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나는 지나(支那) 나라 사람들과 같이 목욕을 한다 |
(2) |
무슨 은(殷)이며 상(商)이며 월(越)이며 하는 나라 사람들의 후손들과 같이 |
(3) |
한물통 안에 들어 목욕을 한다 |
(4) |
서로 나라가 다른 사람인데 |
(5) |
다들 쪽 발가벗고 같이 물에 몸을 녹히고 있는 것은 |
(6) |
대대로 조상도 서로 모르고 말도 제가끔 틀리고 먹고 입는 것도 모도 다른데 |
(7) |
이렇게 발가들 벗고 한물에 몸을 씻는 것은 |
(8) |
생각하면 쓸쓸한 일이다 |
(9) |
이 딴 나라 사람들이 모두 니마들이 번번하니 넓고 눈은 컴컴하니 흐리고 |
(10) |
그리고 길즛한 다리에 모두 민숭민숭하니 다리털이 없는 것이 |
(11) |
이것이 나는 왜 자꼬 슬퍼지는 것일까 |
(12) |
그런데 저기 나무판장에 반쯤 나가 누워서 |
(13) |
나주볕을 한없이 바라보며 혼자 무엇을 즐기는 듯한 목이 긴 사람은 |
(14) |
도연명(陶淵明)은 저러한 사람이였을 것이고 |
(15) |
또 여기 더운물에 뛰어들며 |
(16) |
무슨 물새처럼 악악 소리를 지르는 삐삐 파리한 사람은 |
(17) |
양자(楊子)라는 사람은 아모래도 이와 같었을 것만 같다 |
(18) |
나는 시방 녯날 진(晉)이라는 나라나 위(衛)라는 나라에 와서 |
(19) |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 같다 |
(20) |
이리하야 어쩐지 내 마음은 갑자기 반가워지나 |
(21) |
그러나 나는 조금 무서웁고 외로워진다 |
(22) |
그런데 참으로 그 은(殷)이며 상(商)이며 월(越)이며 위(衛)며 진(晉)이며 하는 나라 사람들의 이 후손들은 |
(23) |
얼마나 마음이 한가하고 게으른가 |
(24) |
더운물에 몸을 불키거나 때를 밀거나 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
(25) |
제 배꼽을 들여다보거나 남의 낯을 쳐다보거나 하는 것인데 |
(26) |
이러면서 그 무슨 제비의 춤이라는 연소탕(燕巢湯)이 맛도 있는 것과 |
(27) |
또 어늬바루 새악시가 곱기도 한 것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것일 것인데 |
(28) |
나는 이렇게 한가하고 게으르고 그러면서 목숨이라든가 인생(人生)이라든가 하는 것을 정말 사랑할 줄 아는 |
(29) |
그 오래고 깊은 마음들이 참으로 좋고 우러러진다 |
(30) |
그러나 나라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
(31) |
글쎄 어린 아이들도 아닌데 쪽 발가벗고 있는 것은 |
(32) |
어쩐지 조금 우수웁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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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조당(澡塘)에서”, 『인문평론』3권 3호 1941. 4.
(번호는 필자가 매김) |
백석(1912~1995)의 시 “조당에서”에서 ‘조당’은 “짜오탕, 목욕탕의 중국말이다. 주로 허름한 옛날식 공중 목욕탕을 가리킨다”『정본백석시집』. 그렇게 볼 때 이 시는 요즘으로 치면 한국 사람이 서양의 사우나탕 같은 데 가서 외국인들을 바라보며 쓴 시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시에서는 끊임없이 “나는 지나나라 사람들과 같이 목욕한다. ① 그들과 나는 같은가? 다른가?, 같다면 어떤 게 같은가?” 하는 궁금증이 이 시를 이끌어가는 핵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지나나라 사람들과 조선 사람인 내가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시 구절은 “다들 쪽 발가벗고 같이 물에 몸을 녹이고 목욕을 한다”(1~8)라는 구절이다. 이 문장을 보면서 생각나는 유명한 말은 “장군이나 거지나 목욕탕에서는 동등하다”라는 말이다. 즉 “계층을 구분해 주는 옷을 벗고 보면(물 속에 들어가면) 지나나라 사람이나 조선 사람인 나나 다 같다”라는 뜻이다. 벌거벗으면 모두 같다는 말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국인과 조선인이 동양인이라는 점에서, 사람이라는 점에서 같다. 중국인들도 서로 따지면 다르지만 조선인과 달리 “이 딴 나라 사람들이 모두 이마들이 번번하니 넓고 눈은 컴컴하니 흐리고 그리고 길죽한 다리에 모두 민숭민숭하니 다리털이 없는 것이(9~10)”라고 지나나라 사람의 공통점을 말한다. 이마, 눈, 다리, 털 등으로 외모의 공통점을 말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이것은 다른 편으로는 조선 사람과의 다른 점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백석 시인이 생각하기에 한 나라 사람들의 특징을 알려주는 것은 “대대로 조상도 서로 모르고 말도 제가끔 틀리고 먹고 입는 것도 모두 다른데(6)”라는 구절이다. 즉 한 민족을 묶어 주는 기본 틀이 첫째, 조상, 둘째, 말(언어), 셋째, 음식, 넷째, 의복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런 시인의 관점에서 하나하나 짚어보자.
먼저 지나나라 사람들의 조상을 살펴보면 중국의 상고대는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로 시작한다. 이 시에서는 ‘은(殷), 상(商), 월(越)나라 사람들의 후손들(2)’이다. 이 중에서 대표적으로 상나라를 살펴보겠다. “수도의 이름을 따라 은(殷)이라고도 한다. 하(夏)·상(商·)주(周) 3대의 왕조가 잇달아 중국 본토를 지배하였다고 하나, 하왕조는 고전(古典)에만 기록되어 있을 뿐, 전설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이에 대하여 상왕조는 20세기에 들어서 그 수도에 해당하는 은허(殷墟)의 발굴이 진행됨에 따라서, 적어도 그 후기에는 당시의 문화 세계였던 화북(華北)에 군림하였던 실재의 왕조였음이 판명되었다. 따라서 상나라는 중국 최고(最古)의 역사적 왕조라 할 수 있다. 상나라 전기는 기원전 1600년부터 1300년까지이고, 도읍을 은으로 바꾼 상나라 후기는 1300년부터 1046년까지이다.”「네이버 백과사전」.
그리고 시인이 말하는 ‘월나라’는 춘추시대 중국의 한 나라인데 춘추시대란 중국 주나라 360년간의 전란 시대로 춘추오패가 거론된다. “제나라 환공, 진나라 문공, 초나라 장왕, 오나라 부차, 월나라 구천”의 이야기 『열국지』는 우리나라에서 오래도록 읽혔던 고전이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월나라는 지금 저장[浙江(절강)] 지방에 있던 나라(주도는 항주)이다. 또한 여기서 언급된 위나라, 진나라(18)는 위진남북조 시대의 나라로 진(秦)·한(漢)과 수(隋)·당(唐)의 두 통일기를 잇는 정치적 분열시기이다.”「네이버 사전」.
두 번째로 말(언어)이 같아야 같은 민족이라는 특징을 살펴보면 지나나라 사람과 우리나라 사람이 동질적임을 보여준다. 말은 즉 언어이고 문학이다. “그런데 저기 나무판장에 반쯤 나가 누워서/ 나주볕을 한없이 바라보며 혼자 무엇을 즐기는 듯한 목이 긴 사람은/ 도연명(陶淵明)은 저러한 사람이였을 것이고/ 또 여기 더운물에 뛰어들며/ 무슨 물새처럼 악악 소리를 지르는 삐삐 파리한 사람은/ 양자(楊子)라는 사람은 아모래도 이와 같었을 것만 같다(12~17)”라는 구절을 보면 도연명 같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서 반쯤 나가 누워서 긴 목으로 나주볕(저녁볕)을 한 없이 바라보면서 혼자 무엇을 즐기는 사람을 연상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도연명은 “중국 동진의 시인(365~427). 이름은 잠(潛). 호는 오류선생(五柳先生). 연명은 자(字). 405년에 팽택현(彭澤縣)의 현령이 되었으나, 80여 일 뒤에 <귀거래사>를 남기고 관직에서 물러나 귀향하였다. 자연을 노래한 시가 많으며, 당나라 이후 육조(六朝) 최고의 시인이라 불린다. 시 외의 산문 작품에 <오류선생전>, <도화원기> 따위가 있다.”「네이버 백과사전」고 한다. 이 설명을 보면 도연명은 벼슬을 대단치 않게 여기고 귀거래사를 읊고 고향에 돌아가 홀로 자연을 벗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런 특징을 목욕탕에서 짚은 것이다.
또한 양자라는 중국의 사상가를 닮은 사람을 짚고 있는데 양자는 다음과 같은 사람이다. “양자(양주)楊朱, [BC 440 ?~BC 360 ?] 자가 자거(子居)라는 설이 있으며, 그 전기는 명확하지 않고 겨우 《장자》, 《열자》에 그 언행이 남아 있을 정도이다. 맹자가 “양주·묵적(墨翟)의 말이 천하에 충만하였다”고 그 이단성(異端性)을 지적한 것으로 미루어, 당시 이 학파는 대단히 융성한 것 같다. 중심사상은 자기 혼자만이 쾌락하면 좋다는 위아설(爲我說), 즉 이기적인 쾌락설인데, 지나침을 거부하고 자연주의를 옹호하였다. 이것은 노자사상(老子思想)의 일단을 발전시킨 주장이었다.”「네이버 백과사전」. 이 해설을 보면 양자라는 사람은 자기 혼자만이 쾌락하면(?) 좋다는 이기적인 쾌락설을 주창한 사상가이다. 그런 점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공동 목욕탕에서 더운물에 뛰어들며 악악 소리를 지르는 삐삐 파리한 사람이 마치 이기적인 쾌락설을 주장한 양자 같은 사람이라는 묘사가 재미있다. 이런 도연명이라는 시인과 양자라는 사상가는 언어를 다루는 사람인데 조선 사람인 백석 시인이 알고 공감한다는 점에서 언어로 보나 문학으로 보나 지나나라 사람과 백석은 동질적이다.
세 번째로 백석은 “더운물에 몸을 불키거나 때를 밀거나 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제 배꼽을 들여다보거나 남의 낯을 쳐다보거나 하는 것인데/ 이러면서 그 무슨 제비의 춤이라는 연소탕(燕巢湯)이 맛도 있는 것과/ 또 어늬바루(어디쯤) 새악시가 곱기도 한 것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것일 것인데/ 나는 이렇게 한가하고 게으르고 그러면서 목숨이라든가 인생(人生)이라든가 하는 것을 정말 사랑할 줄 아는/ 그 오래고 깊은 마음들이 참으로 좋고 우러러진다(24~29)”라는 구절에서 지나나라 사람과 조선 사람인 자신이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食) 예쁜 색시를 좋아하는(色) 점에서 별 다른 차이가 없음을 말한다. 네 번째가 의복인데 이 목욕탕에서는 옷을 벗었으므로 의복은 논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물의 속성은 낮은 곳으로 흐르며 한 곳(그릇)에 담기면 달랐던 모든 것들이 같아진다. 이런 물의 특성을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노자의 사상에서, 물을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의 표본으로 여기어 이르던 말)「표준국어대사전」라고 했다. 물의 위대한 속성과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종족들이 모인 넓은 지나나라 목욕탕에서 백석 시인과 지나인들이 물 속에 똑같이 잠겨서 한가하고 게으르게 들어앉아 목숨이라든가 인생이라든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인류가 예전부터 가져온 “오래고 깊은 마음들(29)”로서 참으로 좋고 우러러진다고 했다. 아마 백석이 영국의 한 목욕탕에 가 앉았더라도 세익스피어를 생각하고 그 종족의 외양과 언어를 생각했을 터이고 그리스의 목욕탕에 가 앉았더라도 탈레스와 소크라테스 등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또 이 시에서 주목할 점은 목욕탕에서 사람을 관찰하면서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이다. 즉 이 시에는 “쓸쓸하다, 슬퍼진다, 반가워진다, 외로워진다, 우러러진다, 우습다”와 같이 감정의 기복이 무척 심하게 나타난다. 그것을 간단히 해석하면 처음 목욕탕에 들어갔을 때에 낯설음과 외로움 때문에 쓸쓸하고 슬펐다가 도연명과 양자 같은 사상가와의 동질성을 생각하면서 반가워졌다가 인생을 여유 있게 바라볼 줄 아는 지나 사람들의 모습을 우러러보다가 다시 장난기 있는 현실로 돌아와 우습다고 말함을 짐작할 수 있다. 시 끝 구절에서 “그러나 나라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글쎄 어린 아이들도 아닌데 쪽 발가벗고 있는 것은/ 어쩐지 조금 우수웁기도 하다(30~32)”라고 시를 맺는다. 역시 백석 시에서 장난기를 빼 놓으면 백석 시가 아닐 것이다. 장난기와 웃음의 미학은 인생이나 문학에서 숭고함이라든가 고귀함이라든가 하는 장막에서 벗어나는 현실 인식의 도구라는 점에서 백석의 멋을 또 한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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