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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자 표기 그대로 둘 것인가 - 한글날을 보내며
한규희(韓奎熙) / 기자(중앙일보 어문연구소)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한다.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엽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쉬이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위 글은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의 동기와 목적을 담은 훈민정음 서문을 풀어 쓴 것이다. 많은 사람이 한글을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적 산물 중 하나’, ‘간단하면서도 논리적이며, 고도로 과학적인 글이다’ 등 찬사를 쏟아낸다.
   10월 9일은 559돌 ‘한글날’이다. 매년 한글날만 되면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기 위한 다채로운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마련된다. 올해에는 국회에서 한글날을 앞두고 이 날을 국경일로 정하자는 결의문이 채택됐다. 정부와 각종 사회단체에서는 기념식과 유공자에 대한 시상식을 하고, 한글 전시회와 다양한 행사를 펼치며, 한글 관련 책들이 쏟아지는 등 한글날의 의미를 다시 일깨우는 다양한 노력이 펼쳐진다. 신문·방송에서도 한글 관련 특집을 하고 온 나라가 온통 잔치 분위기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말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반갑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필자는 왠지 씁쓸한 마음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감출 수가 없다. 이 날이 지나면 금세 모든 것이 잊힐 것이라는 사실을 매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없으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우리말 ‘홀대’의 현장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고 일반 사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KT(한국통신), KT&G(한국담배인삼공사), KB(국민은행),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POSTECH(포항공과대학교) 등 공공성이 강한 기업·기관·은행·학교까지도 외래어도 아닌 로마자로 간판을 바꿔 다니 온 나라가 로마자 홍수에, 거리를 걷다 보면 이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조차 모를 지경이다. 언론에서도 정치인의 이름을 로마자 약자로 쓰는가 하면 방송·신문에 로마자 천지이니, 한글날 생일상을 받으신 세종대왕의 마음이 어떠하시겠는가?
   더욱이 우리말과 글에는 우리 민족의 얼이 담겨 있는데 미래에 우리말을 가꿔나야 할 젊은 세대의 언어생활(인터넷,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보면 외계어·이모티콘 등 국적 불명의 언어를 쓰거나 무분별한 은어나 비속어가 판을 치니 우리말의 앞날을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필자가 기업의 세계화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21세기는 문화가 한 국가의 위상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믿기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 밑바탕에 한글이 있다. 문화 강국 한국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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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