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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성(이리마한초등학교 교사)

  “선생님!(짝짝) 재밌는(짝짝) 이야기(짝짝) 들려~ 주세요. 예~?”

  우리 반 아침 활동 시간에 들을 수 있는 소리이다. 아이들은 일주일에 두세 번, 아침시간 혹은 수업 자투리 시간에 옛이야기나 동화 등을 들려주는 시간을 가장 기다린다. 옛이야기 ‘똥구멍으로 나팔 부는 호랑이’는 일년 동안 두세 번 우려먹어도 좋아들 한다.

  올해 9월로 아이들을 가르친 지 꼭 11년이 되었다. 지난 11년을 돌아보자면, 첫 3년은 아옹다옹 아이들과 어떻게 어울릴까 고민하고, 다음 3년은 학교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다음 3년은 교과지도와 학교 행정업무, 그 풀리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 속에서 고민했던 터이다. 다행히도 이후로 지금까지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국어 과목을 잘 가르쳐 보고자 이런 저런 고심을 하느라 이전 고민들은 모두 희석된 듯하다.
  국어 시간. 주당 6~7시간이나 수업을 하면서도 말 그대로 지루하게 읽고 쓰기만 반복하는 시간.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싫어하는 과목 1~2위 안에 국어를 들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웠다. 어떻게 하면 국어 시간을 신나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하던 차에 이런 저런 연수와 자료를 통해 놀이를 활용하는 국어 수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거창하게 ‘학습자 활동 중심 국어 교육’과 같은 말을 굳이 들이대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는 일단 ‘놀자’고 하면 그야말로 교실은 축제 분위기가 된다.
  처음에 시도한 것은 이야기 들려주기. 아이들이 읽고 있는 책에서 골라 읽어주기도 하고, 옛이야기의 경우는 내가 여러 번 읽어본 후에 아이들에게 입말로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읽어주는 이야기보다는 들려주는 이야기에 더 매료된 듯했다. 실제로 한 아이는 내가 들려준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선생님인 양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도 들려주었다 한다. 이렇게 들려주거나 읽어준 이야기를 가지고 국어시간에 뒷이야기 꾸미기, 역할 놀이로 확대시켰을 때 교과서의 지문만 활용할 때보다 훨씬 더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나 자신이 먼저 즐겁고 신나서 아이들과 함께 가면을 쓰고 할머니나 책돌이 역할을 했을 정도이니…….
  그리고 동기유발로 활용한 여러 가지 보물찾기 놀이, 호기심 상자, 역할 놀이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반에서 하는 역할 놀이는, 교과서에 나온 대로 정해진 대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과는 다르다. 국어 시간 외에도 바른생활이나 슬기로운 생활 시간에도 상황이 주어지고, 역할을 나누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책으로만 읽고 배우는 것보다 훨씬 실감나게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본다.
  그 외에도 모둠으로 나뉘어 앉은 아이들이 모둠별로 대항하여 낱말 맞추기, 속담 알아맞히기, 릴레이 글쓰기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때는 서로 다른 모둠에게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전날 미리 교과서와 관련된 낱말이나 글을 찾아 읽어오기도 하는 치밀함(?)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런데, 항상 떠들썩하게 이야기, 게임, 놀이 등을 하면서 국어수업을 마치고 나면 어딘지 개운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은 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말 그대로 ‘놀기’만 했을까, 놀면서 ‘배우기’도 했을까 하는 점이다. 하지만 어떠랴. 놀기만 했든, 배우기도 했든 아이들은 지금도 저렇게 재잘재잘 국어 시간이 제일 재미있다고 떠드는 것을……. 내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자 결심한 것도 다 어릴 적 1학년 때 우리 선생님의 국어 시간 덕분 아니던가! 동화책을 사보기가 쉽지 않았던 시골 학교에서 선생님은 국어 시간마다 그림 동화를 읽어주시고, 배경을 그린 조그만 상자 안에서 인형을 움직이며 이야기를 들려 주시기도 했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후에,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간추려 말한 나에게 뽀뽀를 해주시고 “너는 국어 박사가 될 거야!”라고 하신 분도 그분이다. 지금도 나를 안고 말씀해 주시던 그분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지금 나는 아이들 앞에 서 있다. 그때의 나와 비슷한 또래의 이 아이들 앞에…….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함께 놀면서 이 아이들에게 신나는 국어 시간이 되도록. 훗날 이들 중에 신나는 국어 시간을 기억하는 아이도 하나쯤 있기를 소망하며 나는 지금 여기 서 있다.

※ 책돌이 : ‘책돌이’는 우리 반에서 역할놀이를 할 때 극본의 해설 부분을 맡아 말해 주는 역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