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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희(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농촌의 결혼 중 4쌍 중 1쌍은 외국인 아내를 맞는 국제결혼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이주의 여성화’ 현상이 우리나라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국제결혼 이주여성 또는 여성 결혼 이민자라고 불리는 이들을 위해 다양한 조사와 대책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도 여성 결혼 이민자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고 이들이 낳은 2세 역시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여성 결혼 이민자들의 성공적인 한국 정착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 및 문화 적응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이들 여성 결혼 이민자들에 대한 언어및 문화 적응에 대한 실태 조사를 실시하였다. 작년에 급하게 여성 결혼 이민자들을 위한 한국어 교재가 나오긴 했지만 사실 이들에게 맞는 한국어 교재 개발과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서는 언어와 문화 적응의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인류학과 왕한석 교수를 책임으로 한 조사팀에서는 전북 임실 지역을 조사 지점으로 선정하고 8개국에서 시집온 여성들을 한국 체재 기간에 따라 표본을 추출하여 심층 면접을 실시하였다. 인터뷰의 주요 질문 사항은 시부모와 남편이 보는 며느리의 언어 및 문화 적응 정도, 연구 대상자의 한국어 능력 및 한국어 학습 과정, 자녀의 언어 교육 문제 등이다.
  조사 결과 19명의 외국인 중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을 경험한 사람은 1명뿐이며 이들이 한국어 교육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책은 여행용 회화사전이나 단순한 포켓용 사전이 전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을 경험한 여성은 몽골 여성으로 서강대학교의 인터넷 한글 교육 프로그램에 등록하여 한국어를 배웠는데 배운 내용 중 중요한 것은 프린트하여 화장실 벽면에 붙여 놓고 외울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여성은 자신의 한국어 학습 경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집에서 혼자 애기 키우고[는] 몽골 사람들도 있어요. 거기는 저보다 몽골에 있을 때 한 1년 배웠어요, 한국에, 한국말. 근데 한국말 1년 배우고, 여기 나, 저보다 먼저 왔어요. 2년 됐어요. 그리고 3년 동안 배웠잖아. 근데 저보다, 첨엔 제가 ‘안녕하세요’도 몰랐어요. 저보다 좀 잘 하시는 거 같아서, 제가 모르는 거 있으면 이렇게 ‘어머님한테 이런 말씀 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하면 돼요? 좀 가르쳐 주세요’ 그러면, 그때는 좀 가르쳐 줬어요. 그리고 기[그] 여자한테 내가 좀 배웠어. 지금은 초급도 말 못해요. 거기 이유는 컴퓨터 지금 샀어요. 그리고 혼자 아파트에서 남편은 말 안 해요. (중략) 우리 남편 그런 말 마해 [많이 해]. ‘여보 이리와, 테레비에서 오늘 여덟 명 죽었대’, ‘왜 죽었어? 무슨 일 있었어?’ 그러면, ‘그런 때문에 이렇게 이렇게 죽었대, 가스렌지 잘 이렇게 잘해. 애기 이렇게 봐, 애기 이렇게 하면 안댜, 아토피... 테레비 잘 봐요.’ 내가 잘 얘기해 줘, 남편한테서 뉴스 봤다고.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거든. 필요하잖아. (중략) 모르는 것 많이 있어요. 또 배우고 싶고, 앞으로 계속 공부하고 애기 잘 키우고... 그럭 하고 싶어요.”

  우호적인 가정 환경, 체계적인 학습, 자신의 높은 성취 동기가 한국어 학습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으며 한국어 학습에 대한 끝없는 열의를 읽을 수 있다.
  조사 기간 중에 전북 임실에서는 여성 농민회 주최로 이주여성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사용한 교재는 놀랍게도 우리나라 어린이들을 위한 한글 교재였고 가르치는 교사는 한국어 교육 경험이 거의 없는 분들이었다. 이주여성을 위한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전국적으로 보급하는 것이 얼마나 시급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실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