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 있는 글 우리말 다듬기
이런 일을 했어요 우리 시 다시 보기
신문 제목 다시 보기 내가 본 한국 사람, 한국말
말의 뿌리를 찾아서 교실 풍경
문화 들여다보기 국어 관련 소식
만화로 배우는 우리말
볼강(고려대학교 한국어문화교육센터)
  내가 처음 한국어를 접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였다. 그때 우리 학교에서는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배우게 되어 있었는데 나는 단지 한국 사람이 한국어를 가르쳐 준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어를 선택하였다. 한국어가 어떤 언어인지도 몰랐고 한국 사람도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난생 처음 외국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들떠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전혀 모르는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이 몽골어를 모르는 한국인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해 한동안 애를 먹었다. 그래도 선생님이 우리에게 한국어를 잘 가르치기 위해 무척 노력하고 계시다는 것만은 전해져 왔다.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림도 그리고, 연기도 하고, 동물 울음소리까지 내면서 온갖 방법을 썼던 기억이 난다.
  한국 문화와 한국 음식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옆 친구만 빤히 쳐다봤던 기억. 한국 음식이 어떤지 맛을 보여 주기 위해 손수 불고기를 직접 만들어 주기도 하신 선생님. 생각해 보면 그 때 선생님을 통해서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 무렵 한국어를 알아가는 재미에 빠져 있던 나는 한국어 글씨가 쓰여 있는 것이라면 사탕 종이나 초콜릿 종이까지 다 모아다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읽어댔다. 그리고 느낌이 좋은 단어를 발견했을 때는 무슨 뜻인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기 위해 선생님께 하루에도 몇 번씩 귀찮은 질문을 했었는데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일이학년 때는 한국어 자료가 교과서 하나밖에 없어서 한국어로 된 다른 것을 보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대학교도 졸업하고 대학원도 졸업했다. 그런데 한국어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 나는 한국에 와서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소개로 한국국제교류재단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신청해 봤는데 곧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왔다. 이렇게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게 되었다.
  한국에 와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한국 사람들이 나를 한국 사람으로 알고 길을 묻거나 무엇인가를 부탁할 때의 일이다. 그 때 나는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아주 쩔쩔맸는데 기껏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하거나 모른다고 하면서 도망치는 게 고작이었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타려고 지하철표를 어디서 사면 되냐고 어떤 할아버지께 여쭤봤는데 할아버지께서는 아주 친절하게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가 보네.” 하시면서 표를 사는 것보다 교통카드를 사용하면 더 싸게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해 주시면서 교통 카드의 구입 방법과 사용 방법까지 다 알려 주시고 교통카드를 구입하는 곳까지 데려다 주셨다. 그리고 한국에서 재미있고 즐거운 생활을 하면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해서 많은 걸 알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 가라는 좋은 말씀까지 해 주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친절에 너무 깜짝 놀랐다. 사실 우리에게 깊은 친절을 베풀어 주셨던 선생님이 계시기는 하셨지만 그분은 선생님이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그 후에 한국에서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내 옆에는 언제나 몽골의 선생님이, 지하철역의 할아버지가 계셨다.
  이제 두 달 후면 일 년 동안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을 떠나게 된다. 내가 한국 생활을 평생토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에게 친절함과 따뜻함을 베풀어 주었던 한국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