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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어기본법, 제정보다 시행이 중요하다
한규희(韓奎熙) / 기자(중앙일보 어문연구소)
  지난해 제558돌 한글날을 맞아 중앙일보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면서도 흔히 틀리는 우리말 열 개를 골라 문제를 만들어 1면 기사로 내보냈다. 가족이 둘러앉아 문제를 풀어 보면서 우리말 실력을 확인해 보고 우리말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 열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소문이 [금새, 금세] 퍼졌다./ 2. 오늘은 [왠지, 웬지] 우울하다./ 3. 힘으로 [밀어부쳤다, 밀어붙였다]./ 4. 답을 [알아맞춰, 알아맞혀] 보세요./ 5.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치뤘다]./ 6. 상대 팀을 [꺽고, 꺾고] 우승했다./ 7. 물건 값을 카드로 [결재, 결제]했다./ 8. 산을 [넘어, 너머] 마을로 들어섰다./ 9. 깊은 시름에 [쌓여, 싸여] 있다./ 10. 이 자리를 [빌어, 빌려] 인사드립니다. (정답: 1. 금세, 2. 왠지, 3. 밀어붙였다, 4. 알아맞혀, 5. 치렀다, 6. 꺾고, 7. 결제, 8. 넘어, 9. 싸여, 10. 빌려)
  우리는 이 문제를 내면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평균 일곱 개 정도는 맞힐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다. 신문이 나온 후 교열기자들을 제외한 몇몇 사람에게 이 문제를 풀게 했는데, 평균적으로 일곱 개를 넘지 않았다. 우리말 교육의 현주소를 보는 순간이었다. 소위 유명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들의 우리말 실력이 이 정도라면 우리나라의 국어교육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태어나서부터 18년가량, 정규 교육과정만 따져도 10여 년 동안 우리말을 배운 사람의 실력이 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일까. 이는 학교의 국어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또한 대부분의 국민이 우리의 말과 글에 관심이 크지 않은 결과로도 여겨진다. 왜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언어에 관심이 없을까. 한마디로 얘기하면 제대로 배워도 별로 쓸모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말을 갈고닦는 데 투자하는 시간에 영어나 제2 외국어를 배우면 취직도 잘 되고 두루 이용할 곳이 많은데 누군들 아까운 시간을 우리말에 투자하겠는가.
  여기엔 정부와 사회에도 책임이 있다. 예전에는 취직 시험에 국어가 기본 과목으로 들어 있었으나 지금은 공무원 시험을 제외하면 국어를 시험 과목으로 채택한 곳을 거의 볼 수 없다. 논술 시험이 국어 시험을 대체한다고는 하나 내용에 중점을 두지 맞춤법을 비중 있게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니 논술을 대비해 작문을 가르치는 곳은 있어도 한글 맞춤법을 가르치는 곳은 거의 없다. 맞춤법이 틀려도 얘기만 통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조차 우리말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 정도다.
  책을 만드는 출판계에서도 이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 큰 신문사와 국어사전, 교과서를 만드는 곳을 제외하고는 우리말 교열을 담당하는 전문 인력을 둔 곳이 거의 없다. 그러니 책 속에 맞춤법에 어긋나는 말이 수없이 등장하고, 그 책을 읽은 사람은 잘못된 말을 전파해 틀린 말이 주인 행세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출판계의 열악한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독자를 상대로 책을 출판하려면 최소한의 책임 의식은 가져야 한다. 출판계뿐만이 아니다. 우리 언어생활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송에서 틀린 우리말 자막을 수없이 내보내는 데도 책임을 느끼거나 문제 삼는 사람이 거의 없다. 맞춤법이 바뀌어서 우리말을 잘 모른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맞춤법이 개정된 것이 1988년이니 벌써 15년도 넘었다. 바뀐 내용을 국민이 모르고 있다는 말은 변명이 아닐 수 없다.
  우리말의 현주소가 이러한데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정부, 국회에서도 매년 한글날만 반짝 행사로 우리말을 사랑하자고 외칠 뿐 우리말을 갈고닦는 데 필요한 인력이나 예산 지원에는 소홀한 느낌이다.
  지난해 12월 29일 문화관광부가 발의한 국어기본법 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27일자로 공포되었으며, 오는 7월 27일까지 이 법에 따른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제정될 예정이다. 그 내용을 보면 아쉬운 점도 많지만 정부, 국회가 우리말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 점은 환영할 만하다. 이 법 시행에 있어 정부는 단순히 모양새를 갖추는 데 그치지 말고 우리 언어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
  정부는 우리 말과 글을 지속적으로 갈고닦아 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정부뿐 아니라 학교, 사회, 국민 모두가 힘을 합해야 우리말이 세계 속에서 꽃피울 수 있는 언어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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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