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연세대 교수)
‘곤두박질’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몸을 번드쳐 갑자기 거꾸로 내리박히는 일’로 뜻풀이가 되어 있다. ‘돌에 걸려 곤두박질을 했다, 주가가 곤두박질하다, 곤두박질치듯 뛰어나왔다’처럼 주로 ‘하다’나 ‘치다’와 결합하여 쓰인다.
‘곤두박질’의 ‘-질’이야 ‘바느질, 싸움질, 톱질, 딸꾹질’등에서 쓰이는 접미사 ‘-질’이 틀림없다. 여느 어원사전과 상당수의 국어사전에 ‘곤두박질’의 어원을 ‘근두박질(筋斗撲跌)’로 보고 있는데, 이것은 접미사 ‘-질’의 존재를 부인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 근거도 명확하지 않아서, 그 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접미사 ‘-질’로 보아서 ‘곤두박질’은 ‘곤두박’에 ‘-질’이 결합된 것으로 보기가 쉽다. 그런데 ‘곤두박’에서 ‘박’은 ‘곤두’와 밀접히 결합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질’에 더 잘 연결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달음박질, 뜀박질, 숨박질’ 등은 ‘달음박, 뜀박, 숨박’에 ‘-질’이 결합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각각 ‘닫-(走) +-음 + -박 + -질’, ‘뛰-(躍) + -ㅁ + -박 + -질’, ‘쉬(息) + -ㅁ + -박 + -질’로 분석되지만, ‘박’은 오히려 ‘달음, 뜀, 숨’에 연결되었다고 하기보다는 ‘달음, 뜀, 숨’과 접미사 ‘-질’ 사이에 별도로 들어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달음질, 뜀질, 숨질’이란 단어가 ‘달음박질, 뜀박질, 숨박질’과 같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곤두박질’이 출현하는 초기 형태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곤두박질’이 역사적으로 출현하는 초기 형태는 ‘근두질’이다.
내 이제 드러가 모욕리라 고 오 벗고 번 跟阧질 여 여 기 가온대 드러가 모욕고져 더니 셔 보디 못러라 (我如今入去洗澡 脫了衣裳 一箇跟阧 跳入油中 纔待洗澡 却早不見了) <박통사언해(1677년)>
근두질다(跟陡) <역어유해(1690년)>
여기에서 ‘근두질’은 오늘날의 ‘재주넘기’와 유사하다. 즉 ‘몸을 공중에 날려 위아래로 휘돌리는 일’을 ‘재주넘기’라고 한다면, ‘근두질’은 재주넘기를 하기 위한 이전의 행동, 즉 ‘몸을 뒤집어 갑자기 거꾸로 내리박히는 일’을 말한다. ‘재주넘기’가 몸을 한 바퀴 완전히 돌리는 것이라고 한다면, ‘곤두박질’은 몸을 돌리기 위해 머리를 아래쪽으로 내리박는 행위를 말한다. 결국은 ‘몸을 거꾸로 내리박는 행동’이 곧 ‘근두질’인 것이다.
‘근두질’에 나타나는 ‘근두’는 한자어다. 그런데 이 한자가 처음에 등장할 때와 후에 등장할 때 다르게 나타난다. 초기에는 ‘근두’(跟阧)이었는데, ‘근두’(跟), ‘근두’(跟陡), ‘근두(觔斗) 등으로 보이다가, 후대에는 ‘근두’(筋斗)로 표기된다.
그 젹은 어린 한 번 근두치게 고(把那小孩子打了一個觔斗)<홍루몽(1884년경)>
근두딜다(打跟)<동문유해(1748년)>
근두질다(打跟)<몽어유해(1768년)> <방언유석(1778년)>
근두박질(筋斗)<광재물보(19세기)>
‘근’(跟)은 ‘발뒤측 근’이고, ‘두’(陡)와 ‘두’(阧)는 ‘가파를 두’인데 비해서 ‘근’(觔)과 ‘근’(筋)은 모두 ‘힘줄 근’이다. ‘근두’(跟陡)나 ‘근두’(跟阧)는 ‘발뒤측을 들어 앞쪽으로 가파르게 몸을 던지는’ 것이어서, ‘근두질’의 의미와 상통할 수 있지만, ‘근두’(觔斗)와 ‘근두’(筋斗)는 단지 ‘근육’과 연관된 것이어서 ‘근두질’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후대에 ‘근두’에 쉬운 한자를 취음하여 붙인 결과로 보인다.
이 ‘근두’는 ‘-질’이란 접미사 없이도 사용되었다. 즉 ‘근두 치다’나 ‘곤두 치다’ 등으로 쓰이었다.
잘못 보앗던가 시 보리라 고 곤두쳐 아아히히 나라 년원졍의 니르러 늙은 잣남긔 학이 되여 안더니<명듀보월빙(19세기)>
둔갑쟝군 가달이 몸을 곤두쳐 번신코 거<옥누몽(19세기)>
몸을 근두쳐 놉흔 봉의 올나 동졍을 보랴 더니 <김원전(19세기)>
홀연 가달이 월도 엽희 고 몸을 근두쳐 변여 냥 회 되여 다라드니 <옥누몽(19세기)>
이 ‘근두질’은 19세기에 와서 아직은 그 정체를 분명히 밝히기 어려운, ‘-박’이 첨가된다. 그래서 ‘근두박질’이 등장한다. ‘근둑박질’도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근’이 후행하는 ‘두’의 모음의 영향을 받아 ‘곤’으로 변화하여 ‘곤두박질’로 나타나는데, 이것도 19세기에 일어난 변화다.
근두박질다(跳躍)<한불자전(1880년)>
근두박질(筋斗) <광재물보(19세기)>
근두박질을 친다<이상의 시(1949년)>
헝겁지겁 근두박질을 하야 밖으로 뛰어 나왓다 <떡(20세기)>
근둑박질(顚倒)<국한회어(1895년)>
곤두박질다(顚倒)<국한회어(1895년)>
안협집은 곤두박질을 하면서 마젓다 <(1925년)>
다리의 풀이 진 사람처럼 곤두박질을 할 듯 하엿다 <지형근(1925년)>
캄컴한 밤에 산빗탈노 내려오다가 발이 밋그러지거나 돌에 채이면 나는 곤두박질을 하야 나무ㅅ짐속에 든다.<탈출기(1925년)>
물결에 강 한복판으로 집어던져 빙글빙글 곤두박질며 한뎡업 바다로 흘려 나려 보낸다<무정(1917년)>
몸이 앞으로 곤두박질을 할 만큼이나 뒤축이 높은 캥커루우 구두를 신었다<영원의미소(1933년)>
이처럼 어기와 접미사 ‘-질’ 사이에 ‘-박’이나 ‘-막’이 나타나는 시대는 빠른 것은 17세기, 늦은 것은 19세기이다. ‘숨질’이 ‘숨박질’이나 ‘숨막질’로 나타나는 것은 17세기이지만, ‘달음질’이 ‘달음박질’로, ‘뜀질’이 ‘뜀박질’로, 그리고 ‘근두질’이 ‘근두박질’이나 ‘곤두박질’로 나타나는 것은 19세기이다.
숨박질(迷藏)<어록해(1657년)>
녀름내 숨막질 니<번역박통사(1517년)>
다박질다(急步)<한불자전(1880년)>, 다람박질(急走)<국한회어(1895년)>
토끼처럼, 넓은 마루에서 깡충깡충 뛰고 미끄럼을 타고 뛰염박질을 하다 못 해서, 펄떡펄떡 재주를 넘으며 <상록수(1935년)>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근두다’의 형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근두’는 동사로 쓰일 때에는 ‘근두치다’만 등장하였었다. 그 행위는 ‘근두질’로 나타나다가 ‘근두질다, 근두질치다’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보 그 범이 근두치며 셜즁 길노 여가지라 <진쥬탑(18세기)>
즉시 금와 향노을 가지고 근두쳐 남쳔문의 올가니 <셔유긔(19세기)>
잰 놀라 근두질 앏 것치 <몽어노걸대(1790년)>
그런데 이 ‘근두’는 19세기부터 부사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곤두 서다(곤두 세우다), 곤두 박히다(곤두 박이다)’ 등이 쓰인다.
혹 팔둑을 쑥 아 마루 바닥도 탁 치며 혹 가춤을 곤두 올녀 놉흔 퇴 아 별악 치듯 기도 고<삼션긔(19세기)>
앳다 하고 어린애를 내밀면서 좀 업어 주어라 하고서 어린애를 곤두 세운다 <행랑자식(1923년)>
이걸 보면 고대 먹었던 밥풀이 고만 곤두 스고 만다. <따라지(1937년)>
걸핏하면 농촌운동, 농촌운동 하지마는, 그래 그깟놈들이 운동 아니라 곤두를 서 보시오. <흙(1932년)>
몸이 터럭이 있는 대로 죄다 곤두 설 노릇이었다.<민족의죄(20세기)>
시뻘건 불길을 하늘로 치뿜는 분화구 속에 곤두 박혀서 더러운 육체를 재도 남기지 않고 태워 버리는 것도 해롭지 않을 것 같으나 <영원의미소(1933년)>
이렇게 부사로 쓰이던 ‘곤두’는 ‘곤두라지다’로도 나타나는데, 이것은 아마도 작가가 개인어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방바닥에 곤두라진 청아는 바늘로 찌르는 듯이 운다. <어머니(20세기)>
역시 ‘곤두기침’이란 단어도 쓰이고 있다.
비렁이 령감은 그도 그젼 긔습이 남앗든지 곤두기침을 올니며 눈이 븕어 날치 방가의 소를 잔 붓들고<목단화(1911년)>
현대국어 ‘곤두박질’은 한자어 ‘근두’(跟阧)에 접미사 ‘-질’이 연결된 파생어 ‘근두질’에서 온 것이다. 이 ‘근두질’이 19세기에 ‘-박’이 들어가서 ‘근두박질’이 되었고, ‘근두박질’의 ‘근’이 ‘두’의 모음의 영향으로 ‘곤’으로 변화하면서 ‘곤두박질’로 변화하여 현재까지 쓰이는 것이다. 그리고 ‘곤두’는 오늘날 ‘(머리털이) 곤두서다, (신경을) 곤두세우다, (담을 넘다가 땅바닥에) 곤두박이다’ 등의 합성어에 쓰이고 있다.
현대 방언에서 이 ‘곤두박질’은 더 많은 어형을 보여 준다. ‘숨박질’이 ‘숨막질’과 함께 나타나듯, ‘곤두박질’도 ‘곤두막질’로도 나타난다(평북, 중국 요녕성). 그리고 ‘까꾸래미’나 ‘까꾸박질, 꼬꾸박질, 꼬구막질’은 ‘곤두박질’과는 그 어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꺼꾸러지다’나 ‘거꾸로’와 연관되어 생겨난 어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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