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 있는 글 우리말 다듬기
이런 일을 했어요 우리 시 다시 보기
신문 제목 다시 보기 내가 본 한국 사람, 한국말
말의 뿌리를 찾아서 교실 풍경
문화 들여다보기 국어 관련 소식
만화로 배우는 우리말
류대성(성남 금광중학교 교사)
  신도시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중학교에 처음 발령을 받고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다세대 주택들이 언덕을 뒤덮고 산자락 끝에는 임대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그 끄트머리에 위치한 학교는 정겹기만 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4층짜리 아담한 건물과 작은 공간에 살뜰하게 나무를 심어 놓은 공간들이 잘 어우러져 깔끔하다. 학교 앞 2차선 도로 건너편에는 황송공원이 있어 교무실과 교실 창밖으로 푸른 산과 그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주변 환경이 완벽하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귀찮고 멀기만 한 곳에 처박혀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가게도 없고 피시방도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학기가 시작되었고 수업은 3시 반에서 4시면 끝이 난다. 아이들이 돌아간 학교는 적막했다. 밤 10시까지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 감독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과 대낮에 퇴근하는 느낌이 새로웠다. 몸도 마음도 한결 쉬울 것 같다는 안일한 생각이 들 만한 환경이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도 집중을 시킬 수 없는 아웃사이더들과 공부와 수업에는 절대로 참여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반항아들이 고루 섞여 있는 수업 시간은 삭막했다. 교과서를 들여다보거나 수업 자체에 관심을 가진 아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경기도 학력평가에서 거의 최하위 수준이라며 학력 향상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하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학기가 시작되고 아이들과 지내면서 기대는 보기 좋게 깨졌고 마음은 하루하루 무거워져 갔다.
  문제는 수업 시간만이 아니었다. 거의 매일 접하게 되는 폭력과 학교 밖에서 걸려오는 절도와 폭행 관련 사건들은 교사가 아닌 경찰로의 변신을 요구했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경찰서로 달려가기도 하고 돈을 뺐기고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달려가기도 하고 인근 초등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된 학생들에게 뛰어가기도 했다. 언론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건들이 이어졌다.
  길지 않은 교직 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고 생각했던 교사의 역할에 회의를 품었다. 주변 환경과 부모의 역할을 요구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수업이 끝나도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생활이 어려워 부모님이 모두 생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이 늦게 끝나거나 새벽에 귀가하는 부모님의 경우 아이들은 거의 방치 상태에 가깝다. 게다가 우리 학급의 예를 들면 한부모 가정이 절반을 넘는다. 어려운 가정 환경과 부모님의 재혼 등으로 인한 갈등은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사춘기 아이들은 쉬운 방법으로 가출을 선택한다. 수업 일수 부족으로 유예된 아이만 넷이다. 전출 세 명을 포함해 출석부에는 일곱 개의 빨간 줄이 그어져 있다.
  1년이 마무리 되고 겨울 방학이 되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아버지는 지방의 건설 현장에 가 계시고 초등학교 여동생과 둘이 지내는 아이, 재혼한 아버지와 살지 못하고 방을 얻어 혼자 자취하는 아이는 제대로 밥을 챙겨 먹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머니의 가출과 아버지 행방불명으로 할아버지가 3남매를 키우는 아이에게는 고등학교 교복 구입도 부담이다. 절반 이상이 실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했지만 아이들의 미래는 불분명하다. 생의 목표와 의욕이 문제다. 하루하루 멀어져만 간다.
  학교는 계급을 재생산할 뿐이라는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고 최선을 다하면 아이들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쉽게 답이 나오질 않는다. 학교에서 먹는 급식 한 끼가 하루 식사의 전부인 아이, 차비가 없어 걸어오느라 매일 지각하는 아이, 새벽에 퇴근하는 엄마가 입원해서 동생 학교 보내고 어머니 병간호하느라 학교에 오지 못하는 아이……. 우리 교실에는 매일 빈자리가 있다. 아침, 저녁으로 부모님들께 전화하고 문자 보내고 아이들과 통화하는 날들은 올해도 계속되겠지만 근본적인 대책도 방법도 쉽게 마련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것은 아이들의 가슴에 웅크리고 있는 패배감이다. 좌절과 절망은 의욕을 사라지게 하고 관심과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은 언제나 거리를 방황한다. 학교 주변의 공단 시설과 재개발이 요구될만한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도 밝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이제 2년째 접어드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스스로 다짐한다. 꽃 같은 아이들에게 환한 웃음과 밝은 미래가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