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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옥 (한국어세계화재단 강사)

"내가 아이 때, 우리 집에 이상한 꽃 많았어.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근데 꽃 냄새 안 좋아, 안 이뻐. 다른 집 꽃, 냄새도 좋아, 이뻐.
왜 우리 집 다른 집 꽃 없어? 나, 이상했어. 왜 우리 아버지 이 꽃 좋아해?
왜 아침, 점심, 저녁 꽃 봐? 이해 못해. 근데 한국 오니까 이 꽃 많았어.
깜짝 놀랐어. 나 알았어. 우리 아버지 한국 보고 싶어서 한국 꽃 심었어."

  경기도 화성 외국인 보호소 한국어 교실에서 만난 안토니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왔다. 5년 동안 청바지 공장에서 하루 12시간 일한 외국인 여성 근로자다. 그녀를 본 첫인상은 아직도 선명하다. 가냘픈 체구에 찰랑거리는 짧은 머리, 창백한 얼굴, 보호소 옷이 너무 커 동동 걷은 소매와 바지 사이로 드러난 앙상한 뼈, 무엇보다 매서운 눈매가 아직도 선명하다.
  몸은 지쳐 보였으나 매서운 눈길은 살아 있었던 안토니나. 그녀의 아버지는 고려인이었다. 한국에 와서야 아버지가 키운 꽃이 한국의 꽃, 무궁화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 했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안토니나는 서툰 한국어였지만 또박또박 아버지의 고독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말했다.
  매주 월요일 오후 2시면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서 한국어 교실이 열린다. 초급반, 중급반 모두 두 반이다. 수업은 2시간 동안 진행된다. 학습 대상자는 불법 체류자들이다. 난생 처음 보호소라는 곳에 온 날, 미로 같은 길을 들어서는데 기분이 묘했다. 더욱이 학생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철장이 닫히고 자물쇠를 잠그는데 마치 죄수가 된 듯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까 철창도 창문으로 여겨졌다.
  이곳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쉽지 않다. 보호소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 들어와서 내일 모레 나가는 사람도 있고 석 달을 대기하는 사람도 있다. 여권이 늦게 만들어지거나 체불임금을 해결하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매주 학습자들이 바뀌거나 석 달 내내 만나는 단골 학생들도 있다. 게다가 체류 기간이 한 달에서부터 8년까지 다양하다 보니 한국어 구사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특수한 환경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란 쉬운 일이 아님을 절실히 느꼈다.
  가나에서 온 여성은 석 달째 모음을 공부하고 있다. 글자를 모른다. 한글뿐만 아니라 본인 나라의 글, 영어도 말할 수는 있으나 쓸 줄 모른다. 대부분의 외국인 여성 근로자들은 의사소통은 가능하나 쓰기 실력이 부족하다. 한글을 쓸 줄 몰라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이 많다. 한국어 교육 과정 2시간. 이 시간 동안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다.
  이곳에서 한국어 수업을 한다고 하면 다들 이런 질문을 한다. “이제 한국을 떠날 사람들인데 왜 한국어를 가르치는가?”, “2시간 동안 무엇을 가르칠 건데?” 처음 질문을 받았을 때는 답변에 대한 밑천이 궁색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르쳐야 하는 이유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직접 제작한 교재를 통해서 밑천을 얻을 수 있었다. 특수한 환경이니 시중 교재로는 수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부족한 실력이나마 직접 교재를 만들었다. 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한국 사람을 만나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리고 교재가 선물이 될 수 있도록 사진도 많이 넣어 만들었다. 교재 제목은 <안녕! 한국>. 본인이 일했던 곳과 한국의 음식, 한국의 계절, 가 봤던 여행지, 한국에서 좋았던 점, 싫었던 점,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 고마운 한국 사람에게 편지 쓰기, 한국 노래 배우기 등을 담았다.
  교재를 공부해 나가면서 한국에서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모텔에서 청소했어요.’ ‘식당에서 일했어요.’, ‘여관에서 일했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가슴이 찡했다. 대부분 이런 곳에서 일하는 분들은 나이가 많은 분들이다. 하루 15시간 근무가 보통이다.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한국어를 맘 놓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있다. 5년 만에 처음, ‘이에요/예요’, ‘은/는’의 차이점을 알게 됐다는 중국인, 3년 동안 본인의 나라 인도네시아를 한글로 쓸 수 없었던 인도네시아인, 이들을 보면서 단 2시간 동안만이라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큰 기쁨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더불어 그들이 한국 땅에 흘린 노동에 대한 마지막 감사 인사라 생각했다.
  경기도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서의 한국어 교육의 효과를 묻는 분들도 있다. 학문적으로 답변을 할 수 있을 만큼 연구를 해 보지 않았고 그들과의 수업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싶지 않다. 이곳에서 주어진 한국어 교육 2시간이 그들에게 맛있는 한국어 후식이면 족하다.
  아직 안토니나는 경기도 화성 보호소에 있다. 그녀가 일했던 청바지 공장 사장이 그녀의 여권을 잃어버려서 여권 만드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만나면 늘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그녀는 이 말을 더불어 했다.

  "한국 사람하고 이야기 하고 싶어, 근데 가슴은 말하는데, 입은 말 못 해. 답답해."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주민들의 가슴에 맺혀 있는 말들이 편안히 소통되는 날까지 이주민 한국어 교육은 계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