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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윤디자인연구소 디자인실장)
   세계는 컴퓨터와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정보화 사회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런 정보화 사회로의 변화는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의 하나인 글자, 즉 활자체 디자인의 환경을 변화시켰다.
   1990년대 이후 국내에서도 컴퓨터 산업이 발달하면서 고밀도의 도트, 고해상도의 레이저 프린터 출력기, 탁상용 출판 시스템(DTP:desk top publishing), 전산조판시스템 등이 개발되고 전자 출판 분야가 매우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다.
   글꼴의 모양은 그것을 표현하는 도구와 매체에 따라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붓의 문화에서 비롯된 명조체의 견고한 조형적 위치는 아직까지도 절대적이다. 컴퓨터라는 글꼴의 표현매체가 등장하면서 한글에서도 “글꼴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디자이너들에 의해 새로운 조형미를 가진 한글 글꼴들이 연구, 개발되기 시작했다. 1989년 윤체를 필두로 머리정체, 아이리스, 솔잎체 등 전에 없던 한글 글꼴의 조형적 변화는 한글 글꼴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며 혁명적인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 윤디자인을 비롯한 몇몇 전문 회사들이 생겨나면서 기존의 활자들을 디지털로 제작하였고 이때 만들어진 수많은 한글 글꼴들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서서히 네모 틀을 벗어난 새로운 개념의 한글 글꼴을 모색하는 단계에 접어들면서 한글 글꼴은 굉장히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전자 출판 쪽으로만 한정되었던 글꼴 환경이 웹이나 모바일 글꼴 디자인 쪽으로도 점차 확대되면서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웹 글꼴의 대표격인 싸이 월드를 얘기할 수 있겠는데, 출판·편집 쪽 글꼴이 온전히 디자이너들을 위한 글꼴라면 웹 글꼴의 경우에는 개개인들이 소유하고 다루는 개념으로 전개되었다. 디자이너에서 개개인으로 사용자가 크게 이동함으로 인해 제작되는 글꼴들 또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크게 이동하게 되었다. 웹을 통해 미니 홈피나 블로그 등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글꼴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개개인들이 선호하는 글꼴을 구매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유행이라는 것이 형성되면 글꼴 제작 방향마저도 매출이 잘되는 쪽으로 맞춰지게 된다. ‘알아보기 쉬워야 한다’는 기본 전제마저 무시되고 특정 이미지나 상징적인 의미의 아이콘 등을 폰트에 넣어 표현하게 되었다. ㅇ꼴에 하트, 별 등을 넣는다든지, 아래 줄 맞춤한 민글자의 위쪽 공간에 특정 캐릭터나 이미지를 넣어 강력한 성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러한 웹 글꼴의 바람이 지금은 점차 모바일 환경으로도 옮겨지고 있는 추세다. 애니콜랜드를 시작으로 글꼴 다운로드 서비스가 시작되었고, SK폰트 친구와 KTF폰트 문자서비스로 시장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글꼴의 제작 기간 또한 짧아지고 빨라지는 추세다.
   최근 글꼴은 기능으로서가 아니라 패션으로서의 성향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아날로그적 느낌의 손 글씨체가 큰 대세를 이루고, 폰트 디자이너를 지망하는 경우에도 손 글씨 위주의 가벼운 개념으로만 글꼴을 보는 경향이 있어 선배 디자이너로서 가끔은 우려된다. 이러한 시장이 형성되면서 좋아하는 스타의 손 글씨 또한 글꼴로 바뀌어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캘리그라피 스타일의 글꼴이 일부 광고, 영화포스터 등에 사용되면서 캘리그라피 글꼴이 새로운 시장의 코드로 부상하고 있다. 글꼴 디자인의 기본이 되는 정사각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들이 스크립트 글꼴 시장을 형성하였고, 스크립트보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캘리그라피 시장으로 방향을 틀어가고 있다. 디지털 글꼴이 많아질수록 디지털에서 벗어나 캘리그라피나, 스크립트 글꼴(손 글씨, 붓글씨, 전각 등)이 개발되는 것이 메마른 정서에서 벗어나 인간적 감성을 추구하는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도 해당 단체만이 가진 고유 이미지를 부여하고자 전용 글꼴을 제작, 보유하는 추세이다. 기업 전용 글꼴은 기업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 뿐 아니라 미래의 비전까지 제시하여야 한다. 또한 해당 단체의 이미지와의 전체적인 통일성을 고려하는 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연세대학교 전용 글꼴은 국내 최초로 교육기관에서 제작한 글꼴이다. 연세대의 상징인 독수리의 부리에서 느껴지는 날렵함을 표현하려고 세리프 스타일로 제작하였고 연세대학교가 가지고 있는 대중적 이미지인 모던함과 샤프함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렇듯 전용 글꼴에 대한 단체들의 호감도가 높아지고 개발 사례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글꼴 시장의 변화를 살펴보면 글꼴 디자이너로서 많은 생각을 갖게 된다. 글꼴 개발 사업의 특성상 지나치게 짧은 개발 주기는 글꼴의 완성도를 떨어뜨릴 수 있기에 제작자로서 늘 경계하고 있다. 개인적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한 글꼴 시장의 급성장은 물론 중요하게 인식해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글꼴 개발은 디자이너의 창조성을 자극하는 짜릿한 과제이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개성을 강조하다 보면 한글이 문자로서 가지는 의미와 고유의 조형적 가치들이 손상될 수도 있기에 디자이너로서 책임감도 강하게 느끼게 된다. 앞으로 또 어떤 환경적인 변화를 겪을지는 알 수 없지만 기본에 충실하고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우리 글꼴을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