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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오(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우리가 글을 쓸 때에는 대개 글의 전반적 내용을 중심으로 단어와 문장을 엮어 나가게 되는데, 자칫하면 문장의 형식적 면, 특히 ‘접속의 형평성’을 놓치는 일이 생긴다.
  문장을 구성하는 언어 단위에는 단어, 구, 절 등이 있다. ‘구(句)’란 둘 이상의 단어가 모여 절이나 문장의 일부분을 이루는 언어 단위를 말한다. ‘절(節)’이란 주어와 서술어를 갖추었으나 독립하여 쓰이지 못하고 다른 문장의 한 성분으로 쓰이는 언어 단위를 말한다. 가령 “하늘과 바다”는 그 전체가 하나의 명사구이며, “높은 하늘과 깊은 바다”는 ‘높은 하늘’이라는 명사구와 ‘깊은 바다’라는 명사구가 결합한 또 하나의 명사구이며, “하늘은 높고 바다는 깊다.”라는 문장은 ‘하늘은 높고’라는 절(선행절)과 ‘바다는 깊다’라는 절(후행절)이 결합한 접속문이다.
  접속 구조에서 ‘구+구’, ‘절+절’의 접속은 접속 단위끼리의 형평성이 지켜진 것이지만 ‘구+절’, ‘절+구’의 접속은 접속 단위끼리의 형평성이 깨어진 것이다.
  우선 접속 구조의 앞부분을 고쳐야 하는 예를 몇 개 제시하겠다.


1) 사용 중에 궁금한 점이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을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궁금한 점이 있거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을
‘이나’의 앞은 ‘구’(‘궁금한 점’)로 되어 있고 ‘이나’의 뒤는 ‘절’(‘기능이 발휘되지 않-’)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구+절’의 연결은 국어 문법을 어긴 것이다. 더구나 ‘사용 중에’라는 부사구는 그 뒤에 이와 호응할 서술어가 없다. ‘궁금한 점이나’를 ‘궁금한 점이 있거나’와 같이 절로 고치면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된다.
2) 부품 파손이나 손이 다칠 우려가 있습니다.
부품이 파손되거나 손이(또는 ‘손을’) 다칠
‘이나’의 앞은 ‘구’(‘부품 파손’)로 되어 있고 ‘이나’의 뒤는 ‘절’(‘손이 다칠’)로 되어 있다. ‘부품 파손이나’를 ‘절’로 고쳐 ‘부품이 파손되거나’로 표현해야 한다.
3)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시는 장애인 승객께서는 역무실 또는 매표 직원에게 문의하여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역무실 직원이나(또는 ‘역무실에 문의하거나’) 매표 직원에게 문의하여
원문은 대체적인 의미야 통하지만 문법을 어겼다. “[{장소 또는 사람}에게]”는 “[{사람이나 사람}에게]”로 고치거나 “ [{장소}에 어찌하거나+{사람}에게 어찌하다]”로 고쳐야 문법에 맞다.

  다음에는 접속 구조의 뒷부분을 고쳐야 하는 예를 몇 개 제시하겠다.

4) 항공법 제77조 제2항 및 동법 시행규칙 제232조의 규정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예천공항 계기착륙시설(LLZ/DME, GP)을 신설하여 사용 개시를 고시합니다.
예천공항 계기 착륙 시설(LLZ/DME, GP)을 신설하여 사용을 개시하게 된 것을
위 예문에서는 연결 어미 ‘-어’를 경계로 앞부분은 목적어와 서술어를 가진 ‘절’의 형태로 되어 있고 뒷부분은 ‘사용 개시’라는 명사구로 되어 있어서 접속의 형평성이 깨어졌다. ‘절+구’ 표현은 ‘절+절’ 구조로 고쳐야 접속의 형평성이 지켜진다. 명사구 ‘사용 개시’에서 ‘개시’는 명사일 뿐, 서술어가 될 수 없다. 서술어를 가진 ‘절’이 되려면 ‘을 개시하게 된 것’(또는 ‘개시함’)처럼 ‘개시하다’라는 서술어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5) 가끔 호스가 꺾이거나 심하게 눌려 있지 않나 호스를 끼워 조인 연결 부위가 헐거워지거나 이상이 없는가 살피고 의심스러운 곳이 있으면 비눗물을 발라 확인하여 주세요.
헐거워지거나 이상이 생기지 않았는지(또는 ‘헐거워졌는지, 이상이 생겼는지’)
원문처럼 ‘이상이 없는가’를 쓰면 ‘헐거워지-’와 호응할 성분(‘-지 않았는지’)을 찾을 수 없으므로 ‘이상이 없는가’를 ‘이상이 생기지 않았는지’로 고쳐야 한다. 한편 ‘연결 부위에 헐거워짐이나 이상이 없는가’로 다듬는 방법도 가능하지만 앞의 방법보다 상대적으로 덜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