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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연(생각쟁이 편집부장)
‘세대공감 올드앤뉴’라는 TV 프로그램을 아세요? 이 프로그램에는 ‘세대별 찾는 말’, ‘청소년 70%가 모르는 어른들의 말’, ‘10대들에게 물었습니다’ 등의 코너가 있지요.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랍고 신기해하죠.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세대별로 우리말에 대한 지식에 큰 차이가 난다는 걸, 새삼 발견한 탓이겠죠.
물론 이러한 우리말 사용에 대한 세대 간의 격차가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는 아니죠. 하지만 나와 다른 세대가 쓰는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알려는 노력은 꼭 필요합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요.
내 경우는 직업상 그러한 ‘세대공감’을 위한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나는 어린이잡지에서 일하고 있어요. 주로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의 어린이들이 보는 잡지죠. 하지만 실제 독자층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생까지 꽤 넓은 편이에요.
어린이잡지에서 일하는 것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어요. 그 중 한 가지가 소비자, 즉 독자로부터의 피드백이 아주 빠르다는 점이죠. 새로 만든 고정 꼭지, 화제가 되는 인물 기사 등을 읽고 어린이들이 저마다 느낀 점을 적어 보내옵니다.
그 글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해요. 한번은 한국은행이 오천 원 권을 새로 선보였을 때, ‘돈 특집 기사’ 한 적이 있었어요. 아이들은 ‘이달에 가장 좋았던 기사’를 쓰고 그 이유를 적는 란에, 여러 가지 재미있는 내용을 적어 보내왔어요.
그 중 우리 기자들을 웃게 만든 것은, 가장 많은 의견이기도 했는데,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돈이 좋아서’ 같은 솔직한 의사표현이었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쓰던 별전을 사진으로 보여줘서, 돈에 있는 숫자와 그림의 의미를 알게 돼서 같은 예상 답변은 사실상 별로 없었어요.
아이들은 편집부에서 한 달간 열심히 만든 잡지를 제 나름의 방식으로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에 따라 독서 수준의 차이도 큰 데다, 초등학교 저학년 독자들은 우리 잡지가 좀 어려운지 가끔 내용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있어요.
애독자 엽서에 ‘이달에 가장 좋았던 기사’를 묻는 란에 당당히 ‘이화연 기사’라고 기자의 이름을 써 보내오는 경우가 매달 오 백통 넘는 엽서 중 꼭 한두 개는 있기 마련이죠. 또, ‘생각쟁이에서 꼭 만나고 싶은 인물’이라는 질문에, 그 달에 기사로 나온 인물 이름을 곧잘 적어놓기도 해요. 정말로 ‘만나고 싶은’ 인물의 이름을 쓰는 거죠.
편집부 사람들은 그런 엽서를 볼 때마다 웃음을 터뜨리곤 하죠. 하지만 웃고만 마는 것은 아니랍니다.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어른, 잡지를 보는 사람들은 10대 어린이. 따라서 우리 기자들은 늘 아이들이 눈높이를 맞추려고 애씁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기사를 쉽고 재미있게 쓸 것인가 늘 고민하고 연구합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기사라 해도, 아이들이 읽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
우선 우리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아이들이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려고 애쓰죠. 요즘 아이들은 TV 코미디를 좋아하고, 인터넷 문화에 익숙하죠. 일부 어른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이들은 대중매체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여요.
‘마빡이’나 ‘사모님’이 뜨면 아이들 사이엔 금세 유행이 되죠. 우리는 유행어들을 알아두었다가 기사를 쓸 때 활용합니다. 어렵고 딱딱한 내용을 전달해야 할 때, 이런 유행어를 적절하게 쓰면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으니까요.
초등학생 어린이들이 쓰는 말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죠. 요즘 아이들은 줄임말을 많이 써요. 한때 대중매체에서 유행했던 ‘얼짱’, ‘얼꽝’ 등이나, ‘남친(남자친구)’, ‘여친(여자친구’, ‘쌤(선생님)’ 말은 기본이고, 끊임없이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하고는 합니다. 특히 인터넷상에서는 정도가 심하지요. 뮤직비디오는 ‘뮤비’로, 노래방은 ‘놀방’으로, 시험은 ‘셤’으로, 탕수육은 ‘탕슉’으로, 불법으로 퍼가다는 ‘불펌’으로 줄여 쓰는 경우가 다반사지요.
물론 이런 말은 표준어가 아니기 때문에 잡지에 그대로 실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런 말을 사용하는 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재미로 쓰는 것 같아요. 청소년기가 지나고 성인이 되면 아마도 사용하지 않게 되겠죠. 하지만 이런 말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초등학생과 말이 통하지 않겠어요?
이런 노력들은 모두 ‘너희들이 알고 있는 걸, 우리도 알고 있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기사란 결국, 독자가 읽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독자인 어린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런 노력들은 필수불가결한 부분입니다.
또 하나, 기사를 얼마나 쉽게 쓰는지도 중요한 대목입니다. 특히 우리는 한자어 사용을 자제하려고 애씁니다. 예를 들어 ‘표현하다’→ ‘나타내다’, ‘의미하다’→‘뜻하다’ 이렇게 바꿔 쓰는 식이죠. 어른들이 보는 글이라면 간략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한자어를 쓰는 편이 경제적이겠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한자어를 무척 어렵게 느낍니다. 물론 독서량이 많은 아이들이라면 처음 보는 한자어라고 해도, 문맥으로 그 뜻을 알아차립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독서 수준은 천차만별이므로 최대한 쉽게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러한 노력들은 처음엔 좀 힘들었습니다. 내 경우도 어른들이 보는 잡지에서 일하다가 아이들을 위해 쉬운 우리말 위주로 기사를 쓴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노력하다 보니, 그게 얼마든지 가능하더라는 겁니다.
놀라운 것은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그게 오히려 자연스럽고 편하다는 점입니다. 한자어 대신 쉬운 우리말로 풀어쓰면 문장은 좀 길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쓰는 사람도 편하고 읽는 사람도 편하다면, 그게 최고 아닐까요? 무엇보다 그러한 노력은 결국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니까요. 매달 잡지 한 권으로, 나와는 세대가 다른 초등학생 어린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내 직업이 지니는 특별한 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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