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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기(국립국어원 국어진흥팀장)

  교육부는 1997년에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 교육을 한다고 발표하였다. 그 까닭은 국제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능력과 소양을 갖춘 국제인을 양성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럴까 의심을 한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내 나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에게 영어를 조금 일찍 가르치는 것이 그렇게 큰 효과가 있을까? 오히려 우리말과 우리 문화에 대한 기본 바탕도 형성되지 않은 어린이에게 우리 것에 대한 열등감을 심어주지나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영어 조기 교육을 시행한 지 9년이 지났지만 애초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가진 자’와 ‘지식층’의 자녀는 국외로 유학을 나갔고 국내 외국어 학원은 또 하나의 영어 학교로 변하고 말았다. 사교육비는 점점 늘어만 가고 부부나 자식이 떨어져 사는 이른바 ‘기러기 가족’도 증가하였고 심지어 가정이 해체되는 사례까지 생겨났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를 쟁탈하면서 18, 19세기에 현지의 민족정신과 문화 말살을 위해 제일 열심히 한 것이 그 나라의 말과 문화를 없애고 자기 나라 말을 사용토록 하고 문화를 알리는 일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어를 없애려고 발악한 것도 이와 같았다. 그런데 교육부는 또다시 2008년부터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 조기 교육을 하겠다고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자발적으로 식민지 교육을 하겠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최근 한 연구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교 영어 교육에 연간 약 4조 원의 경비가 들어간다고 하고 경기도가 영어 마을을 만드는 데에 1,700억 원을 썼으며, 운영비와 교육비를 합하여 매년 550억 원이 들어간다고 발표한 이런 영어 마을에 초등학생 한 학년이 들어가서 1년 동안 영어 교육을 한다면 연간 18조 원의 돈이 들고 이만한 규모의 영어 마을을 만드는 데에 131조 원이 든다고 한다. 이 돈은 우리나라 교육 재정의 4배에 이른다. 두 학년을 수용하려면 연간 26조 원과 시설 투자비 262조 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마치 경쟁하듯이 지방자치단체는 영어 마을을 만들겠다고 하며, 현재 신청한 곳만도 30곳이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 정책의 앞날이 심히 걱정스럽다.
  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영어 조기 교육 정책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실패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까닭이 있다. 첫째, 영어 조기 교육은 우리 어린이들에게 고통을 주고 이들을 병들게 한다. 어린 나이에 영어 공부에 대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리거나 정신병에 걸린 어린이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체력과 정신력도 약해지고 눈도 나빠져서 안과 병원을 찾는 어린이가 많아지고 안경을 쓰는 어린이가 점점 늘어만 간다. 둘째, 자질 있는 영어 교사가 부족하다. 교육의 성패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교사의 자질이다. 먼저, 질 높은 영어 교사를 배출하는 계획이 선행되어야 한다. 2005년 교육 통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 초등학교 교사는 2만 1천여 명인데 영어 교사 자격증 소지자는 200여 명(1%)뿐이고, 영어가 가능한 교사도 3,000여 명 정도라고 한다. 이 정도의 수효로는 영어 조기 교육 시행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셋째, 현행 중학교 영어 교육 제도와 방법을 현실에 맞게 개선하지 않는 한 실질적인 영어 조기 교육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과거의 영어 교육이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것은 영어 조기 교육 여부와 별개로 교육 제도와 방법에 더 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영어 조기 교육 못지않게 국어 교육을 더 강화하는 일이다. 글쓰기 교육, 독서 교육, 말하기 교육, 토론 교육, 어문 규범 교육, 국어 문법 교육 등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은데도 국어 교육이 정상적으로 실천되지 않고 있다. 오직 입시 교육에만 매달려 실제 언어생활과는 거리가 먼 내용만을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이 또 있는데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이다. 영어 조기 교육에는 그렇게 열을 올리면서 왜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국외에 알리는 일은 뒷전에 두는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언어 교육 문제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국어 교육과 외국어 교육을 신중하게 검토해 보는 교육 당국의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