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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의정부 충의중학교 교사)
“먹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선생님 말은 들어오지도 않지? 내가 너희들 볼 수 있는 시간이 하루 몇 분이니? 고작 그 시간을 못 참아? 너희들한테는 담임도 필요 없지? 앞으로 종례는 없다. 집에 가!”
참던 화를 끝내 누르지 못하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이들에게 쏘아 붙였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채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 그 정적을 뒤로 한 채 교실을 나와 버렸다.
그 날은 체육대회 농구 예선에서 우리 반이 첫 승을 거둔 날이었다. 예선 경기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주위 선생님들로부터 “선생님 반엔 운동 좀 할 만한 애가 없는데. 어쩔 거야?”하는 걱정을 듣던 반이 우리 반이었다. 그러나 노력하는 자도 즐기는 자는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체육대회를 방학만큼이나 기대하던 우리 아이들의 열정은 담임인 나조차도 놀랄 정도였다. 전날 저녁 늦게까지 농구장에서 연습을 하던 아이들이 예선 첫 경기에서 상대팀을 이긴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경기를 하는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그물에 공이 출렁이는 순간보다도 자신이 맡은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땀 흘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 경기를 하는 아이들, 또 선수들과 하나가 되어 응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교사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공동체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기지 않았어도 예쁜 아이들인데 이기기까지 했으니 예뻐서 기절할 정도였다. 겨우 예선 첫 경기에 이긴 것뿐인데 아이들은 물론이고 나 역시 우승이라도 한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종례 시간에는 더운 날씨에 고생한 아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준비했다. 게다가 그날은 일주일에 한 번 7교시 수업을 하는 날이라 아이들이 피곤할 것 같아 청소 대신 쓰레기만 줍고 집에 보낼 생각이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입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리 주변 쓰레기 줍자.” “선풍기에 날린 종이 주워라.” 몇 번을 얘기하다 지친 나는 결국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아이들 앞에서 그렇게 쏘아붙이고 나와 버렸지만 사실 종례 시간에 해 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농구팀을 추켜 세워주고도 싶었고, 득점은 못했지만 뒤에서 도움을 준 선수들도 칭찬해 주고 싶었고,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도 한마음으로 응원하자는 말도 해 주고 싶었고, 너희들이 정말 예쁘다는 말도 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내 맘은 몰라주고 먹는 데만 정신이 팔려 떠드는 아이들이 너무 야속했다. 결국 속 좁은 교사가 아이들이 자기 맘을 몰라주자 토라진 셈이다.
교무실에 내려오기도 전에 ‘내일 아침에 애들 얼굴 어떻게 보지?’하는 걱정부터 들었다. 감정을 자제하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 창피했다. 아이들에게는 서로 상처주지 말자고 가르치면서 내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말들만 쏟아냈으니 말이다. 교과 성적은 꼴찌를 도맡아 그동안 주눅이 들었을 아이들이 제 힘으로 이뤄낸 결과인데 아이들은 오죽 기뻤을까. 하루 종일 얘기해도 수다가 끊이지 않을 텐데 그것을 이해 못하고 내 말 안 들어준다고 토라져서 울컥한 게 아닌가. 게다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채 열심히 청소하는 아이들도 많았는데 그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어린 아이처럼 짜증을 내다니.
다음날 아침, 자습 시간에 교실에 어떻게 들어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오늘 예선 경기가 3개나 있는데 들어가서 힘내라고 토닥여주고 싶은데 어제 한 일이 미안하고 창피해서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교무실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마침 평소 장난 잘 치기로 유명한 아이 두 명이 내려왔다. 빙글빙글 웃으며 아무 일 없는 듯이 "왜 안 오세요?" “에이~ 샘, 빨리 가요.” 하는 아이들 앞에서 겉으로는 화가 난 척 했지만 속으로는 나를 끌고 교실로 향하는 이 녀석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교실에 들어갈 수 있는 구실이 생겼으니 말이다.
교실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단에 서니 어제의 창피함과 쑥스러움 때문에 첫 발령을 받아 아이들 앞에 설 때처럼 목소리가 떨렸다. “어제는 선생님이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했어. 정말 미안하다.”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아이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가끔 너희들이 예뻐서 잠을 설치기도 하고, 너희들이 돌아가고 난 후에 퇴근 무렵 텅 빈 교실에 앉아 있기도 하고, 매일 밤 쓰는 일기의 절반은 너희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는 말들을 털어놨다. 그런데 그런 나의 마음을 아이들이 몰라줄 때 느끼는 서운함과 소외감 같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어제는 난 너희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 속상했다고 말을 했다. 수줍은 사랑 고백처럼 쑥스러운 말들이었지만 나의 솔직함을 아이들이 받아들이고 있음은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담임은 쉽게 토라지고 밤을 꼴딱 새며 고민하는 소심한 어른인데 학생들은 반대로 참 너그럽고 털털한 아이들이다.
나의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사과하고 다시 가까워진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경기는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이후 일주일동안 진행된 체육대회 예선에서 우리 반은 모든 종목에서 본선 경기에 출전하여 종합 2위라는 놀라운 결실을 맺었다. 또한 교내에서 ‘태릉선수촌’이라고 불리며 약물 복용 의혹까지 받을 정도였다.
아이들이 잘못하면 교사에게는 훈계하고 야단칠 수 있는 권위(?)가 주어져있다. 하지만 교사가 잘못을 했을 때 아이들에게는 교사를 야단칠 권위가 없다. 그래서 교사가 잘못을 할 때는 시간이 약이라 생각하고 슬쩍 넘어가는 수가 많다. 나의 짧은 교직 경력동안에도 아이들과 다투고 나면 시간이 흐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원래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괜히 아이들 앞에서 구구절절 이야기하면 흔히 말하는 ‘카리스마’가 없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발령 첫 해에는 아이들에게 얕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의 감정을 감추고 근엄한 척하려고 안간힘을 쓴 적도 있었다. 돌아보면 참 우습고 부끄러운 날들이다. 아이들에겐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으니 말이다.
경력 3년차인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과의 의사소통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첫 해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고마워.” “미안해.”라는 말을 자주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럴 땐 아이들은 오히려 나보다 더 어른인 듯 나의 실수를 너그럽게 용서해 준다. 머리를 긁적이며 머뭇거리면 아이들은 이미 눈치를 챈다. 아이들에게 솔직한 교사가 되려고 하니 때론 만만한 교사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기도 한다. 하지만 만만한 교사가 된 지금이 만만하지 않은 교사가 되려고 했던 날들보다 더 행복하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나의 말에 진심을 담을 수 있어서가 아닐까. 그래서 나도 아이들처럼 따뜻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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