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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의왕초등학교 교사)
   첫 시간 옛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 이야기에 푹 빠져서 듣는다. 둘째 시간 수학 공부를 하는데 다 열심이다. 셋째 시간 도구 쓰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손빨래는 세탁기가, 부채는 선풍기가, 집전화는 000으로.
   “집전화는 뭐로 바뀌었을까?”
   “휴대폰요.”
   “그래. 손전화로 바꿨지. 집전화는 줄로 되어 있어 밖에서는 전화를 할 수 없으니.”
   내 손전화를 들고 보여준다.
   “손전화로 뭘 할 수 있을까?”
   “문자도 보내요.”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한 말.
   “지금 수업 열심히 듣는 사람 부모님께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다고 문자 보내야지. ‘참 모둠’(1분단)을 보자. 오늘 형주가 참 열심이네. 형주, 아버지에게 문자 보낼까? 어머니에게 보낼까?”
   보통 때와 다르게 오늘 참 바르게 잘 앉아서 공부한다.
   “음, 아빠요.”
   형주 말대로 아버지에게 문자를 쓴다.

   

   “‘사랑 모둠’(2분단) 볼까? 누구에게 칭찬 문자를 보낼까?”
   그런데 뽑기가 힘들다.
   “사랑 모둠은 다 잘 하고 있어 정하기 어렵네. 우리 가위바위보로 하자.”
   배가 아파서 아침부터 힘들어하던 우리 반 개구쟁이 민혁이가 뽑혔다. 1등을 하자 좋아 웃는 모습을 보니 조금 나아진 것 같다.
   “‘땀 모둠’(3분단)은 누구를 칭찬하지?”
   “현진이요.”
   누가 현진이를 부른다. 현진이. 자기 할 일을 참 잘 하지. 자기 할 일을 잘 하는 것은 1학년 아이들 눈에도 보이는가 보다.
   “그래. 현진이로 하자.”
   이렇게 셋(우리 반은 세 분단)에게 문자를 보내려다가 한 사람만 더 뽑기로 하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바른 자세로 앉아있는 홍규로 한다. 홍규 부모님 전화번호를 찾는데 내 전화기에 저장이 되어 있지 않다. 홍규에게 전화번호를 넣으라고 내 손전화를 주는데 못 넣는다. 기억이 안 난다고. 못 보내도 괜찮다며 웃는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
   “자, 그럼 보낸다.”
   형주, 민혁, 현진이 부모님께 문자를 보낸다.
   “우리도 해 주세요.”
   아이들이 자기들도 해 달라고 난리다. 별 것도 아닌데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래. 오늘 너희들이 모두 다 잘 했으니 다 보낼까?”
   하나하나 다 보낼 수 없으니 인터넷을 이용한다. 인터넷으로 칭찬 문자를 쓰고, 9기 학부모를 한꺼번에 선택한 뒤, 조금 전에 보낸 사랑이는 뺀다.
   “자, 그럼 이제 됐는데 아 왜 괜스레 보내기 싫지? 돈도 아깝고.”
   “돈이 들어요?”
   “그럼 돈이 많이 들지. 그래도 보내야하나?”
   “그래도 보내주세요.”
   “그래? 그럼 조금 더 10분만 너희들 공부하는 것 지켜보고 보내자.”
   슬기로운 생활로 가위와 풀 쓰는 법을 익히는 시간이다. 색종이를 오리고 잘라 종합장에 붙인다.
   “종이가 바닥에 떨어진 것 없어야 문자 보낼 수 있다.”
   좀 치사하지만 효과는 좋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정리도 끝났다.
   “이제 그럼 문자 보내고 나들이 나가자.”
   “와. 좋아요. 지금 보내세요.”
   “그런데 바로 보내기가 안 되고, 내가 숫자 셀 테니까 너희들은 힘을 넣어줘. 5, 4.”
   “3, 2, 1, 와!” 교실이 떠나게 손을 흔들며 목을 높인다.
   “아, 웃는 얼굴을 한 사람이 적어서 못 보내겠는 걸.”
   “와!” 더 환하게 웃으며 신나 한다.
   “너무 예쁘다. 이거 사진 한 장 찍고 보내자.”
   “와!”
   “이제 보낸다. 5, 4, 3, 2, 1 보냄.”
   “와! 정말 보냈어요?”
   “그럼 보냈지.”
   “와!”
   “집에 가서 이렇게 하면 더 좋겠다. 부모님께 문자 이야기를 말하지 않고 모른 척 하는 거야. 그럼 어머니가 문자 이야기 하겠지? 그러면 그때 수업을 너무 잘 해 칭찬 받았다고 하는 거지.”
   “네. 그거 좋아요.”
   “그리고 나 혼자만 칭찬 받았다고 해. 그러면 더 좋아하실 것 아냐?”
   “그래도 다 받았으니 알지 않을까요?”
   “그럼 이렇게 말씀드려. ‘엄마, 나 혼자 문자 받았는데 이거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면 다른 동무들에게 미안하니까 나 혼자 문자 받은 거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고 비밀로 하자.’ 이렇게 말하는 거지. 어때?”
   “네. 그거 좋아요.”
   “그럼 오늘 집에 가서 칭찬 받아.”
   “네!”
   교실 밖으로 나들이를 다녀오니 손전화에 답장이 많이 와 있다.

   문자를 보고나니 마음이 조금 뒤숭숭하다. 하나하나 칭찬한 것이 아니라서. 다 같이 칭찬한 것이. 모두가 잘 했기에 칭찬한 것이지만 마음이 그렇다 하더라도. 혹시 한꺼번에 보낸 것을 부모님들이 알았을 때 이런 감동이 식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 보통 때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작은 칭찬이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에르네스토(게베라)는 직접적인 치료보다도 따뜻한 말 한마디로 환자들에게 위안을 줄 줄 알았다.’ 『체 게베라』(실천문학사), 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