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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성(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회 선임연구원)
  ‘가지었다’와 ‘가졌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가지었다’를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가졌다’로 줄여서 쓰고 발음하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뜻이 달라지지 않는 한 되도록 힘을 덜 들이면서 말을 하려는 것이 일반적인 언어 현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항상 준말이 본말보다 널리 쓰이는 것은 아니다. 준말이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았다거나, 공식 용어로 지정되지 않았다거나, 의미상 다른 뜻으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높다거나 하는 이유로 본말보다 덜 쓰이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나 준말 자체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앞에서 말한 대로 노력 경제의 원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말을 살펴보면 준말이 매우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통신 환경의 변화가 그 원인이다. 현재 가장 대중적인 전자 통신 수단인 쪽지창(메신저)이나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는 최대한 줄여서 빠르게 말하는 것을 강요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간과 돈이 더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기가 속한, 또는 속하고자 하는 무리에서 따돌림까지 받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인터넷 통신이 발달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안냐세여(안녕하세요)’, ‘어솨요(어서 와요)’처럼 조금 지나치게 축약한 면은 있지만 어느 정도 알아들을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에는 각 어절의 한 음절만 따 와서 약어를 만드는 방식이 유행하면서 한눈에 이해하기 어려운 통신 용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방송이나 언론에 소개되어 널리 알려진 말들로는 ‘열공하다(열심히 공부하다)’, ‘얼꽝(얼굴이 꽝이다, 즉 ‘못생긴 얼굴’)’, ‘안습하다(안구에 습기가 차다, 즉 ‘눈물이 나다’)’와 같은 말들이 그 예이다.
  이처럼 어절마다 한 음절씩 따서 약어를 만드는 일은 주로 한자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전교조(전국 교직원 노동조합)’, ‘연대(연세 대학교)’, ‘농협(농업 협동조합)’ 따위가 그 예이다. 한자어는 음절 하나하나에 뜻이 있어 이렇게 약어를 만드는 일이 자연스럽지만 고유어는 음절이 독립적인 의미 단위가 되지 못하므로 약어를 만들기 어려운 것이다.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 ‘불백(불고기 백반)’ 정도가 고유어로 된 약어의 예로 들 만한 말들이다.
  이런 이유로 ‘열공’이나 ‘얼짱’ 같은 약어는 우리말의 전통에 맞지 않으므로 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도 있으나, 고유어에서도 이런 현상이 아예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이와 같은 언어 변화가 우리말의 미래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구체적인 논거도 없이 섣불리 이런 말을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더구나 일상용어가 아닌 통신 용어에 함부로 칼을 들이대는 것은 흉부외과 환자를 정형외과 의사에게 맡기는 것과 같다.
  약어가 널리 퍼지는 현상과 관련하여 당장 우리가 걱정해야 할 일은 영어 약어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급속히 펴져 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어기본법까지 제정하면서 우리말 지키기에 앞장설 듯 보이던 정부와 국가 기관은 물론이고 방송이나 언론, 기업, 일반 국민들에 이르기까지 영어 약어를 거리낌없이 써 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UN’, ‘UNESCO’, ‘WTO’ 따위가 영어 약어의 예인데, 영문자는 자모별로 풀어쓰기를 하고 있어 한글과는 달리 약어를 만들어 쓰는 데 편리한 점이 있다. 그러나 영문자도 소리글자이기 때문에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도 원어를 알지 못하면 영어 약어의 뜻을 알기가 어렵다. 그나마 영어 화자들은 원어만큼은 자신들이 늘 쓰던 말이므로 원어를 알고 나면 약어를 이해하고 실생활에 사용하는 데에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원어를 알려 주어도 제대로 해석할 줄 아는 이가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영어 약어가 판을 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영어로 쓰는 것이 더 고급스럽거나 세련되어 보인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영어 지식을 뽐내고, 그것을 하나의 권력으로 삼고자 하는 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노찾사’나 ‘얼꽝’ 같은 말이 널리 퍼지는 것은 인정할 수 있어도 영어 약어가 판을 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이유이다.
  지난 2003년에 교육부에서 만든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가 교육행정 업무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이유로 찬성하는 사람들과 학생의 개인정보를 국가가 관리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 간의 논쟁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NEIS’를 ‘나이스’로 읽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네이스’로 읽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좋은 뜻으로 하는 것이니까 영어의 ‘nice’가 연상되는 ‘나이스’로 읽자고 한 것이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영어의 발음 원리에 따라 ‘네이스’로 읽자고 한 것이다. 글쓴이는 영어 발음법에 따라 ‘네이스’로 읽는 것이 타당하지만, ‘나이스’로 읽는다고 해서 그리 문제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영문자라는 것이 한글처럼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소리에 대응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외국에서 들여온 말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만든 말이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서 읽으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NEIS’를 어떻게 읽느냐가 아니라, 왜 굳이 이 말을 쓰려고 하느냐에 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라는-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우리말을 놔두고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모르는 영어로 약어를 만들어 놓고 논란을 벌이는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게다가 이 일의 시발점이 교육부라는 데에까지 이르면 한심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게 된다.
  ‘NEIS’의 장점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보다 짧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원어를 모르면 아무도 그 뜻을 짐작할 수도 없다. 그만큼 효용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언어의 일차적인 기능인 의사소통을 편하게 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들에게 일일이 ‘NEIS’의 원어가 ‘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임을 교육할 것도 아니라면 이런 말은 되도록 쓰지 않아야 한다. ‘NEIS’가 얼마나 유용한 시스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이름만큼은 결코 ‘나이스’하지 않다.
  국가 기관의 영어 약자 사랑은 이뿐만이 아니다. ‘BK21’이나 ‘FTA’와 같은 영어 약어들이 ‘두뇌 한국 21’이나 ‘자유 무역 협정’이라는 말을 밀어내고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모두 국가 기관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국회에는 ‘한미 FTA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져 있다. ‘우리말 살리기 특별위원회’를 먼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국가 기관뿐만 아니라 언론사와 방송국에서도 영어 약자를 마구 쓰고 있다. 신문에서 이른바 ‘3김’의 이름을 ‘DJ(김대중)’, ‘YS(김영삼)’, ‘JP(김종필)’로 부르는 일이 흔했는데 요즘에도 간혹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MH(노무현)’니, ‘MB(이명박)’니, ‘GT(김근태)’니 하면서 정치인들의 이름을 영어 약자로 표기하는 일이 있다. 최근엔 경제인들의 이름도 이렇게 표기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예전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의 아들들의 이름을 ‘MK(정몽구)’, ‘MH(정몽헌)’, ‘MJ(정몽준)’ 등으로 표기한 것이 그 예이다. 물론 신문에서 정치인이나 경제인의 이름을 영어 약자로 표기하는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마저 외국인처럼 표기하는 것은 고쳐야 할 관행이라고 생각한다.
  방송에서도 ‘KBS’, ‘MBC’, ‘SBS’, ‘EBS’ 따위가 ‘한국방송’, ‘문화방송’, ‘서울방송’, ‘교육방송’보다 훨씬 널리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 민방이 많아졌는데 이들도 모두 영어 약어를 앞세운다. ‘GTB(강원방송)’, ‘KBC(광주방송)’, ‘TBC(대구방송)’, ‘TJB(대전방송)’, ‘JTV(전주방송)’, ‘JIBS(제주방송)’ 들을 영어 약어만 보고서 어느 지역 방송국인지 알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TBC 뉴스 홍길동기자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홍길동’이라는 기자가 대구 방송 소속인지, 대전 방송 소속인지를 구분해 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도 오늘도 뉴스에서는 계속 이런 말이 반복되고 있다. ‘광주, 대구, 대전’의 로마자 표기는 각각 ‘Gwangju, Taegu, Taejeon’인데 이런 표기법마저 무시하고 이름을 짓는 것도 문제다.
  경제계에서도 영어 약자를 앞세우는 경우가 눈에 띈다. ‘국민은행’은 광고할 때마다 ‘KB’라는 말을 앞세우고 있으며, ‘농협’은 새로 자회사를 만들면서 ‘농협’이라는 이름 대신 ‘NH’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본래 있던 우리말 이름을 아예 없애고 영어 약자식 이름으로 아예 바꿔 버리는 일도 많아졌다. 옛 ‘선경’이 ‘SK’로, 옛 ‘럭키금성’이 ‘LG’로, 옛 ‘한국통신’이 ‘KT’로, 옛 한국담배인삼공사가 ‘KT&G’로 이름을 바꾼 것이 그 예이다. 보면 알겠지만 바뀐 이름들은 옛 한글 사명의 로마자 표기의 머리글자를 따온 것이다. 이렇게 우리말을 홀대하고 망가뜨리면서까지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진정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인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연예인들의 이름에서도 ‘HOT’, ‘SES’, ‘SS501’ 같은 영어 약자가 판을 치고 있다. ‘HOT’를 ‘핫’으로 읽으면 구세대이고 ‘에이치오티’로 읽으면 신세대라는 식으로 세대를 구분하는 일마저 벌어지고 있으니, 이만하면 영어 약자의 위세가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UCC’, ‘DMB’, ‘GPS’, ‘P to P’, ‘PB 센터’와 같은 말들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영어 약자들이다. 하나같이 처음 들어서는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도 없는 말들 뿐이다.
  줄여 쓰는 것의 편리함이 아무리 좋더라도 뜻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약어를 남발하게 되면 오히려 의사소통을 불편하게 만들어 줄여 쓰지 않는 것만 못하게 될 수 있다. 말하는 이 자신도 잘 모르는 말을 하게 되면 듣는 이가 다른 뜻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으며, 듣는 이가 잘 모르는 말을 하게 되면 다시 설명해야 하는 수고를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영어, 특히 영어 약어를 많이 쓸수록 그런 일은 더 자주 일어날 것이다. 결국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태도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소통을 더욱 원활하게 하는 밑바탕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부터라도 영어에 대한 허상을 버리고 우리말을 지키는 일에 모두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