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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문 규정에서 자유로운(?) 예술 작품들
한규희(韓奎熙) / 기자(중앙일보 어문연구소)
  신문 교열을 하다 보면 우리말 바루기를 업(業)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한계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우리말 어문 규정에 어긋난 글이 나오면 교열자로서 바로잡아 주는 것이 당연한데, 어떤 때에는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을 대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유명사나 예술 작품의 경우, 어문 규정은 우리들이 당연히 지켜야 할 규범이 되지 못한다. 한글 맞춤법이나 외래어 표기법도 법이기 때문에 당연히 지켜야 하지만 강제성까지는 확보하지 못한 때문이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하지 못하는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보이지 않는 ‘힘의 논리’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논란이 벌어졌을 때 가능한 한 표기 원칙을 설명하고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늘 주장하지만, 외적인 힘이 너무도 거셀 때에는 상황논리에 따라 그 표기 방식을 선택하고 만다. 그 힘이 워낙 강해 거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과 이름, 상호나 상표 등 고유명사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니 일단 논외로 치자(이 부분은 정부 차원에서 강제하든지, 수용하든지 결단을 내릴 부분이다). 그런데 또 다른 ‘적(?)’이 있다. 다름 아닌 예술 작품이다. 언제부터인지 예술가들은 어문 규정에서 자유를 보장받았다. 교열자의 입장에서 ‘창작의 자유’ ‘시적 허용’ 등 그들이 자신을 보호하는 문구를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이러한 작품들이 우리말의 올바른 사용을 저해하는 원인 중 하나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기에 한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대표적인 예가 시와 노랫말이다. 널리 알려진 시와 노랫말에서 우리말 표기법이 잘못 쓰이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들의 전파성이 워낙 강해 많은 사람이 이것을 보고 들으면서 잘못된 표기법을 학습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시인이나 작사가들은 우리말을 갈고닦는 데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 중 일부는 그런 노력을 소홀히 하는 것 같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말 표기에 있어서 ‘예술적 허용’은 어디까지 가능한지 묻고 싶다.
  필자가 지역적 특색이 살아 숨쉬는 사투리, 각 집단만의 은어, 비어, 속어 등을 모두 버리고 표준말로만 예술 작품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 작품은 그 소재가 되는 지역이나 집단의 언어가 작품 속에 잘 녹아 있어야 독자들의 가슴속으로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갈 수 있으며 감동을 줄 수 있다. 더구나 사투리는 우리 고유어의 뿌리이며 우리말을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자양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것을 찾아내고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우리말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또한 어문 규정의 파괴가 그 작품을 쓰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건이라면 거기에 이론을 달고 싶지 않다.
  그러나 국어사전을 찾아보지도 않고 어문 규정에 어긋난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쓴 단순한 오자까지도 시라고 해서, 노랫말이라고 해서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라며 존중해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거칠은 벌판’, ‘낯설은 타향’, ‘바램이었어’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이들은 각각 ‘거친, 낯선, 바람’이어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말을 정확히 배우고 가꾸어 나갈 자라나는 우리 애들이 그것을 통해 잘못된 우리말 학습을 한다는 것은 큰 손실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가들은 우리말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할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덧붙여 요즘 수입되는 외국 영화의 우리말 표기법도 어문 규정에 맞춰 표기될 수 있도록 관계 당국에 고언을 해 본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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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