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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성(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회 선임연구원)

  지난 2004년에 국립국어원에서는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한글 주소: 말터, 영문 주소: www.malteo.net)’라는 마당을 열어서 지금까지 100개 남짓의 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어 오고 있다. 우리말 다듬기의 역사는 수십 년에 이르고, 그동안 다듬은 말도 많지만 그 기간과 양만큼 국민들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아래로만 향하는 닫힌 사업 방식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는 우리말 다듬기 사업의 방향을 바꾸어, 다듬을 말의 개수에 매달리기보다는 한 주에 하나만 다듬게 되더라도 많은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다듬은 말을 뽑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늦게나마 위아래가 소통하는 열린 사업 방식으로 전환하였다는 점에서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말터’에서는 우선 이 주의 다듬을 말을 꼽아서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회원들에게 물어 적절해 보이는 후보 낱말 네다섯 개를 뽑아서 다시 투표에 부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낱말을 다듬은 말로 선정하고 있다. 전문가와 일반인이 함께 우리말을 다듬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렇게 해서 다듬은 말조차도 별로 호응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기대만큼 큰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방식 자체가 그른 것은 아니므로 앞으로 기술적인 면을 잘 가다듬어서 바라던 만큼의 성과를 얻었으면 한다.

  ‘말터’에서 다듬은 말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말은 아마도 ‘누리꾼’일 것이다. ‘누리꾼’은 ‘네티즌’을 다듬은 말인데, 이렇게 다듬은 때는 2004년 9월이다. ‘네티즌’은 누리그물이 보급되기 시작한 때부터 널리 퍼지기 시작한 외국어이다. 그래서 글쓴이는 이 말을 뒤늦게 다듬어 쓴다는 것은 무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노티즌’, ‘색티즌’, ‘안티즌’ 같은 말까지 생겨날 정도로 그 쓰임새가 나날이 커져 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과연 제대로 다듬어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글쓴이의 생각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지금 당장 누리그물에서 ‘누리꾼’을 검색해 보면 많은 언론 기사에서 이 말이 쓰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널리 퍼져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네티즌’을 ‘누리꾼’으로 다듬을 당시의 ‘말터’ 게시판을 검색해 보면 ‘누리꾼’으로 다듬었다는 게시물 아래에 모두 92개나 되는 댓글이 달려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에는 잘 다듬었다며 칭찬하는 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누리꾼’은 잘못 다듬은 말이라는 댓글도 많다.

언어는 사상이 아닙니다. 여기저기서 외계어 만들어 쓰는 초딩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단지 '계몽'이라는 권력을 갖는단 거겠습니다. 에휴
어떠한 명분도 대중의 동의에 우선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7백 몇 명이 투표하여 3백 몇 명이 찬성한 결과물이 전파와 계몽의 대상이 되다니요...

  흔히 언어를 ‘사회적 약속’이라고 하는데 국가 기관이 일방적으로 말을 바꾸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이냐는 의견인데, 이는 ‘말터’에서 진행하는 우리말 다듬기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말터’에서 다듬었다고 해서 다듬은 말이 바로 표준어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사회적으로 약속이 되기까지는 하나의 대안에 불과한 것이다. ‘네티즌’과 ‘누리꾼’의 죽살이는 오로지 국민들이 어떤 말을 얼마나 쓰느냐에 달린 것이지 국가나 전문가가 지정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자시민'이 훨씬 네티즌의 뜻에 가깝습니다. '누리'는 '세상'을 뜻하는 우리 옛말입니다. '누리꾼'은 '세상사람'이라는 뜻이므로 네티즌과는 거리가 멉니다.
전문성이 전제된 특정 계층의 사람을 지칭하는 '꾼'을 '-시민' 을 의미하는 네티즌에 갖다붙인 것은 정말 어이없는 실수이구요.

  ‘누리’는 세상을 뜻하는 말이고 ‘-꾼’은 시민을 뜻하는 말이 아니므로 ‘누리꾼’이 그물과 시민의 합성어인 ‘네티즌’의 다듬은 말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인데, 이는 말다듬기와 번역을 구분하지 못한 면이 있다. 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을 때에는 마땅히 그 원뜻을 충분히 이해하여 되도록 원뜻이 잘 살아나도록 다듬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면에서는 말다듬기와 번역은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번역은 외국어 자체의 원뜻에 더욱 충실해야 하는 반면에, 말다듬기는 다듬을 말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는 점에서 둘은 차이가 있다. 그런데 위에 보인 댓글은 ‘누리꾼’이 ‘네티즌’을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다듬은 말이 아니라고 하였다는 점에서 잘못된 것이다.

누리꾼이 머야 - - ;;; 즐!! 무슨 네티즌이 노랗게 생겻냐? 미친!
누리가 어떻게 인터넷인가요. ㅋㅋ 네티즌을 "망쟁이"로 바꾸는 게 더 의미가 팍팍 오는군요.
우리말을 사랑한답시고 어색한 말을 지어내지 말고 지금 쓰고 있는 이상한 말들이나 고치시지...유행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꼴이라니...

  이런 비난 이면에는 익숙한 것을 바꾸는 것에 대한 불만과 낯선 것에 대한 불편함 같은 것이 배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 사회는 새로운 외국어를 접할 때에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마구 써 대면서도, 그것을 우리말로 다듬어 쓰자고 하면 촌스럽거나 무식해 보인다거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거나 하는 따위의 이유를 들어 애써 쓰지 않으려는 이들이 많다. 특히 학력이 높고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처음에는 낯설거나 어색하게 여겨져서 다듬은 말을 쓰는 것을 주저할 수 있으나, 저마다 조금씩만 문제의식을 가지고 용기(?)를 내어 쓰기 시작한다면, 그런 낯섦이나 어색함은 금세 사라질 것이다. ‘누리꾼’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말터’에서는 ‘와이브로(WiBro)’를 이미 2005년 2월에 ‘휴대누리망’으로 다듬은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 이 말을 쓰고 있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아마도 ‘휴대누리망’이 ‘와이브로’의 뜻을 온전히 담지도 못하였고,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말을 굳이 어색한 말로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묻고 싶다. 이 글을 읽는이들 가운데 ‘와이브로’가 무엇의 약자인지 알고 있는 이가 몇이나 되는지 얼마나 될까? 그것을 모른다면 ‘와이브로’는 아기가 ‘바비부바’하며 옹알이하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다.

  꼭 ‘휴대누리망’이 아니어도 좋다. 더 멋들어지게 다듬은 말이 있어 그 말이 사회적으로 약속되기만 한다면 그 말을 써도 좋다. 중요한 것은 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어 써 보려는 자세, 그리고 그렇게 다듬은 말을 당당하게 쓸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글쓴이는 ‘누리꾼’의 성공을 통해 아직 우리말에 희망이 있음을 보았다. 앞으로도 회원들의 높은 관심 속에서 더욱 멋진 다듬은 말이 만들어져서 우리말이 더욱 풍요로워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