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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순(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1) 오대(五代)나 나린다는 크나큰 집 다 찌그러진 들지고방 어득시근한 구석에서 쌀독과 말쿠지와 숫돌과 신뚝과 그리고 녯적과 또 열두 데석님과 친하니 살으면서
(2) 한 해에 멫 번 매연 지난 먼 조상들의 최방등 제사에는 컴컴한 고방 구석을 나와서 대멀머리에 외얏맹건을 지르터맨 늙은 제관의 손에 정갈히 몸을 씻고 교우 우에 모신 신주 앞에 환한 촛불 밑에 피나무 소담한 제상 위에 떡 보탕 식혜 산적 나물지짐 반봉 과일 들을 공손하니 받들고 먼 후손들의 공경스러운 절과 잔을 굽어보고 또 애끊는 통곡과 축을 귀에 하고 그리고 합문 뒤에는 흠향 오는 구신들과 호호히 접하는 것
(3) 구신과 사람과 넋과 목숨과 있는 것과 없는 것과 한 줌 흙과 한 점 살과 먼 녯조상과 먼 훗자손의 거륵한 아득한 슬픔을 담는 것
(4) 내 손자의 손자와 손자와 나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 수원백씨(水原白氏) 정주백촌(定州白村))의 힘세고 꿋꿋하나 어질고 정 많은 호랑이 같은 곰 같은 소 같은 피의 비 같은 밤 같은 달 같은 슬픔을 담는 것 아 슬픔을 담는 것
「목구(木具)」, 『文章』 2권 2호, 1940. 2.


   백석(1912~1995)의 시 「목구(木具)」는 추석 명절을 쇠면서 다시 한번 음미하고 싶은 시이다. 명절날에는 으레 가족들이 모여 제사나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오고 동네 어른들께 인사를 다니고 밖에 나가 놀거나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곤 하였다. 현대화, 핵가족화가 되면서 겉으로 사라진 듯한 이런 명절 풍속이지만 전 국민의 추석 명절 이동 현상을 보면 이런 풍속이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 제목 ‘목구(木具)’는 ‘목기(木器)’의 평북 방언(표준국어대사전)으로 나무 제기(祭器)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느끼는 놀라운 점은 첫째로, 나무 제기가 시의 소재로 등장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둘째로, 시 전체가 제사 그릇을 정의하는 세 마디의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제기를 정의한 세 마디 문장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연을 보면 시인의 집에서 목구를 두는 장소는 오대나 된 집의 들지고방(들쥐가 드나들 정도로 허름한 고방이라는 뜻, [정본백석시집])이다. 고방에서도 목구는 쌀독, 말쿠지(물건을 걸어 두기 위해 갈래진 나뭇가지를 끈으로 달아맨 것), 숫돌, 신뚝(방이나 마루 앞에 신발을 올리도록 놓아 둔 돌)과 같은 물건 옆에 놓여 있다. 오래된 목구라서 옛적의 기운이 담겨진 채 열두 제석님(집안사람들의 수명, 곡물, 의류 및 화복에 관한 일을 맡아본다고 한다[표준국어대사전])과 친하게 살고 있다고 하였다. 2연은 제기를 중심으로 한 제사 과정이 잘 나타난다. 일년에 몇 번 매년 지내는 최방등 제사(평북 정주 지방의 전통적인 제사 풍속으로 5대째부터 차손[次孫]이 제사를 지내는 것)에서 제기는 늙은 제관의 손에 정갈히 씻겨진다. 늙은 제관에 대한 묘사는 종묘에서 제사 지내는 제관들을 연상시키는데, 그 특징은 “대멀머리(대머리)에 외얏맹건(망건을 잘 눌러쓴 모양이 오앳꽃 같이 단정하게 보인다는 데서 온 말)을 지르터맸다(망건 따위를 쓸 때에 뒤통수 쪽을 세게 눌러서 망건 편자를 졸라맸다)”. 제기를 중심으로 제사상의 격식 대로 늘어놓은 모습을 방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사 음식은 떡, 보탕(제기에 담긴 탕), 식혜, 산적, 나물지짐, 반봉(제물로 쓰는 생선 종류의 통칭), 과일이다. 제사를 지내는 과정은 후손들이 공경하면서 절을 하고 잔을 올리거나 애끓는 통곡을 하거나 축문을 읊으면 제기는 굽어보고, 귀에 하고(귀로 듣고), 합문(闔門, 제사 절차 중 하나로 밥그릇의 뚜껑을 열고 젯메에 숟가락을 꽂은 다음 망자의 혼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문을 닫거나 병풍을 치고 밖으로 나와 몇 분 정도 기다리는 것) 뒤에 흠향(신명이 제물을 받아서 먹는 것) 오는 귀신들과 호호히(넓고 깨끗하고 맑게) 접하는 그것까지가 제기가 맡은 제사의 절차이다.
   3연에서 제기는 조상과 자손을 연결시켜 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제사를 통하여 없는 조상과 살아있는 후손의 간격이 사라진다. 기본적인 조상과 후손의 대립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4연에서 “내 손자의 손자와 손자와 나와”를 보면 나와 손자와의 사이가 3대이니까 9대 후손까지 연결됨을 알 수 있다. “나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의 구절에서는 나와 할아버지가 3대이니까 계산해 보면 18대 조상까지 뻗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를 중심으로 하여 9대 후손과 18대 조상까지 연결시켜 주는 제기의 보이고도 보이지 않는 영적 친화력이 표현되고 있다.
   이 시에서 말하는 시인은 수원 백씨이고 정주 백촌(평안도 정주에 사는 백씨 마을) 사람이다. 수원 백씨와 정주 백촌은 오랫동안 같은 제기로 제사 지내면서 동질적인 종족의 혈통을 면면히 이어왔다. 말하자면 힘세고 꿋꿋한 외양에 마음은 어질고 정이 많다 등이다. 그 백씨 씨족사회 집단의 상징물은 두 가지로 비유된다. 짐승(호랑이, 곰, 소)의 토템과 자연 현상(피의 비, 밤, 달)의 토템이다. 이런 토템과 제사 풍습과 오래 묵은 제기의 일상은 바로 다름 아닌 우리 민족의 풍습과 합치한다.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누가 말했든가. 수원 백씨 집안의 제사 풍습이 바로 한국적인 문화유산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는 범 인류적인 집단무의식의 ‘피의 비’로 쏱아져 흐름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