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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휘 이야기
  소년, 청소년, 청년
조남호(趙南浩) / 국립국어원
  지난 9월 21일 대한민국 의학 한림원 주최로 의학 용어 원탁 토론회가 있었다. 주제가 ‘사람 발달 단계 관련 용어’였는데 이 토론회에서 필자는 평소에 무심코 사용하면서도 여러 가지로 관심을 끌 만한 요소를 지닌 것임을 깨닫지 못한 단어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글의 제목으로 삼은 ‘소년, 청소년, 청년’이 그것이다. 특정한 연령대의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모두 ‘년’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같지만 그 쓰임에는 여러 가지로 차이가 있다.
  일단 ‘청소년’은 제쳐 두고 ‘소년’과 ‘청년’만 보자. 이 둘은 한자로 ‘少年’, ‘靑年’으로 적는다. 글자 그대로의 뜻을 고려하면 ‘어린 나이’, ‘젊은 나이’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심훈의 작품에 ‘소년 남자’라는 말이 나오고, 나도향의 작품에 ‘청년 남녀’라는 말이 나오는데 ‘중년 남성’과 견주어 보면 이것들은 ‘소년, 청년’이 특정 연령대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는 증거가 된다. 이런 면에서 ‘소년, 청년’은 ‘유년(幼年), 장년(壯年), 중년(中年), 노년(老年)’들과 짝이 된다.
  그런데 지금은 보통 어떤 뜻으로 쓰는가? 이 둘은 ‘연령대’라는 의미보다는 ‘사람’의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미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렇지만 ‘유년, 장년, 중년, 노년’은 보통 그런 의미로 쓰지 않아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1920년에 간행된 『조선어사전』에 이 두 단어가 올라 있는데 일본어로 ‘소년’은 나이 어린 사람이라고 풀이되어 있고, ‘청년’은 젊은 나이를 뜻하는 ‘청춘(靑春)’과 같은 말로 되어 있다. 그리고 1938년에 간행된 문세영 편 『조선어사전』에는 ‘소년’이 “①나이가 어린 남자. ②나이가 젊은 사람.”으로 풀이되어 있고, ‘청년’은 “나이가 젊은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이로 본다면 사람을 뜻하게 된 것은 ‘청년’이 더 늦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청소년’은 어떤가? 이것도 ‘靑少年’이라고 적는데 ‘청년’과 ‘소년’이 합쳐진 말이다. ‘청소년’이라는 말은 1938년에 간행된 『조선어사전』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해방 이후에 이 사전이 수정 증보가 되면서 ‘청소년’이 실렸고 ‘청년과 소년’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그 무렵에 등장한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은 보통 이 말을 ‘소년’과 ‘청년’의 중간에 해당하는 연령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쓴다. 대체로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이 연령대이다. 이 말 역시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는 의미가 달라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청소년 기본법에서는 9세 이상 24세 이하의 자를 말한다고 하여 일상생활에서의 쓰임과는 다르다.
  이 말들의 쓰임에서 보이는 다른 문제를 보자. ‘소년’과 ‘청년’은 흔히는 사람 중에서도 남자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그 연령대에 속한 사람을 포괄하여 말할 때도 쓴다. 남자가 전체를 대표하기도 한다고 할 수 있다. ‘소년원’이나 최근에 자주 쓰는 ‘청년 실업’ 등의 말을 보면 ‘소년’과 ‘청년’이 들어갔지만 그 말이 지칭하는 범위에는 분명히 여자도 포함된다. 이에 비해 ‘청소년’은 ‘청년’과 ‘소년’이 합쳐진 말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남녀를 포괄하는 의미로 쓴다.
  ‘소년’과 ‘청년’에도 차이가 있다. ‘소년’이 남자만을 의미한다면 그에 대응하여 여자만을 의미하는 말로 ‘소녀’가 있다. 그런데 ‘청년’에는 이러한 짝을 이룰 말이 없다. ‘처녀’, ‘아가씨’, ‘숙녀’ 등이 있지만 다 적합하지 않다. ‘청소년’은 남녀를 포괄할 뿐이고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지칭하는 말은 없다. ‘소년’과 ‘소녀’가 있다고 ‘청소년’과 ‘청년’에도 짝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 새로운 말을 만들거나 의미를 분화하여 쓰는 것은 어휘의 세계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그동안은 성 차이를 구별하는 말이 별로 필요하지 않아서 따로 만들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과 ‘청년’에는 남녀를 구분하여 사용하는 말이 없다는 지적은 토론회 자리에서도 나왔는데 ‘청소녀’, ‘여청년’이라는 말이 쓰인다는 지적을 하신 분들이 있었다. 필자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실제 이 말들이 검색되어 나왔다. 대학생 여자만을 따로 지칭하기 위해 ‘여대생’이 생긴 것에 견줄 만하다. 남자만을 가리키는 ‘남청년’도 보인다. 그런데 남자 청소년을 가리키는 말은 따로 없다. 그냥 ‘남자 청소년’이라고 나올 뿐이다. 남녀를 구분할 필요가 생기면서 새로운 말이 등장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말들이 정착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보아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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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