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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순(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아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학풍(學風)」창간호, 19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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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1912~1995)의 시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은 제목 자체가 ‘낯설게 하기’의 대표적인 예로 보인다. 이 제목을 모두 붙여서 쓰면 더욱 낯선 말이 된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지명을 가리키는 시(市), 동(洞), 방(方?, 坊: 조선 시대에,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면(面)을 이르던 말)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즉 자신이 현재 머물고 있는 곳의 주소를 시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시를 다 읽고 보면 주소가 없어진 사람이 남의 주소를 시 제목으로 사용한다는 것도 반어적으로 느껴진다.
이 시는 인생에서 좌절을 당한 사람의 고통스러운 모습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말하는 이는 어느 사이에 아내도 없고, 아내와 살던 집도 없어졌다고 했다. 그것을 요즘 말로 하면 별거 혹은 이혼이다. 인생에서 이보다 큰 사건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말하는 이(시인 자신인 듯)는 추운 겨울 목수네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방은 헌 삿(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을 깐 방으로 ‘달옹배기(아주 작은 자배기)에 북덕불(짚북더기를 태운 불)’ 하나를 구체적인 난방 시설로 그리고 있다. 게다가 말하는 이는 “낮이나 밤이나 나는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괴로워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비유로 나타내길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소나 양 따위의 반추 동물이 먹은 것을 되내어서 씹는 일)하는 것이었다.”라고 표현한다. 이것을 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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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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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
먹은 음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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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삶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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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삶을 |
새김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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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김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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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로 쓰거나, 눕거나, 구르면서 생각하다 |
구체적으로 새김질하는 일은 말하는 이가 생각하고 반성하는 사색의 시간임을 말하고 있다. 사람이 곤경에 빠졌을 때나 인생에서 상실(잃어버림)과 좌절(기가 꺾임)을 당했을 때 흔히 남에게 조언을 구하는 방법도 있지만 자기 자신 안에 침잠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진지한 모습을 이 시에서는 보여준다. 자신이 저지른 말과 행동을 되짚어 보며 달리 보는 사람이 없어도 혼자 가슴이 꽉 막히고, 눈에 눈물이 고이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상태도 표현한다. 이렇게 ‘슬픔과 어리석음’으로 표현된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은 결국 자신에게 걸었던 기대가 어긋난 ‘슬픔’으로 표현되거나, 스스로 지각 있는 행동을 하지 못한 생각 없음, 실수, 판단 착오 등으로 보이는 정신적인 ‘어리석음’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자아에 대한 반성이 한쪽 끝에 달하면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다른 쪽 끝에서는 허연 문창이나 천정과 같은 위를 바라본다는 표현을 쓴다. 이렇게 아래쪽과 위쪽으로 두 가지 삶을 지배하는 기능을 표현하고 있다. 아래쪽은 ‘자아가 지배하는 나’가 있는 사람이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고 위쪽은 ‘더 크고 높은 내가 지배하는’ 하늘이나 운명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구체적으로 ‘자아’의 기능에서는 ‘내 뜻과 힘으로 이끌어가는 나’라는 표현을 하고 있고 ‘운명’을 말하는 기능에서는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이란 표현을 하고 있다.
이런 자신의 힘과 운명의 힘을 저울질하며 괴로워하는 가운데 소의 새김질의 비유는 앙금이 되어 가라앉는 소화 과정의 정리 단계로 들어간다. 그래서 앞에서의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방의 느낌에서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이란 표현으로 바뀌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날’ 그런 상태로 지내는 기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상태로 계속 지내면서 앞에서 말하는 이가 비유했던 소의 동물적이고 새김질하는 소화 작용의 비유는 먼 산 귀옆 바위섶(옆)에 외로이 서 있는 ‘갈매나무’라는 나무 이미지로 옮겨 간다. 나의 고난을 헤쳐 가는 방법과 갈매나무가 한겨울의 추위를 헤쳐 가는 방법이 겹쳐지면서 새로운 비유의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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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나무가 |
상실과 좌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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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눈을 맞으며(추위를 견디며) 마른 잎새로 |
이겨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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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랑쌀랑 소리도 내며 굳고 정한 자세로 서 있다 |
이 시에서 시인은 개인의 좌절과 시련을 한 지식인이 어떻게 견디고 이겨나가는가 하는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고 있다.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좌절이나 상실을 겪게 되면 술을 마시거나 물건을 부수거나 자신과 남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으로 괴로움을 표현하는데 이 시에서는 조용히 혼자 어떤 장소에 들어가 내면의 추위와 계절의 추위를 묵묵히 겪어 나가면서 내적인 힘을 회복하고 있다. 소의 되새김이란 비유를 통해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정신력으로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에서 ‘분리-고통-재생’의 과정을 거치는 통과의례(the rites of initiation)의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생에서는 여러 번의 통과의례를 거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중 한 과정을 거치는 모습이 시 속에 녹아 있다. 단계별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1. 분리: 아내도, 아내와 살던 집도 없어지다
2. 고통 및 죽음: 헌 삿을 깐 겨울 집, 혼자 지냄
3. 재생: 앙금이 가라앉고, 갈매나무의 상태를 지향함
남에게 자신의 괴로움을 호소하기보다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내면의 힘과 운명의 힘을 저울질하고 있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은 소의 새김질 기능에서와 갈매나무가 눈 오는 시련의 겨울을 쌀랑쌀랑 소리도 내며 여유 있게 견뎌 나가는 굳고 정한 자세에서 찾고 있음이 인상적이다. 시인은 결국 자신이 고통과 좌절을 통해 자신이 설 자리를 선택하고 있는데 바로 눈 오는 겨울을 나는 갈매나무의 범접하기 어려운 자세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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