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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어 순화
  쉬운 우리말 쓰기로서의 일본어 잔재 순화
박용찬(朴龍燦) / 국립국어원
  우리나라는 광복 직후부터 ‘국어 정화(淨化)’라 하여 대대적으로 일본어 잔재를 우리말로 순화해 왔다. 당시의 순화는 우리말의 순수성을 지키는 일(순수 우리말 쓰기)에 치우쳐 있었다. 이는 일본어 잔재의 특성을 고려할 때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일본어 잔재는 한일 간의 자연스러운 언어 접촉 과정에서 우리말에 유입된 것이 아니다. 일본에 의해 일방적, 강제적으로 유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순수 우리말 상당수가 일본어에 밀려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당시의 일본어 잔재 순화는 우리말을 되살려 쓴다는 차원에서 ‘순수 우리말 쓰기’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켜 순수 우리말 쓰기로서의 일본어 잔재 순화는 상당한 실효를 거두어 왔다. 적어도 공식 석상이나 교육 현장에서는 일본어를 일절 입 밖에 내지 않았고 그 결과 우리의 언어생활에 깊숙하게 침투해 있던 일본어 투 용어가 상당수 사라졌다. 20여 년 전만 해도 일상적으로 쓰였던 ‘벤또’, ‘요지’, ‘쓰봉’, ‘우와기’ 따위의 일본어 투 용어가 종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나이 드신 몇몇 어르신들의 말에서나 간혹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자리, 즉 일상 언어생활에서는 아직도 적지 않은 일본어 투 용어가 그대로 쓰이고 있다. ‘찌라시’, ‘삐끼’, ‘와꾸’, ‘앗사리’, ‘나시’, ‘뽀록나다’ 등의 순 일본어와 ‘노견(路肩)’, ‘대금(代金)’, ‘망년회(忘年會)’, ‘사양(仕樣)’, ‘선불(先拂)’, ‘수순(手順)’, ‘수입(手入)’, ‘지입(持込)’, ‘지참(持參)’ 등의 일본식 한자어를 일상 언어생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전문 기술 분야에선 일본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는 ‘노가다’, ‘나라시’, ‘신마이’, ‘시마이’, ‘오야지’등의 순 일본어가, 자동차 정비 현장에서는 ‘기스’, ‘마후라’, ‘쇼바’, ‘미션’, ‘부란자’, ‘다시방’, ‘백미러’ 등의 순 일본어, 일본식 발음의 영어, 일본식 영어 등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봉제, 인쇄, 방송 현장에서도 일본어 잔재가 득세하고 있다.
  학술 분야는 온통 일본식 한자어 천지이다. 클래식(고전 음악) 분야만 보더라도 ‘광시곡(狂詩曲)’, ‘기상곡(綺想曲)’, ‘야상곡(夜想曲)’, ‘소야곡(小夜曲)’, ‘조곡(組曲)’ 등의 일본식 한자어가 다량으로 쓰이고 있다. 법률, 의학, 화학, 식물, 생물 분야도 그렇고 심지어 국어학, 국사학, 국악 분야도 그렇다.
  그런데 이런 일본어 잔재를 지금까지처럼 우리말의 순수성을 지키는 일에 치우쳐서 순화하는 건 곤란하다. 이는 지나치게 국수(國粹)적인 것으로 비쳐서 역효과만 날 뿐이다. 우리말의 순수성만을 강조해 모든 일본어 잔재를 박멸(?)하는 건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우리의 언어생활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앞으론 실제적인 차원에서 일본어 잔재를 순화할 필요가 있다. 그건 바로 쉬운 우리말 쓰기 차원에서의 일본어 잔재 순화이다. 일상 언어생활에서 쓰이는 순 일본어는 ‘후까시’, ‘뽀로꾸’, ‘뗑깡’, ‘삐까삐까하다’ 등처럼 점점 속어화해서 일반인은 거의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자동차 정비, 건축, 봉제, 인쇄, 방송 현장의 용어도 해당 기술자가 아닌 한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심지어 학술 분야의 일본식 한자어는 학자가 아닌 한 깜깜하기만 하다.
  이렇듯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일본어 잔재 때문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 전체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하여 일본어 잔재를 순화해야 한다. 즉,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어 잔재를 찾아내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일을 해야 한다. 원활한 의사소통은 사회 통합의 밑바탕이 되므로 이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없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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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