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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휘 이야기
   단어의 자기 복제, 준말
조남호(趙南浩) / 국립국어원
  최근에 인간 복제 기술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자기의 분신을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얘깃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휘의 세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기 복제가 이루어졌다. 단어 중에는 자기를 닮은 분신을 가진 것들이 있는 것이다. 다만 그 분신이 자기보다 왜소하다는(음절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완벽한 자기 복제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복제를 통해 새로 만들어진 말을 보통 ‘준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복제의 대상이 된 것을 ‘본말’이라고 한다.
(1) 마음/맘, 사나이/사내, 싸움/쌈, 이야기/얘기
(2) 그만두다/간두다, 게으름뱅이/게름뱅이, 괴로움/괴롬, 주인/쥔
(3) 가지가지/갖가지, 까마아득하다/까마득하다, 사이참/새참, 치어다보다/쳐다보다
(4) 생원님/샌님, 조금/좀
  어휘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자기 복제는 국어에서 많이 목격이 되는데 복제가 가능한 조건만 충족이 되면 쉽게 복제가 된다. 그렇지만 복제의 범위나 조건에 관해서는 아직 학계에서 충분히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자기 복제는 어휘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단어가 아니어도 하나의 단위로 구분될 수 있는 것들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분신이 존재함으로 해서 우리는 때로 언어생활에서 불편을 감수해야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돼’는 ‘되다’에 ‘어’가 붙은 ‘되어’의 분신인데, ‘돼’의 존재로 인해 ‘되다’의 활용형이 흔히 잘못 표기된다.
  필자가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임을 알면서도 준말을 만드는 현상을 자기 복제라고 한 것은 많은 경우 분신인 준말이 거의 모든 자리에서 본말을 대신해서 나타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의 예로 ‘싸움’과 그 분신인 ‘쌈’을 보자. ‘쌈’은 거의 모든 자리에서 ‘싸움’을 대신할 수 있다. ‘쌈’이 대신할 수 없어 ‘싸움’이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 자리는 거의 예를 찾기가 어렵다. 심지어 ‘눈쌈, 닭쌈, 쌈닭, 쌈질, 칼쌈, 패쌈’ 등 ‘싸움’이 다른 말과 어울려 만든 새로운 말들에서도 쓰인다. ‘싸움’이 나서기 피곤하면 ‘쌈’이 거의 완벽하게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점잖은 자리, 즉 아주 격식을 갖추어 작성하는 글 정도라면 대신 나타나기 곤란한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모든 준말에서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너무나 닮은 둘이 있으면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번거로움을 덜자면 어느 하나만 남겨야 하고 그러자면 불가피하게 생존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위에 예로 들었던 단어의 쌍을 평소에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찬찬히 짚어 보면 둘의 비중이 항상 같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필자의 판단을 기준으로 하면 (1)은 둘 다 널리 쓰이는 것들이다. (2)는 본말이 주로 쓰이는 것이고, (3)은 준말이 주로 쓰이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둘 중의 어느 하나만이 선택을 받고 살아남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이를 반영한 것이 표준어 규정이다. 표준어 규정 제14항에서는 준말이 널리 쓰이는 것은 준말만 인정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귀치 않다, 기음, 또아리, 무우, 배암, 새암, 새앙쥐, 소리개, 장사아치’는 밀려나고 ‘귀찮다, 김, 똬리, 무, 뱀, 샘, 생쥐, 솔개, 장사치’만 살아남게 되었다. 바로 뒤이어 제15항에서는 본말이 널리 쓰이면 본말만 인정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귀개, 냉꾼, 모, 엄’이 밀려나고 ‘귀이개, 내왕꾼, 모이, 어음’이 살아남게 되었다. 표준어 규정에서는 준말과 본말의 공존도 인정하였다. 제16항의 규정이 그것이다. ‘머무르다/머물다, 서두르다/서둘다, 서투르다/서툴다, 시누이/시뉘, 오누이/오뉘, 외우다/외다’는 준말과 본말이 모두 표준어로 인정이 되었다.
  그런데 공존하고 있는 것들도 공존의 양상을 잘 따져 보면 여러 모습을 보임을 알 수 있다. ‘싸움’과 ‘쌈’은 거의 모든 자리에서 평화롭게 공존한다. 그런데 ‘머무르다/머물다, 서두르다/서둘다, 서투르다/서툴다’와 같은 것은 쓰이는 자리에 차이가 있다. 다소 인위적이기는 하지만 어문 규정에서는 ‘머물다, 서둘다, 서툴다’는 자음 어미 앞에서만 올 수 있다는 제한을 두었다.
  공존하기는 하면서도 준말이 자신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는 경우도 있다. 그 예가 (4)에 제시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생원님’을 줄여 ‘샌님’이라고 하지만 얌전한 사람을 일컬을 때는 ‘샌님’이라고 하지 절대로 ‘생원님’이라고 하지 않는다. ‘좀’도 마찬가지로 ‘조금’이 대신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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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