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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리다’와 ‘어리석다’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슬기롭지 못하고 둔하다’란 뜻을 가진 ‘어리석다’란 단어가 생기기 이전에는 ‘어리다’가 ‘어리석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어린 百이 니르고져 배 이셔도’의 ‘어린 百’은 ‘나이 어린 백성’이 아니고 ‘어리석은 백성’이란 뜻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뜻을 가졌던 ‘어리다’는 오늘날 ‘어리석다(愚)’의 뜻은 사라지고 ‘나이가 적다(幼)’는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어리다’는 원래의 ‘슬기롭지 못하다’는 뜻을 ‘어리석다’에 넘겨주고 자신은 ‘나이가 적다’는 뜻으로 변화한 것이다.
  ‘어리다’가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15세기에는 ‘어리석다’(愚)의 뜻만을 가지고 있었다.

  愚는 어릴 씨라 <훈민정음언해본(1446년)> 나어리고 미혹미라(我是愚魯人)<번역박통사(1517년)> 愚어릴씨니 어린 내라 호미라 <능엄경언해(1461년)> 小臣어리고 鈍야 能배 업소니 <두시언해(1481년)>

  그러다가 16세기 말부터 ‘나이가 적다’(幼)는 뜻으로 쓰인 예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린식을 샹녜 소기디 말오모로 뵈며(幼子常視母誑) <소학언해(1586년)> 어린리고 늘근 어미븓드러(棄幼女扶老母)<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

  그러나 이 시기에 ‘어리다’란 단어는 원래의 의미인 ‘어리석다’란 의미로도 쓰이었다.

  어린 놈 (癡獃罔兩漢) <어록해(1657년)> 사먹여 어리게  약(麻藥) <역어유해(1690년)>

  ‘어리다’가 ‘愚’와 ‘幼’의 두 가지 뜻을 동시에 가질 수 있었던 것은 ‘愚’와 ‘幼’ 사이에 의미상의 유연성이 있었던 데에 기인한다. 즉 나이가 적을수록 경험이 적어 어리석은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15세기에는 ‘어리다’가 ‘幼’의 뜻을 지니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는 ‘幼’의 의미를 지닌 단어는 오늘날의 ‘젊다’에 해당하는 ‘졈다’가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에 ‘나이가 어리다’를 ‘나이가 졈다’로 표현하였던 것이 그 증거다.

  졈고식 업슬(年少無子) <삼강행실도(1471년)> 孤졈고 아비 업슬시라 <내훈언해(1475년)> 네 나히 졈고 子息이 업스니(汝年少無子) <속삼강헹실도(1514년)> 늘그며 졈은 적이 인니(有老幼焉)<소학언해(1586년)>

  그래서 ‘졈다’와 ‘어리다’는 같은 문장에서 함께 배열되기도 하였다.

  내   뒤쇼져머 어리오 <석보상절(1447년)> 叔과 妹어리고 졈어양 舅姑의 겨이실<여사서언해(1736년)>

  앞의 문장은 ‘나이가 어려서 어리석다’는 뜻이고 뒤의 문장은 ‘어리석고 나이가 적어’의 뜻이다.
  그런데 ‘어리다’가 ‘나이가 적다’의 뜻으로 바뀌면서 ‘어리다’와 ‘졈다’는 그 의미 영역을 분할하게 된다. 즉 ‘졈다 → 늙다’의 의미 영역을 ‘어리다 → 졈다 → 늙다’의 의미 영역으로 세분하여 구분하게 되었다. ‘졈다’의 의미 영역은 ‘어리다’를 포함했던 것인데, ‘졈다’의 한 부분을 ‘어리다’가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 결과로 사람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들을 부르는 명칭이 달라지게 된다. ‘아주 어린 아이’는 ‘아기’, ‘더 나이가 든 아이’는 ‘아[아희]’, 이 아이가 더 나이가 들면 ‘져므니[져믄이, 졂은이, 젊은이]’, 더 나이가 들면 ‘늘그니’[늘근이, 늙으니, 늙은이]가 되었다. 그 결과 ‘아기(嬰兒)→아(兒孩)→져므니(靑年)→져므니(壯年)→늘그니(老人)’로 분화되었다. 그래서 15, 16세기에는 ‘아기, 아, 져므니’를 모두 ‘졈다’[젊다]고 하였는데, ‘어리다’가 ‘愚’의 뜻을 버리고 ‘幼’의 뜻을 가지면서 ‘아기, 아’를 ‘어리다’고 하여 ‘어리니’[어린이]라고 하고, ‘져므니’[젊은이]만 ‘졈다’[젊다]고 하였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어린이→젊은이→늙은이’로 구분하게 되었다. 그래서 말은 어린 것은 ‘상이’라고 하고 젊은 말은 ‘’이라고 하였음을 볼 수 있다.

  어린상이와 져믄이 혈긔 온젼티 못홈애 (幼駒少馬) <1682마경초집언해(1682년)>

  오늘날의 뜻을 가지고 ‘어린이’란 단어가 쓰인 것은 이미 17세기였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란 단어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어린이’란 단어를 특수화하여 사용한 사람일 뿐이다.

  얼운은 어린이어엿비 너기디 아니며 <경민편언해(1658년)> 늙은이와 어린이와 샹은 다 뒤잇게고 <삼역총해(1703년)> 늙은 이공경고 어린이 며 <경신록언석(1796년)>

  ‘어리다’가 ‘어리석다’의 의미를 버리고 ‘나이가 적다’의 뜻으로 바뀌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의미를 가진 새로운 단어가 생겨났는데 그것이 바로 ‘어리석다’이다. ‘어리석다’의 초기 형태는 ‘어리셕다’이다. 이 ‘어리셕다’는 18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부야 너심히 어리셕도다 <진쥬탑(18세기)> 방경이 본일뎜 어리셕은 셩픔이 잇더니 <진쥬탑(18세기)> 제 만 밋것도 어리셕은 사이라니라 <천로역정(1894년)>

  ‘어리셕다’가 ‘어리다’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리셕다’의 ‘어리-’가 ‘어리다’의 어간 ‘어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리셕다’의 ‘셕다’는 무엇일까? ‘셕다’란 단어도 역시 ‘작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녜 처엄 보던  랑호니 셔근 핫오새 곳다온 프를 繡얏더니((憶昔初見時小襦繡芳蓀) <두시언해중간본(1613년)> 이 몸이 셕은 선뷔로 擊節悲歌노라<해동가요> 원 대왕은 비유의 셕은 소견이라지 마샤 기리쇼셔 <양현문직절기(19세기)>

  이 ‘셕다’는 ‘적다’란 뜻을 가진 단어인 ‘혁다’가 구개음화된 형태이다.

  小王혀근 王이라 <석보상절(1447년)> 橫渠先生이 혀근 아 몬져 모로매 안졍고 샹심며 <번역소학(1517년)>

  그래서 ‘어리다’와 ‘셕다’의 어간이 합쳐 ‘어리셕다’란 뜻이 되었는데, 이 두 단어가 모두 ‘적다’와 ‘작다’의 의미를 지닌 것이다. 그리하여 ‘어리다’처럼 ‘어리셕다’란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어리다’는 ‘어리셕다’ 이외에도 ‘어리미욕다, 어리어리다, 어리숙다’ 등의 복합어가 있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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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