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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자나(키르기스스탄, 경희대)

  안녕하십니까? 저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울자나입니다. 오늘 저는 어느 날 (제가 여자이기 때문에) 저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화창한 여름날 오후였습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던 저는 방학이 되어서 고향에 내려와 있었고, 오랜만에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유 있던 오후에 저에게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생겼습니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 생각을 하며 들판을 한가롭게 거닐던 저는 갑자기 4명의 건장한 청년들 사이에 끼이게 되었고, 몸이 허공에 뜨는가 싶더니 어느새 낯선 승용차 안에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지만, 정신을 차리면서 “지금 내가 납치되고 있구나”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젠 끝이구나. 다시는 학교에 돌아갈 수 없고, 한국어 공부도 이제 끝이구나.”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집을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희 집은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시케크에서 4시간 정도 떨어진 시골인데 아직도 그곳에는 처녀를 납치해서 결혼하는 풍습이 남아있습니다. 이것을 ‘알라가추’라고 합니다. 저의 두 명 언니들도 이렇게 시집을 갔습니다. 끌려가는 동안 내내 저는 울면서 사정을 했습니다. “제발 저를 보내주세요. 저는 아직 시집을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저는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이루어야 할 꿈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내들은 막무가내였고, 4시간 정도 승용차로 끌려갔습니다. 드디어 어떤 집에 도착하게 되었고, 저는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시집을 갈 것인가, 아니면 부모님과 가족들, 동네 사람들, 친척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원치 않은 청혼을 거절할 것인가... 결혼을 수락하면 ‘갈음’이라는 품값을 신랑이 신부의 아버지에게 지불하고 시집을 가게 됩니다. 만약에 청혼을 거절하면 심한 경우 집에서 쫓겨나게 되고, 그렇지 않아도 한번 결혼 후 이혼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온 집안의 수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결혼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어렸고, 저에게는 많은 꿈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거절의 의사를 분명히 하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한국에 와서 말하기 대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키르기스스탄의 시골에서는 아직도 많은 경우 ‘알라가추’를 통해 결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수업시간에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풍습이 있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보쌈’ - 남존여비의 유교 사상이 강했던 조선 시대에 과부의 재혼이 사회적으로 죄악시되는 상황에서 있었던 풍습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의 여성들은 모든 일에 수동적이고 많은 부분에서 키르기스스탄의 여성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온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거리를 자연스럽게 활보하는 여성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알게 된 높은 이혼율과 재혼율, 20대 여성의 70%에 달하는 미혼율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보쌈을 통해서 재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웠던(낮았던) 여성의 지위는 이제 남성들과 동등하며 어쩌면 그보다 더 높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여성 미혼율이 높아지면서 ‘나의 결혼 원정기’ 같은 영화가 나올 정도로 이제는 시골 청년들은 국제결혼을 통해서만 결혼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변화된 한국의 여권 신장을 보면서 저는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여성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결혼을 비롯한 인생의 많은 일의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고, 결혼 후에도 남성과 대등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많이 부러웠습니다. 시질 갈 때 돈을 받고 시댁의 노동력으로 팔려 간다는 생각을 갖지 않아도 되고 한 인격체로서 당당하게 결혼하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하루 빨리 키르기스스탄에도 이런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바람들과 함께 한 가지 제 마음 가운데 석연치 않은 것이 있습니다. 여성의 지위가 남성과 대등해지고, 특히 결혼의 영역에 있어서 남성과 대등한 입장을 가진다 해도 이혼율과 여성 미혼율의 증가는 저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인도의 ‘사티제도’, 아프리카 여성의 ‘할레’, 한국의 ‘보쌈’, 키르기스스탄의 ‘알라가추’가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의 극단이라고 한다면, 이혼율과 여성의 미혼율은 여권의 또 다른 극단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모든 일에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00여 년 전 한국에서, 그리고 지금 현재 키르기스스탄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이 극단이었듯이 지금 한국에서의 여권도 남성의 억압에 대한 반향의 또 다른 극단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키르기스스탄에도 한국의 여성들과 같은 자유와 당당함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한국의 여성들도 올바른 균형 감각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