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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도쉬(키르기스스탄/ 서울대 국어교육과 대학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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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이 말을 듣고 놀라셨던 우리 어머니도 웃기시고 서투른 러시아어로 자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려고 하신 목사님도 웃기십니다. 그 후로 7년이 흐른 지금 나는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2000년도에 어떤 한국인 목사님이 우리 동네에 교회를 개척하여 선교 활동을 하고 계셨습니다. 우리 식구들도 그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주로 키르기스어를 쓰는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지만 목사님의 한국말 설교를 키르기스말로 통역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고려인인 박 선생님이 먼저 한국말을 러시아말로 통역하시고 그 다음에 타마라 누나가 키르기스말로 통역했었습니다. 나는 그 당시 수학-컴퓨터 학과를 다니고 있었고 시간 날 때마다 영어도 배우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가게 된 것도 영어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 캐나다 사람들이 자주 왔었습니다. 나는 교회에 가서 그 사람들하고 영어 말하기 연습을 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영어를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셨습니다. 혼자서 배우고 있다고 그랬더니 한국말 좀 배워 보겠냐고 뜻밖의 제안을 하셨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었던 나는 어머니하고 상의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바로 그 후 모두를 놀라게 한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나를 도와 주고 싶었던 목사님은 그날 우리 어머니를 불러서 “당신의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하셨답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종교들 중에 아이를 신에게 제물로 바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우리 어머니는 그런 뜻인 줄 알고 그날 이후 당신도 교회에 안 나가시고 우리도 못 나가게 하셨습니다. 교회를 못 나가게 된 얼마 뒤 한국인 목사님하고 전도사님 그리고 고려인 통역인 박선생님이 우리 집에 오셨습니다. 왜 교회에 안 나오느냐는 목사님의 질문에 우리 어머니는 당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털어놓았습니다. 통역을 통해서 목사님의 생각의 참뜻을 알게 된 우리는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어느덧 7년이 되었습니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한국어. 한국어를 배우기 전에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겨우 남한의 수도는 서울, 북한의 수도는 평양, ‘Goldstar’라는 티브이, 비디오와 비디오테이프를 만드는 나라라는 것뿐이었습니다.
한국 사람과 접하게 된 것도 한국 선교사님이 개척하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입니다. 물론 그때까지 고려인들을 많이 보았지만 그 사람들은 키르기스스탄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살았기 때문에 외국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말도 다르고 옷 입는 것도 다르고 키르기스말이나 러시아어로 이야기할 때, 어린 아이처럼 더듬거려서 웃기면서도 신기했습니다.
그 해 우리 교회에서 통역을 담당하셨던 고려인 박 선생님에게 한국어 기초를 배우다가 한국인 목사님에게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어를 배울 때 목사님 댁에 자주 놀러 가게 되었습니다. 어떨 때는 식사 시간에도 가게 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목사님이 “밤 무운나?”라고 물어보십니다. 서양사람들은 손님에게 밥을 먹었냐고 물어봐서 먹었다고 하면 다른 방으로 안내해 주고 식사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목사님은 한번 물어보시고 먹었다고 하든 아니라고 하든 의자를 가지고 앉으라고 그러시고 사모님보고 “밥 주이소”라고 하십니다. 한국 사람들의 이런 점은 키르기스 사람들하고 비슷합니다. 아무래도 같은 동양사람이라 그럴 것입니다. 동양에선 밥을 먹었는지 여부를 물어볼 때 안 먹었어도 예의상 먹었다고 대답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가 갈 때마다 목사님 댁에서 빵을 안 먹고 하얀 밥을 먹는 것이 처음엔 좀 이상했습니다. 아무튼 그때부터 목사님에게서 키르기스스탄과 한국의 비슷한 것과 서로 다른 것을 하나하나씩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가장 신기했던 것은 한국 사람들이 작은 일에 대해 쉽게 화를 내고 서로 싸우고는 금방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는 것입니다. 목사님도 가끔은 내가 실수를 했을 경우 불같이 화를 내십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변명을 하려고 하면 “너랑 일 못하겠다. 그만 나가라”고 더 화를 내십니다. 지금은 그 이유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잘못을 하면 어른들 앞에서 무조건 “잘못했습니다”하고 이유를 물어볼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기다려야 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년 전에 한국에 와서 한국사람들하고 공부도 같이 하고 놀러도 같이 다녀서 한국문화를 좀 더 잘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세월이 참 빠릅니다. 이제 저도 슬슬 집에 갈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한국에서 보낸 즐거운 시간들과 같이 지냈던 친구들을 평생 못 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말을 더 잘하게끔 도와주신 선생님들도 그리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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