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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표(전 연세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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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과 ‘밭’에 연관된 어휘는 매우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다. 논이나 밭의 어디를 지칭하는가에 따라 ‘논귀/밭귀’(논/밭의 귀퉁이), ‘논머리/밭머리’(논/밭의 한쪽 가), ‘논모퉁이/밭모퉁이’(논/밭의 모서리가 되는 귀퉁이) 등의 어휘가 있고, ‘논바닥’(논의 바닥), ‘밭섶’(밭의 가장자리)등의 어휘도 흔히 쓰인다. 논이나 밭의 경계에 쓰이는 ‘논둑/밭둑’(논이나 밭가에 둘러져 있는 둑), ‘논둔덕/밭둔덕’(논/밭의 가장자리에 두둑한 부분)도 있다. 볍씨를 심거나 곡식 및 채소를 심기 위해 논이나 밭을 갈아 두둑하게 만든 곳은 ‘논두렁/밭두렁’이라고 하며, ‘두렁’과 ‘두렁’ 사이에 물이 빠지도록 홈이 지게 만든 곳은 ‘논고랑/밭고랑’이라고 한다. 논이나 밭의 가장자리에 둘러져 있는 작은 도랑은 ‘논도랑/밭도랑’이라고 하고, 고랑과 두둑을 합쳐 이르는 ‘논이랑/밭이랑’도 우리가 늘 들을 수 있는 어휘다. 그러나 논과 밭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 도시인들에게는 잊혀져 가는 어휘일지도 모르겠다.
이 중에서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밭고랑/논고랑, 논두렁/밭두렁, 논도랑/밭도랑, 논이랑/밭이랑’이다. ‘고랑, 두렁, 도랑, 이랑’ 등이 ‘논/밭’에 붙어 쓰이면서 모두 뒤에 ‘-앙/-엉’이라는 형태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골 + -앙, 둘 + -엉, 일 + -앙, 돌 + -앙’으로 분석될 수 있을 것 같다. ‘-앙/-엉’이 작은 것을 나타내는 접미사로서 흔히 쓰이기 때문에, 이러한 분석은 정확한 것처럼 보이지만, 면밀히 분석해 보면 그 설명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이랑’은 옛 문헌에 처음 등장할 때에는 ‘이럼’으로 나타나며 ‘일 + -앙’으로 분석한다 하여도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두렁, 도랑, 고랑’이 ‘둘 + -엉, 돌 + 앙, 골 + 앙’으로 분석되어도 ‘둘, 돌, 골’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혀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아직 그 어원을 알 수 없는 ‘밭이랑/논이랑’의 ‘이랑’을 제외하고, ‘고랑, 도랑, 두렁’에 대해서만 설명하기로 한다.
‘밭고랑’은 ‘밭의 이랑과 이랑 사이의 홈이 진 곳’을 일컫는다. ‘논고랑’은 ‘벼 포기를 줄지어 심은 둑과 둑 사이에 골이 진 곳’을 말한다. 그래서 ‘고랑’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두둑한 땅과 땅 사이에 길고 좁게 들어간 곳’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고랑’은 ‘고’의 형태로 16세기 문헌에서 처음 발견된다.
畎 고 연 田中溝 <훈몽자회(1517년) 상,4a>
훈몽자회의 설명에 의하면 ‘고랑’은 ‘밭 가운데 물이 흐르도록 파놓은 물길’을 말한다. 물이 흐르도록 했기 때문에 그 물길은 움푹 파인 길이다. ‘전중구(田中溝)’, 한자를 풀이하면 ‘밭 가운데 있는 작은 개천, 즉 밭에 있는 도랑’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밭고랑’과 ‘밭도랑’은 같은 것이 아니다. ‘고랑’은 물이 흐르도록 파 놓은 곳이지만 늘 물이 흐르고 있는 곳이 아닌 반면에, ‘도랑’은 ‘물을 대거나 빼기 위해 만들어 놓은 물길’이어서 대체로 늘 물이 흐르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고랑’과 ‘도랑’은 엄연히 구별된다. ‘고랑’은 물이 늘 필요하지 않은 밭에만, 그리고 ‘도랑’은 물이 늘 필요한 논에만 주로 쓰이어서, ‘밭고랑, 논도랑’은 익숙한 단어이지만, ‘논고랑, 밭도랑’은 낯선 단어이다.
‘고랑’은 ‘골 + -앙’으로 분석된다. ‘-앙’은 작은 것을 나타내는 명사 파생 접미사임이 틀림없고, ‘골’은 ‘골짜기’의 ‘골’과 같은 뜻을 가진 ‘골’이다. ‘움푹 파인 곳으로서 길고 좁게 패인 곳’을 말한다. ‘골이 패어 있었다, (물이 흐르도록 밭에) 골을 치다, 골을 타다’ 등에 보이는 ‘골’이다. 그러니까 ‘고랑’은 ‘작은 골’ 또는 ‘작은 골짜기’를 뜻한다. 그래서 ‘고랑’은 ‘밭고랑’으로만 쓰이지 않고 ‘산고랑’(산의 작은 골짜기), ‘갯고랑’(갯가의 고랑) 등에도 쓰인다.
일진광풍이 적막한 산고랑을 휩쓸고 올라오더니 큰 비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진다. <고향(1933),374>
저 왼편 놉은 산고랑에서 불이 반짝하다 꺼진다. <만무방(1934),96>
하 감역 집은 옥녀봉(玉女峰) 밑 산고랑 속에 굉장하게 새로 지은 기와집이었다. <신개지(1938),127>
동우회원들은 비를 맞으며, 갯고랑으로 나가서 낙지를 캐어오는 사람에, 손그물을 쳐서 새우를 잡어오는 사람에, 대접이 융숭하다. <상록수(1936),74>
도랑을 만나면 같이 뛰어 건너고 갯고랑을 지날 때에는 업어서 건넜다.<영원의미소(1933),155>
‘고랑’은 18세기에 ‘골항’의 형태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것은 ‘고랑’ 자체의 음운론적 변화라기보다는 표기법상의 혼란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18세기에는 유성음 사이에 있는 ‘ㅎ’이 약화되어 탈락되어 가는 시기라서 ‘ㅎ’과 상관이 없는 어휘도 마치 그 이전 시기에 ‘ㅎ’이 있었던 것처럼 과도교정을 하여 잘못 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골항츠다 <몽어유해보(1768년),3b>
지새 골항(瓦壟溝) <몽어유해보(1868년),15a>
받골항(田溝) <몽유어해보(1768년),21b>
밧골항(田溝) <방언유석(1778년),성부방언,23a>
그러다가 다시 ‘고랑’으로 표기되어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고랑(畝間) <한불자전(1880년),193>
고랑(田疇), 고랑 쥬(疇), 고랑 모(畝) <국한회어(1895년),25>
畎 밧고랑 <광재물보(19세기),인도,1a>
여긔 저긔 고랑이 파이고 수염도 잇대야 턱 미테만 마치 솔닙송이를 구로 부텨노흔 듯한 <운수조흔날(1924년),145>
밭은 여태 한 고랑도 다 끝이 못났으니 <산골나그네(1933년),109>
젊은 부부는 보리밭은 한 고랑씩 맡아 가지고 김을 매며 나간다. <1933영원의미소,325>
그는 일부러 장거리를 도라서 밧고랑을 드러서 둔덩을 올라섯다가 다시 나려스는 곳은 말할 것 업는 우물이다. <화염에 싸인 원한(1926년),142>
다만 밭고랑에 웅크리고 앉어서 땀을 흘려가며 꾸벅꾸벅 일만 하엿다. <金따는콩밭(1935년),50>
‘밭고랑’의 ‘고랑’이 ‘골 + -앙’으로 만들어진 어휘라고 하니까, ‘쇠고랑 찬다’의 ‘고랑’도 ‘골 + -앙’으로 분석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쇠고랑’에 보이는 ‘고랑’은 ‘밭고랑’의 ‘고랑’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어휘다. ‘쇠고랑’의 ‘고랑’은 ‘골 + -앙’으로 파생된 것이 아니라, ‘고리’에 ‘-앙’이 붙어서 만들어진 단어다. ‘고리’는 ‘쇠줄이나 끈 따위를 구부려서 두 끝을 맞붙여 대체로 둥글게 만든 물건’을 말한다. ‘열쇠고리’의 ‘고리’[環]와 같은 것이다. ‘쇠고랑’의 모습이 이러한 ‘고리’의 모습과 같아서 생긴 것이다. 따라서 ‘밭고랑’의 ‘고랑’과 ‘쇠고랑’의 ‘고랑’은 동음이의어일 뿐이다.
‘도랑’은 ‘폭이 매우 좁은 작은 개울’을 뜻하지만, 어느 정도 작은 개울을 지시하는지 알기 힘들다. 물이 흐르는 곳에 ‘개천, 개울, 내, 시내, 돌, 도랑’ 등의 이름이 있는데, 이 중에서 가장 작고 폭이 좁은 곳이 ‘도랑’이다. ‘개천, 개울, 내, 시내’는 논이나 밭에는 없는 것이고, ‘도랑’은 주로 논과 밭에만 있기 때문이다. ‘도랑’은 ‘돌 + -앙’으로 분석된다. ‘돌’은 ‘도랑’보다 조금 큰 개울을 지칭한다. 이 ‘돌’은 15세기 문헌에는 ‘돌ㅎ’로 나타난다. 소위 ‘ㅎ 종성 체언’이다.
가마오디 西ㅅ녁 비취옛 개 외노라 고기 잡 돌해 얏도다 (鸕鶿西日照曬翅滿漁梁)<두시언해(1481년)7,5b>
(가마우지가 서녘 해가 비취는 곳에 날개 말리노라 고기 잡는 도랑에 가득하도다) 큰 래 쇠 돌히 흐르며<법화경언해(1463년)2,8a>
(큰 가뭄에(도) 크게 도랑이 흐르며) 돌 (梁)<훈몽자회(1517년)上,2b>
돌 거(渠) <신증유합초간본(1576년)上,18b>
돌 구(溝) <신증유합초간본(1576년)上,18b> <칠장사판유합(1664년),11b> <송광사판유합(1730년),11b>
구(溝)<유합무신간판본(19세기중엽),9b>
‘돌ㅎ’이 ‘도랑’으로 출현하는 것은 19세기 말이다. ‘돌’과 ‘도랑’은 문장에서 “돌(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에서 보는 것처럼 서로 대치하여 사용하여도 아무런 의미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대신 ‘돌’은 오늘날 방언의 입말로 ‘똘’로 쓰이고 있으나, 대부분 접미사 ‘-앙/-엉’이 붙은 ‘도랑’ 또는 ‘또랑’이 더 흔히 쓰이고 있다.
도랑(渠) <한불자전(1880년),494>
도랑 간(澗) <정몽유어(1884년),5b>
밧도랑 혁(洫) <정몽유어(1884년),21b>
도랑(溝澮) <국한회어(1895년),79>
도랑 구(溝) <통학경편(1916년),4b>
건배의 안해가 점심을 이고 도랑을 건너오는 것이 보였다. <상록수(1936년)1,092>
다만 여긔저긔 도랑이 저서 물이 흘러갈 이다. <무정(1918년)3,593>
다만 정월과 영철을 실은 자동차가 물이 고인 논도랑을 지나고 깎아지른 산비탈을 돌아가고 <환희(1922년)2,340>
‘도랑’은 ‘고랑’과 마찬가지 이유로 ‘골항’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그 곳에 돌항이 여시 잇서 유더아 사의 씻 풍쇽대로 두니 <성경직해(1892년)2,19b>
‘논두렁’은 ‘물이 괴어 있도록 논의 가장자리를 흙으로 둘러막은 두둑’을 말한다. ‘도랑’이 물이 흐르도록 파 놓은 곳을 말하는데 비해 ‘두렁’은 ‘물이 흐르지 못하도록 막아 놓은 곳’을 말한다. 그래서 ‘논두렁길’이란 단어는 있지만, ‘논도랑길’이란 단어는 없다. ‘밭두렁길’은 있지만, ‘밭도랑길’이 없는 것은 두둑하게 흙을 쌓아 놓은 곳은 길이 될 수 있지만, 움푹 파인 곳은 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렁’은 ‘논이나 밭의 가장자리로 작게 쌓은 둑이나 언덕’을 말한다. ‘두렁’은 논이나 밭의 경계를 만들기 위해 논과 밭의 모든 곳을 막아 놓은 곳이다.
‘두렁’은 17세기 문헌에 ‘두렁’으로 나타난 이후 오늘날까지 형태의 변화 없이 쓰이고 있는 어휘다.
십 쳥 밤비예 벗고개 논 오로 무티고 두렁 헤여디니 죵 네 뎡조차 가래질다 <병자일기(1636년),226>
두렁(岸) <한불자전(1880년),503>
두렁(堰) <국한회어(1895년),86>
밧두렁 롱, 두덕 롱(隴) <부별천자문(1913년),5a>
는 곡식 삭 르기 논두렁의 구멍 기 <흥부젼(19세기),1a>
흙과 거름을 주무르던 손을 씻고, 논두렁에가 둘러 앉어서 점심을 먹는다. <상록수(1936년)1,093>
당장으로 논두렁을 두드리며 <흙(1932년)1,83>
벌판에는 논마다 물이 가득가득 피어서 논두렁으로 철철 넘쳐 흘러 온통 바다를 이루었고 <영원의미소(1933년),204>
‘두렁’은 매우 특이한 조어법을 보인다. ‘둘- + -엉’으로 구성된 단어인데, 원래 ‘-앙/-엉’이란 명사파생 접미사는 그 어기가 대부분 명사인데 비하여 ‘두렁’의 어기는 ‘두르다’의 어간 ‘두르-[圍]’이기 때문이다. ‘논과 밭의 주위를 두른 것’이어서 ‘두르- + -엉’이 된 것으로 해석된다. 동사 어간이 어기일 때에는 대부분이 ‘-앙/-엉’을 붙이지 않고 주로 ‘-앙이/-엉이’를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두렁’은 단지 ‘-엉’만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동사 어기에 ‘-앙/-엉’이 붙어서 명사로 파생된 예들이 보이기 때문에, ‘두렁’의 조어법에 문제는 없다. ‘이엉’이 그러한데, ‘이엉’은 복개(覆蓋)를 뜻하는 ‘니다’의 어간 ‘니-’에 접미사 ‘-엉’이 결합되어 ‘니엉’이 되고 이것이 오늘날의 ‘이엉’이 된 것이다.
‘밭고랑, 논도랑, 논두렁’ 등에 보이는 ‘고랑, 도랑, 두렁’은 각각 ‘골 + -앙’, ‘돌ㅎ + -앙’, ‘두르- + -엉’처럼 명사와 동사의 어기에 생산력이 대단한 접미사 ‘-앙/-엉’이 붙어서 된 단어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앙/-엉’과 같은 접미사에 의해 파생된 단어들은 원래 어기로 쓰이던 단어들은 점점 사라지고 오히려 ‘-앙/-엉’이 붙어서 파생된 단어들이 생산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골’이나 ‘돌’ 등은 거의 쓰이지 않고 ‘고랑’이나 ‘도랑’이 더 활발히 쓰이고 있다. ‘구무’보다 ‘구멍’이 ‘별’보다는 ‘벼랑’이 ‘받’보다는 ‘바당’이, ‘맏’보다는 ‘마당’이 주로 쓰이고 파생의 핵심이 되었던 ‘구무, 별, 받, 맏’ 등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어휘의 삶과 죽음을 여기에서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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