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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의 어원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호랑이’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호(虎)’에 접미사 ‘-랑이’가 붙어서 생겼다는 설인데, 한자 ‘호’(虎)에 견인된 해석이지만, ‘-랑이’라는 접미사가 없어서 믿기 어렵다. 또 다른 하나는 몽고어의 호랑이를 뜻하는 단어 'hol'[虎]에 접미사 ‘-앙이’가 붙어서 된 것이라는 설이다. 그러나 이것도 신빙성이 적다. 왜냐 하면 이미 15세기에 ‘호랑이’는 ‘호랑(虎狼)’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19세기 말까지도 그 한자가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랑이’는 한자 ‘호랑’(虎狼)에 접미사 ‘-이’가 붙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 險道 中에 여러가짓 夜叉와 虎狼과 獅子와 蚖蛇 蝮할이 만히 잇더니 <월인석보(1459년)>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의 ‘호랑이’란 말의 뜻은 한자 ‘호’(虎) 하나로 표시할 수 있는데도, 또 ‘랑’(狼)을 붙였다는 점이다. ‘호’(虎)는 지금도 ‘호랑이’와 같은 뜻으로 쓰인 ‘범’을 일컫는 것이었지만, ‘랑’(狼)은 호랑이와는 전혀 다른 ‘이리’를 뜻하는 한자이기 때문에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따라서 ‘호랑이’는 엄밀하게 말하면 ‘범과 이리’라는 의미이다. ‘호랑’(虎狼)이란 한자어는 ‘호’(虎)와 ‘랑’(狼)이 각각 쓰이어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였다.
亡者 神識이 큰 鐵城에 火蛇와 火狗와 虎와 狼과 師子와 牛頭獄卒와 馬頭羅刹왜 소내 鎗자바 모라 城門애 드료보아 <능엄경언해(1461년)> 豺 類라 <능엄경언해>
  위의 글에서 ‘虎와 狼과 獅子와’로 표시한 것은 이들이 각각 독립된 의미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려 주며, 또한 ‘시’(豺)는 ‘랑’(狼)과 같은 종류라고 한 주석을 보면 ‘호’(虎)와 ‘랑’(狼)과 ‘시’(豺)는 각각 다른 동물을 지칭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한자 자석에서 쉽게 알 수 있다.
  ‘호’(虎)의 석(釋)이 간혹 ‘갈범’으로 나타나지만, 곧 ‘범’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그리고 ‘호랑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엽부터이다. ‘랑’(狼)은 ‘이리’를, 그리고 ‘시’(豺)는 ‘승냥이’를 뜻하는 한자다.
범 爲虎 <훈민정음 해례본(1446년)> 虎 버미라 <월인석보(1459년)>, 虎 갈웜 호 <훈몽자회(1527년)>, 虎 범 호<신증유합(1578년)>
狼 일히 랑 <칠장사판천자문(1664년)>, 狼 일히 랑 <선암사판유합(17세기말)>
이 싀 <훈몽자회(1527년)>, 豺 승냥이 시 <몽어유훈(1888년)>
  즉 ‘호’(虎)는 ‘범’을 그리고 ‘랑’(狼)은 ‘이리’를 뜻하는 것이었는데, 이와 같은 동물을 두루 포함하여 지칭할 때 ‘호’와 ‘랑’을 합쳐 ‘호랑’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호랑’의 원래 뜻은 ‘범과 이리’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호랑’이 굳어져 쓰이면서 ‘호랑’ 자체가 ‘범’을 뜻하는 단어로 변화한 것이다.
  오늘날 ‘tiger’를 지칭하는 단어는 ‘범’과 ‘호랑이’의 두 개가 있다. 그러나 원래 국어 단어는 ‘범’이었다. 여기에 ‘범’을 뜻하는 한자 ‘호’(虎)가 쓰이었지만, 1음절 한자어로서는 동물의 명칭을 나타내는 단어의 지위를 가지지 못하였다. 그래서 ‘범’이 ‘tiger’의 의미를 가진 유일한 국어 단어였었다. 그러다가 ‘호’(虎)와 ‘랑’(狼)이 결합하여 ‘호’(虎)가 지니고 있는 용맹성과 ‘랑’(狼)이 지니고 있는 슬기로움의 속성을 지닌 동물을 지칭하기 위해 ‘호랑’(虎狼)이란 단어가 만들어지면서 단어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때의 의미는 ‘범과 이리’였다. 이때에는 ‘호랑’에 접미사 ‘-이’가 통합되지 않았다. 여기에 명사형 접미사 ‘-이’가 통합된 것은 19세기에 와서의 일인데, 이때에는 ‘호랑이’는 ‘범과 이리’의 의미를 버리고 오늘날의 ‘호랑이’와 동일한 의미로 변화한 것이다. 그래서 ‘호’(虎)의 석에 ‘호랑이’가 등장하게 된다.
虎 호랑이 호 <진리편독삼자경 (1895년)>, 虎 호니 호 <증보천자문(19세기말)>
  그래서 ‘호랑이’는 ‘[(호) + (랑)] + -이’의 구조를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호랑이(虎狼) <한불자전(1880년)>, 獅子 탄 쳬괄이며 虎狼이 탄 오랑며 <가곡원류(19세기)>, 호랑은 몹쓸 즘이로 <윤음(1839년)>, 노마령을 지나다가 호랑이를 만지라 <과화존신(1880년)>, 호랑이가 즉시 가니라 <과화존신(1880년)>, 음던 사은 죽어 도야지가 되고 살인던 사은 죽어 호랑이가 된다니 <주교요지(1897년)>, 호랑이 휘파람을고 <쇼학젼(19세기)>
  이처럼 두 유사한 성격을 가진 동물을 복합하여 만든 한자가 여럿 있다. 즉 시호(豺虎, 승냥이와 호랑이), 시랑(豺狼, 승냥이와 이리), ‘시구(豺狗, 승냥이와 개), 호표(虎豹, 범과 표범), 표호(豹虎, 표범과 범), 비호(貔虎, 표와 범), 웅호(熊虎, 곰과 범), 이호(螭虎, 이무기와 범), 호시(虎兕, 범과 상상의 외뿔소) 등이 그러하다. 그 예들을 하나씩만 들어 보도록 한다.
豺虎ᅵ 사 니 <두시언해(1481년)>, 豺狼사호미 긋디 아니노소니<두시언해>, 豺狗(승냥) <몽유편(1810년)>, 虎豹의 슬허 우로  記錄얌직도다<두시언해>, 豹虎(갈가지) <한불자전(1880년)>, 貔虎  士卒은 鳳凰城에 게 아니니라<두시언해>, 熊虎ᅵ 阡陌애 니엇더라 <두시언해>, 螭虎 豺狼므놋다 <두시언해>, 虎兕ᅵ 柙에셔 나며<논어율곡언해(1749년)>
  이 단어들의 특징은 단음절의 ‘시(豺), 호(虎) 랑(狼), 구(狗), 표(豹), 비(貔), 웅(熊), 이(螭), 시(兕) 등이 독립적으로 쓰이지 않아서, 고유어인 ’승냥이, 범, 이리, 개‘ 등에 대치되지 못하는 반면, 두 개의 한자 형태소가 결합되면서 한 단어의 지위를 확보하면서, 독자적인 새로운 의미의 명사가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두 가지 동물을 일컫던 단어가 한 단어처럼 굳어지면서, ‘용호’(龍虎)와 같이 두 동물이 대립적인 의미를 가진 것들은 그 뜻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비하여, 단지 나열적인 요소를 가진 것들은 하나의 의미로 변화를 겪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호랑’이 두 개의 동물이 아니라 하나의 동물로 인식하게 된 것은 동물들에 대한 세세한 구분이 없어진 것에도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리’와 ‘승냥이’는 오늘날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며, ‘이리’란 단어가 사라지고 ‘늑대’란 단어가 등장하게 되었지만(19세기 말), ‘이리’와 ‘늑대’가 동일한 동물인지 아니면 다른 동물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한자의 석에서도 혼란이 보이기도 한다. ‘랑’(狼)이 ‘이리’임에도 불구하고 ‘호랑이’로 석을 붙인 문헌도 보이며, ‘시’(豺)가 ‘승냥이’에서 ‘시랑’(豺狼)이나 ‘이리’(일히)로 변한 것도 보인다.
狼 호랑 랑 <아학편 이본(1929년)> 豺 싀랑 싀 <유몽천자(1903년)>, 豺 일히 싀 <몽학이천자(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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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