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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래어 표기
  독일 지명의 한글 표기
정희원(鄭稀元) / 국립국어원
  우리에게 친숙한 독일의 도시 이름 중에는 한글 표기에 혼란을 빚는 예들이 몇몇 있다. 우리말 외래어 표기법의 기본 원칙은 그 언어가 통용되는 곳의 발음에 가깝게 적는 것이므로, 독일어의 경우도 발음기호를 확인하여 ‘국제음성부호와 한글 대조표’에 따라 적는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발음에 가깝게 적는다는 기본 원칙에 벗어난 형태를 표준형으로 정하기도 한다. 외래어 어휘가 우리말 속에 들어와 사용되는 과정에서 현지 발음과는 다른 형태로 정착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에는 우리말 속에서 흔히 사용되는 형태를 표준형으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래어 표기를 결정할 때에는 현지 발음뿐만 아니라 해당 단어가 우리말에 들어와 정착되는 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독일어는 철자와 발음 사이의 관계가 비교적 규칙적이어서 몇 가지 주요 특징만 알고 있으면 일일이 발음 정보를 확인하지 않아도 한글 표기를 쉽게 할 수 있다. 흔히 혼동되는 몇 가지 지명 표기를 통해서 독일어 외래어 표기의 주요 원칙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유서 깊은 대학교와 아름다운 고성(古城)이 있는 도시 ‘하이델베르크’는 종종 ‘*하이델베르그’로 잘못 적히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원어 철자가 Heidelberg로 어말 자음이 g여서 ‘그’로 소리 나는 것으로 알고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b, d, g, v 등 독일어의 유성자음은 낱말 끝에서는 무성음인 [p, t, k, f]로 발음된다. 즉 Heidelberg는 [haidelbɛrk]로 발음이 되는데, 그에 따라 한글로는 ‘하이델베르크’로 적는다. 마찬가지로 Hamburg는 ‘함부르크’, Brandenburg는 ‘브란덴부르크’, Nürnberg는 ‘뉘른베르크’로 적는다.
  Leipzig는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의 학문과 문화의 중심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라이프찌히’로 적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라이프치히’가 바른 표기이다. [z] 소리는 우리말의 ‘ㅉ’ 소리와 비슷하게 들린다. 그러나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ㄲ, ㄸ, ㅃ, ㅆ, ㅉ’ 등 된소리 표기를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있다. 특히 ‘ㅉ’은 중국어와 베트남어, 타이어 등 ‘ㅊ’과 ‘ㅉ’을 구분해 표기해야 하는 언어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독일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의 경우는 [z] 소리를 ‘ㅊ’으로 적어야 한다. 따라서 ‘*라이프찌히’가 아니라 ‘라이프치히’로 적는 것이 맞다. Mainz ‘마인츠’, Koblenz ‘코블렌츠’, Zwinger ‘츠빙거’ 따위 비슷한 예들이 있다. 한편 Leipzig의 어말 g는 ‘크’가 아니라 ‘히’로 적어야 하는데, 낱말 끝 g 앞에 모음 i가 있을 때에는 ‘히’와 비슷하게 발음되는 독일어의 특징 때문이다.
  ‘하이델베르크’와 ‘라이프치히’ 등 위의 예들은 모두 현지 발음에 가깝게 적는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한 것들이다. 독일어 지명 중에서도 그런 원칙에서 벗어나 관용적인 표기를 인정한 경우가 있다. Hannover가 대표적인 예인데, 독일어 발음은 ‘*하노파’에 가깝지만 ‘하노버’로 적도록 하고 있다.
  독일어 발음을 잘 아는 독일 교민들 사이에서는 ‘*하노파’라는 표기형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이 도시 이름은 이미 오래 전에 우리말 속에 들어와 ‘하노버’로 굳어졌다. 1930년대에 발간된 <큰사전>에 ‘하노버르’로 등재되기 시작했으며, 그 후 ‘하노우버’ ‘하노버’ 등의 변천 과정을 거쳐 각종 국어사전, 백과사전, 교과서나 언론 등에 ‘하노버’로 정착되어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각종 웹 문서를 검색해 보아도 ‘*하노파’보다는 ‘하노버’가 훨씬 우세하게 사용된다. 독일어인 Hannover의 한글 표기가 애초에 ‘하노버’로 굳어지게 된 데에는 이 말의 영어 발음이 ‘하노버’인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래어 중에는 이처럼 제3국 언어의 영향을 받아 현지 발음과 다르게 굳어진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나라 이름인 ‘폴란드’와 ‘헝가리’는 그 나라 말로는 Polska, Magyar이지만 ‘폴스카’나 ‘마자르’로 적지 않고 영어를 통해 우리말에 들어와 굳어진 과정을 존중해서 ‘폴란드’, ‘헝가리’로 적는다.
  위의 예들에서도 볼 수 있지만, 외래어 표기를 정하는 과정은 ‘발음에 따라 적는다’는 것과 ‘관용을 존중한다’는 두 가지 상반된 원칙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둘 중에 우선순위를 둔다면 관용을 존중하는 것이 먼저이다. 즉 우리말 속에서 널리 받아들여 쓰이는 관용 표기가 있을 때에는 그것을 표준형으로 정하고, 특정 관용 표기가 널리 퍼져 있지 않은 때에는 현지 발음을 확인해서 외래어 표기 세칙을 적용해서 한글 표기를 정하게 된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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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