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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미(민족생활어 조사원)
   심마니어는 산삼을 캐러 다니시는 분들이 사용하는 은어이다. 민족 생활어 조사에서 내가 조사하기로 한 첫 번째 조사 어휘가 심마니어였다. 오래도록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왔던 은어지만 산악이 많은 강원도 지역의 은어에서부터 좀 더 치밀하게 조사해 내는 것이 내 조사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제보자 물색에서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어렵게 제보자를 소개받아 가면 2~3년 전에 돌아가셨거나, 심마니 일을 한 지 10년 안팎인 청심마니뿐이었다. 인제군에 사시는 엄익철 선생님을 만난 건 오랜 목마름 끝에 온 해갈이었다. 그래서 더 소중했다. 엄익철 선생님은 4대째 심마니이신 분이시며, 심마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셨다. 가업을 잇게 하기 위해 치기공사인 아들을 심마니로 살게 하셨다. 그러면서도 그 아들의 꿈을 끊어야 했던 아버지의 미안함을 애써 감추지 않으셨다.
   그분을 따라 올랐던 산행은 편안한 등산길이 아니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신비로운 산삼을 만나러 가는 길은 거친 나뭇가지와 넝쿨들, 그리고 쇤 단풍고비들이 우리의 발을 휘감는 산길이었다.
   두 골짜기가 만나 물이 흐르는 지점은 모둠(심마니들이 산에서 머무는 거처) 짓기에 적당하다고 하였다. 나무를 가지고 지주목을 세우고 풀들을 올려서 흘림모둠을 지었다. 흘림모둠에 안침해서(쉬면서) 들려주던 마니들의(심마니를 줄여서 마니라고 한다) 옛날 옛적 이야기는 첨단의 기계 문명 속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민족의 삶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울진공비사건이 있던 그 무렵, 엄 선생님(이하 엄 마니)은 몽(꿈)을 받고 삼을 캐러 갔었다고 한다. 밤이 깊어 모둠에서 안침하고 있을 때 저 건너편에 크고 커다란 불빛이 깜빡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불빛을 보는 순간, 몸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감.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밤에 그 정도의 눈빛을 낼 수 있는 짐승은 호랑이밖에는 없다는 것이 마니들의 주장이다. 엄 마니는 불안하여 잠을 잘 수 없었고, 그래서 산신께 밤새도록 기도를 올리며 “불쌍한 인생이 살아보겠다고 산삼 캐러 왔으니 불쌍하고 불쌍한 마니를 굽어 살펴 주십시오”라고 정성을 다해 빌기를 거듭했다고 한다. 밤새도록 호랑이도 모둠 근처에서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산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마대(심마니들이 들고 다니는 지팡이) 울리는 소리. 그 낯익은 마대 울림은 엄 마니의 아버지의 마대 소리였다. 온 산을 쩌렁쩌렁 울리며 산골짜기 모둠까지 들려오는 아버지의 소리.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근처로 무장공비들이 지나갔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둠 근처에 앉아 있었던 호랑이는 자기에게 해를 입히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산신이 자기를 보호해 주기 위해 호랑이를 보낸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강원도 산골짜기에 오면 하늘을 두려워하며 죄짓지 말고 살아야 하늘이 복을 내려 산삼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사는 심마니를 만날 수 있다. 그 심마니들은 속세에 찌든 어휘를 사용하지 않고, 신선한 자기들만의 은어로 오늘날도 산삼을 일구고, 산신을 모시고, 모둠을 짓고, 마대로 산을 울리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