이 아니라 말이다. 오늘날 국제무대에서 사람들이 접하는 외국어는 글보다 말이다. 말은 한 나라의 문화를 대표하고 인상을 좌우한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자기 나라말을 바르고 아름답게 하기 위해 매우 힘쓰고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등의 나라에서는 표준발음을 하지 않는 사람은 방송인은 물론 교사나 공무원, 정치인 등으로 뽑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상하게도 오로지 글만 신경 쓸 뿐 말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말 발음은 매우 혼란스럽다. 그 가운데서도 장단음 구별을 하지 못하는 게 가장 심각하다. 장단음 구별은 왜 필요한가? 우리말의 오랜 전통인데다 표준 발음법에 첫소리는 길고 짧게 구별하여 말하라는 규정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장단음 구별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도 필요하다.
  첫째, 장단음 구별은 말의 의미를 정확히 구별해준다. "오늘 밤이 좋다"에서 '밤'을 길게 소리내면 먹는 밤(栗)이 되고 짧게 소리내면 밤(夜)이 된다. 이것을 아무렇게나 말하고 문맥에 따라 알아들으면 된다는 주장은 언어의 정확성보다는 便易性(편이성)만을 좇는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思考(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부정확한 발음을 하고 상황에 따라 말뜻을 파악하는 습관은 정확하고 정밀한 思考(사고)를 가로막는다. 국민이 부정확하고 정밀치 못한 사고를 하는 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둘째, 장단음 구별은 말소리를 변화 있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우리말은 세종대왕 때는 高低長短(고저장단)을 구별하여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표준발음은 그 중 長短音(장단음)의 구별만 인정한다. 외국어는 어떤가. 영어는 장단음은 물론 높고 낮음과 강세까지 구별하여 말한다. 우리보다 세 배나 복잡하다. 그러므로 영어가 우리말보다 변화 있고 아름답게 들리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장단음마저 구별하여 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말은 점점 더 답답하고 멋없는 말로 타락해 가고 있다.
  장단음의 구별은 우리말의 정확성과 미적 가치를 높여주며 한국인의 사고를 정확하고 정밀하게 만들어 준다. 오늘날 우리말은 韓流(한류)를 타고 국제어로 발돋움하고 있다. 한국어가 국제어가 될 수 있으려면 다른 앞선 외국어들처럼 정확하고 정밀한 발음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지금처럼 혼란한 발음으로는 결코 국제어가 될 수 없다.
  오늘날 장단음 구별을 비롯하여 우리말 발음이 혼란스러워진 것은 자연스러운 언어현상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발음 교육은 서당에서 한문을 가르치면서 저절로 되었다. 그러나 그 뒤 지난 100년 간 한국인은 일제 치하에서 또 광복 이후에도 발음 교육을 받지 못했다. 우리 국민은 철자법은 학교에서 몇 년씩 ‘받아쓰기’를 통해 익혔다. 하지만 올바른 발음은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러한 국어교육의 잘못과 함께 방송인들의 정확치 못한 발음 때문에 오늘날 우리 국민의 발음이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선진국들도 19세기에 들어서서 자국어의 발음을 가다듬어 오늘날 국제어로 발전시켰다. 우리도 이제 우리말 발음을 가다듬고 국어교육에서 발음 교육을 강화하여 한국어를 국제어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