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어 누워서
어늬 아츰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醫員)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녯적 어늬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드니
문득 물어 고향(故鄕)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故鄕)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씰(氏) 아느냐 한즉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醫員)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故鄕)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故鄕’, <삼천리문학> 2집, 19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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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白石, 1912~1995)의 시 '고향'은 백석 특유의 서술시로 어느 날 아침 의원을 만나 그와 나눈 대화를 시간의 흐름으로 기술하면서도 고향처럼 푸근하고 따스한 의원의 이미지를 비유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말하는 이가 의원을 찾은 이유는 낯선 타향에서 혼자 앓아눕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하는 이가 만난 의원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일뿐만 아니라 타향에서 외로워하는 환자의 심리를 잘 다스려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원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다. 의원의 모습은 인상과 수염과 손놀림, 웃음, 말씀 등으로 묘사된다.
특히 3~4행에서는 의원(醫員)의 모습을 세 가지 비유를 동시에 사용하여 생생하게 그려냈다. 첫 번째로 의원은 ‘여래(如來)’와 같은 상을 하고 있다. 여래란 알다시피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부처는 불교가 중심적으로 말하는 자비를 나타내는 이미지로서 모든 불쌍한 중생을 구제하려는 온화하고 따뜻한 모습을 띠고 있다. 이것이 부처의 모습에서 여성과 남성의 이미지가 겹쳐보이는 이유다.
의원의 두 번째 비유는 ‘관공(關公)’이다. 관공은 ‘관우(關羽)’의 다른 명칭인데 긴 수염을 휘날리며 전쟁터에서 싸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관우는 의리와 충의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세 번째 의원의 비유는 신선(神仙)의 이미지이다. 신선은 도(道)를 닦아서 현실의 인간 세계를 떠나 자연과 벗하며 산다는 상상 속의 사람이다. 흔히 현실을 벗어나 세속적인 상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인물을 가리킨다. 말하는 이가 객지에서 병을 앓으며 찾아간 의원은 이처럼 여래의 자비로운 상과 관공의 의리가 있고 충의로운 이미지와 속세를 떠난 신선의 모습을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의원은 문득 말하는 이에게 고향을 묻고, 내 고향 사람을 아느냐고 묻고, 그 고향 사람과 친구임을 알려주기까지 하면서 화자가 앓고 있는 병과 무관한 별도의 대화를 통해 친밀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화자는 아버지처럼 모시는 고향의 어른과 의원이 막역지간(莫逆之間, 허물이 없는 아주 친한 사이)이라는 말을 듣자 의원에게서 아버지를 뵌 것 같은 안도감을 느낀다.
이런 대화뿐만 아니라 의원은 자신의 수염을 쓸어 보거나, 넌지시 웃거나,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말없이 한참 맥을 짚어 보는 등의 행동을 통하여 감성적으로 따뜻한 교류를 갖게 한다.
앞에서 의원의 모습이 여래, 관공, 신선에 비유될 만큼 최상의 의원의 이미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진료를 통한 병의 치료는 물론이고 친밀감을 불러일으키는 대화와 행동으로 감성적 치료까지 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 의원의 모습에서 말하는 이는 고향이 주는 최상의 훈훈한 이미지를 느끼는 것이다.
우리에게 무엇이 고향인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고향이라고 할 만한 이미지들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백석의 시에서처럼 어릴 때 함께 살던 아버지를 중심으로 하는 대가족의 모습도 사라져 가고 제사나 명절날을 통한 친척과의 모임도 사라져 가고 동네 어른들이나 고향을 빛낸 어른과의 교류도 사라져가는 형편이다. 그러면 변모된 오늘날에 맞는 새로운 고향의 이미지는 어디서 누가 만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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