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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표(연세대 교수)

  한자어 ‘부부’(夫婦)의 한자 새김은 각각 ‘지아비 부, 지어미 부’이다. ‘지아비, 지어미’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웃어른 앞에서 남편을 낮추어 이르는 말’(지아비), ‘웃어른 앞에서 아내를 낮추어 부르는 말’(지어미)로 풀이되어 있지만, 이것은 현대의 의미이고 원래는 ‘남편’과 ‘아내’를 지칭하는 옛말이었다.
  ‘지아비’와 ‘지어미’에 보이는 ‘아비’와 ‘어미’는 그 뜻을 알겠지만, 그 앞에 붙어 있는 ‘지’는 그 형태만으로는 뜻을 알기 어렵다. “제가 무얼 안다고 그래?”를 “지가 무얼 안다고 그래?”로 발음하기도 하니까 혹시 ‘제(자기의) 아비’나 ‘제(자기의) 어미’가 ‘지아비’와 ‘지어미’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잘못 안 것이다. 왜냐 하면 ‘지아비’와 ‘지어미’의 중세국어 형태는 ‘집아비’와 ‘집어미’였기 때문이다.

갓 집아븨게오져여 괴이면 <1518정속언,006b>

  그러니까 그 의미는 ‘집의 아비(어미)’란 뜻이다. 그런데 왜 이 ‘집아비/집어미’가 ‘지아비/지어미’가 되었을까? 중세국어에서 ‘집’의 속격형은 원래 ‘짒’이다.

내 슬호가난리 오래 羅어더 뒷다니 <두시언해(1481년)>
짒사 더브러 고기와 보리밀 잇  가 江湖ㅅ 늘고리라 <두시언해(1481년)>

  그런데 15세기에 ‘짒’에서 ‘ㅂ’이 탈락하여 ‘짓’으로 변화하였다. 이것은 어간말자음군의 단순화에 말미암은 것이다. 그래서 ‘집’의 속격형인 ‘짒’은 15세기에만 보이고 그 이후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신 15세기에는 ‘짒’의 변화형인 ‘짓’이 동시에 등장한다.

그 짓가져 나오婆羅門이 보고 깃거 <석보상절(1447년)>
善友ㅣ 닐오그듸 뉘 짓리완내 겨지비외요려 다 <월인석보(1459년)>
 이욷짓 달기드러오나<삼강행실도(16세기)>
가난야 바배  긔 고기 인셜워노이다<삼강행실도(16세기)>

  위의 예문들에서 ‘가난리’(가난한 집의 딸이)가 ‘그 짓리’(그 집의 딸이)로 변화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집아비’와 ‘집어미’는 ‘짓아비’나 ‘짓어미’로 나타난다.

얼운니 짓아비 도여셔 <이륜행실도(1518년)>
짓아비 부(夫) <신증유합(1576년)>
짓아비 부(夫) <석봉천자문(1583년)>
만약 쳐가 그 짓아비버리고 곳쳐 시집가쟈면한 음 미니라더라 <예수셩교전서(1887년)>
예수 갈오샤가셔 네 짓아비불너 여긔 오라 <예수셩교전서(1887년)>
이 각각 한 부인두고 부인은 한 짓아비둘데 지아비가 부인의게 당연
<예수셩교전서(1887년)>

  그런데 16세기에 와서 ‘사이시옷’의 ‘ㅅ’이 탈락하는 현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예들은 1527년에 간행된 ‘훈몽자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 문헌에서는 새김과 음 사이에 ‘ㅅ’을 붙이기도 하고 생략하기도 한다. 이것은 이 시기가 사이시옷이 탈락하기 시작하는 시기임을 암시한다. 몇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밋 미(薇) - (薔) 챵폿 포(蒲) - (菖)
 감(芡) - 기련 역() 뭇 무(鵡) - (鸚)
긔린ㅅ 긔(麒) -긔린 린(麟)

  그래서 16세기부터 일부에서 ‘짓아비’와 ‘짓어미’가 ‘지아비’와 ‘지어미’로 변화하게 된다.

도 보고져도 보고져 지아비도 보고져각고 <순천김씨언간(1565년)>
그 지아비만나 죽디 아녇거<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
이믜 내 지애비더위고 날조차 므로려 냐 범이 이예 나가다 지아비 긔졀김시 어버 지븨 도라가니 새배 지아비 도로 사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
지아비 셔울 이셔 죽거곽글 븓드러 고을희 도라와 묻고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
君子지아비닐온 말이라 <1658여훈언해(1658년)>
夫主지아비란 마리라 <여훈언해(1658년)>
  업슨 지어미니이다 <오륜전비언해(1721년)>
지아비 이시면 지어미 이시니 <어제경세문답(1761년)>
나희 지어미 업스면물이 님재 업고 계집이 지아비 업스면 몸이 님재 업다 <박통사신석언해(1765년)>
져믄이그 지어미와식을 잇글고 안고 흐텨져 다른 듸로 가고 <윤음(1783년)>
그 지어미화치 못고 그 지아비공경치 아니며 <경신록언석(1796년)>
제가지 안지아비가 어잇겟서요. <무정(1917년)>
다온 풍속에 한 지아비가 한 지어미를 거나리규모도 본밧지 못고 <설중매(1908년)>

  그래서 19세기말까지 ‘짓아비’와 ‘지아비’ 그리고 ‘짓어미’와 ‘지어미’가 공존하였다. 그러다가 20세기에 와서 ‘짓아비’와 ‘짓어미’가 완전히 사라지고 오늘날의 ‘지아비’와 ‘지어미’만 남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집사람’이란 말은 왜 지금도 ‘지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집사람’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집사람’이란 말은 ‘집아비’나 ‘집어미’보다 후대에 발달한 것이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집’의 속격형이 ‘짓’일 때에는 ‘집사람’이란 말이 없었기 때문에 ‘사이시옷의 탈락’이란 규칙이 적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집사람’이란 단어는 ‘가인(家人)’의 번역어로 보이는데, 16세기부터 등장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남편이 자신의 아내를 일컫는 말’이 된 것은 후대의 일이다. 원래는 ‘집안 사람’이란 뜻이었다.

家訓 집사 친 글월이라 <소학언해(1586년)>
家訓 집사 글이라 <소학언해(1586년)>
웃 관원 셤김을 兄 셤기 며 동관 향야 홈을 집사 며 모아젼졉홈을 죵며<소학언해(1586년)>
삼가 禮法을 딕킈여子弟와 믿 집사 거느릴디니 <소학언해(1586년)>

  그런데 왜 오늘날 ‘지아비’와 ‘지어미’는 ‘남편’과 ‘아내’를 낮추어 부르는 말로 변화하였을까? 그것은 ‘아비’와 ‘어미’의 의미 변화 때문이다. 원래 ‘아비’와 ‘어미’는 평칭이었으나 ‘아비’와 ‘어미’가 ‘애비’와 ‘에미’로 음운변화를 일으키면서 낮춤말로 변하였다. 그래서 ‘지아비’와 ‘지어미’도 같이 웃사람 앞에서 자신의 남편과 아내를 낮추어 부르는 말로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겨집’이 원래는 낮추는 말이 아니었는데, 이것이 ‘계집’이 되면서 낮추는 말로 된 것과 동일하다. ‘지아비’와 ‘지어미’ 중에서 특히 ‘지어미’는 그러한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지아비’와 대응하는 단어들에 변화가 보여서 그렇게 추정할 수 있다.
  처음에는 ‘지아비’에 대응하는 단어는 ‘지어미’였었으나 점차로 ‘겨집’이나 ‘계집’과 대응하다가 ‘안’로 바뀌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관용적인 표현에만 사용하고 ‘지아비’와 ‘지어미’란 단어는 입말에서는 사라질 운명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어미 공경그 지아비셤기며 지아비 和동므로그 지어미 야 夫婦ㅣ 서和동며 공敬면 <여훈언해(1658년)>
분덕이 닐오지아비과 겨집이 비록 듕나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
지아비모로미 계집을 권념고 계집은 모로미 지아비슌죵야 <1658경민해,002b>
지금 세샹에야 지아비라도 안유를지 못닛가 <무정(1917년)>

  결국 ‘지아비’와 ‘지어미’는 ‘집의 아비’ ‘집의 어미’란 뜻이어서 ‘집아비’ ‘집어미’였는데, 이 ‘집’의 속격형 ‘짒’에서 ‘ㅂ’이 탈락하여 ‘짓’이 되어 ‘짓아비’와 ‘짓어미’가 되고, 16세기에 사이시옷이 탈락하기 시작하면서 ‘짓’이 ‘지’로 변화하면서 ‘지아비’와 ‘지어미’가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그 ‘집’의 의미를 알아볼 수 없는 ‘지’가 됨으로써 그 의미를 찾을 수 없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