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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휘 이야기
   양(洋)-, 당(唐)-, 호(胡)-, 왜(倭)-
조남호(趙南浩) / 국립국어원
  어느 한 곳에서 발견되거나 발명된 사물은 인적 교류를 통해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다른 민족과의 접촉을 통해 많은 새로운 사물을 전해 받았다. 새로운 사물이 들어오면 그 사물을 가리킬 말이 당연히 필요하게 된다. 적당한 말을 새로 만들어 쓰기도 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사물을 전해준 쪽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기도 한다. 요새 풍조로 보면 외국에서 쓰는 말을 그대로 음역해서 쓰는 일이 많지만 과거에는 그러지 않았다. 적당한 말을 만들어 쓴 것도 꽤 있는데 외국어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지 않아 외국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낯설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정은 서양에서 많은 사물이 전해지던 20세기 초에도 변함이 없었다.
  새로 들어오는 사물에 매번 적당한 이름을 붙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미 있는 사물 중에서 유사한 것을 골라 그 이름 앞에 사물이 전래된 곳을 표현하는 말을 덧붙여 새로운 사물의 이름으로 삼는 방법을 쓰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양(洋)-’이다.
  ‘양’이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1876년 개항 이후인 것으로 보인다. 서양에서 새로운 사물이 많이 들어온 만큼 ‘양’의 수요도 많았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흔히 사용하는 말인 ‘양말’도 그중의 하나이다. ‘양말’은 ‘洋襪’이라고 한자로 쓸 수 있는 말인데 풀어서 말하자면 ‘서양 버선’ 또는 ‘바다를 건너온 버선’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처럼 ‘양’이 앞에 붙은 말이 꽤 있다. ‘양복(洋服), 양식(洋食), 양악(洋樂), 양옥(洋屋), 양주(洋酒)’와 같은 말은 ‘양말’처럼 유사한 사물은 있되 국어에서 독자적으로 단어로 쓰이지 않던 말에 ‘양’이 붙어서 된 것들이다. 그런가 하면 ‘양과자(洋菓子), 양은(洋銀), 양잿물, 양철(洋鐵), 양탄자, 양회(洋灰)’와 같은 말은 독자적으로 쓰이던 말에 ‘양’을 붙여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쓴 것들이다. 20세기 초에는 더 많은 말들이 쓰였는데 새국어소식 2002년 6월호에 실린 홍윤표 선생님의 글에 많이 소개되어 있다.
  ‘양’은 20세기 초에만 새로운 말을 만드는 데 사용한 것이 아니다. 우리말 단어의 역사가 아직 잘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한 예를 제시하기가 쉽지 않지만 ‘양공주(洋公主)’라는 말은 확실히 1945년 이후에 생긴 것인 듯하다. 미군과 관련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공주’라는 말이 들어가 좋은 의미의 단어 같지만 실제 의미는 ‘양갈보’와 같아 서양 사람, 특히 미군에게 몸을 파는 여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최근에 작명한 것으로 보이는 식물 이름에 ‘양다래, 양미나리, 양버즘나무, 양아욱’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로 보면 ‘양’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꽤 오랫동안 서양과 관련이 있는 사물에 이름을 부여하는 데 활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물의 원산지를 표시하는 말로 덧붙이는 것은 ‘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사물이 들어오는 주요 경로가 중국과 일본이었던 만큼 중국과 일본에서 들어온 것을 가리키는 말들도 각각 있다. 중국에서 들어온 것임을 나타내는 말에는 여러 개가 있는데 먼저 ‘당(唐)’을 들 수 있다. 당(唐)나라에서 유래한 말로 당나라 이후에 비록 왕조는 바뀌었어도 중국을 가리키는 말로 ‘당’을 사용한 것이다. ‘당나귀, 당모시, 당면(唐麵), 당사주(唐四柱), 당책(唐冊), 당피리’가 예이다. 중국에서 들어온 것에는 ‘호(胡)’라는 말을 붙이기도 하였다. ‘오랑캐’라는 의미를 가진 이 말은 우리나라가 청나라를 오랑캐의 나라로 생각한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호고추, 호떡, 호배추, 호주머니, 호콩’이 예가 될 것이다. ‘당면’과 같은 말로 사전에 ‘호면(胡麵)’이 있는 것으로 보면 ‘당’과 ‘호’가 명확히 구분되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거의 안 쓰이지만 예전에는 ‘청(淸)’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었다. ‘청요리’가 대표적인 예인데 지금은 거의 ‘중화요리’라고 한다. ‘청’이 붙은 말은 ‘청녀(淸女), 청상(淸商)’ 등이 더 있기는 하지만 사전에 예가 그리 많지 않다. 일본에서 들어온 것을 가리키는 말로는 ‘왜(倭)’를 사용하였다. ‘왜간장, 왜갈보, 왜된장, 왜떡, 왜소금, 왜전골, 왜철쭉’ 등이 그 예이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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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