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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Liu Xia, 중국인, 전남대학교 대학원생)

  저는 작년 여름에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어를 배우다가 온 거라 한국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와서 겪어 보니 제가 아는 것은 ‘새 발의 피’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연구실에서 교수님을 처음 뵈었을 때 교수님께서는 저보고 “아이고, 중국에서 예쁜 아가씨가 하나 왔네, 우리는 실력으로만 뽑는 게 아니라 얼굴로도 뽑는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 여기에서는 이 정도면 예쁜 거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날 알아주는 한국이 정말 사랑스러웠습니다. 그 후로도 교수님께서는 저를 볼 때마다 예쁘다고 말씀하셨고 저 역시 웃음으로 넘겼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좋아하고 그것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제가 교수님을 따라 고향에 갈 때 교수님께서는 고향 친구에게 저를 소개해 주실 때 ‘중국에서 온 예쁜 아가씨’라는 말씀 대신 (아 글쎄) “중국에서 온 공주병 아가씨”라고 소개하시는 게 아닙니까. 그때야 전 깨달았습니다. 인사말로 받아들여야 하는 그 말을 제가 참말이라고 생각했던 거였지요. 학교에서 ‘공주병’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 봤고 또 웃기도 많이 웃었지만 그동안 저 역시도 공주병에 제대로 걸려 있다는 것을 그때서 비로소 느꼈습니다. (근데 더 예쁘지 않아요?)
  한국에서는 한 번 듣고 그냥 넘어가야 하는 그러한 인사말이 많습니다. 가령 “많이 예뻐졌네”, “언제 한번 같이 밥이나 먹자”, “내가 이번 일 끝나면 우리 집에 한번 초대할게” 등과 같은 말이 그것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그런 말을 듣고 저를 집으로 초대해 줄 날을 기대하면서 기다렸었는데 지금은 그날이 영원히 안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저 ‘한국식(!)’ 인사말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상황에서 그런 말을 인사말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룸메이트의 친구들이 우리 방에 놀러 왔습니다. 그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빵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도 한국에서 배운 인사말을 써 먹어 보려고 “우리 언제 한번 빵이나 먹으러 가자.”라고 했지요. 다음 날 룸메이트가 진지하게 저에게 와서 “언니, 우리 토요일하고 일요일 저녁은 다 괜찮은데 언니는요?”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전 많이 당황했습니다. 제가 그저 한국식으로 지나가는 인사를 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나중에 룸메이트와 어느 정도 친해진 후 제가 다시 그 얘기를 꺼냈더니 룸메이트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룸메이트 말로는 자기도 그런 사람을 싫어하고 또 그런 사람들한테 많이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언제 한번 같이 밥 먹자’라는 말도 아무데나 쓰는 말이 아니라는 걸.
  이제 유학생활이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처음 왔을 때는 자기가 한 말을 책임지지 않는 한국인들 때문에 많이 당황스러웠고 또 많이 속상했었습니다. 그런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이젠 제가 되도록 모든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기 위해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의 부족함 때문에 “공주병”도 걸려 봤고 또 억울하게 동생들한테 비싼 빵도 사 줬지만 앞으로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이 글은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주최 ‘2006년 전국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의
최우수상(문화관광부 장관상) 수상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