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제목 다시 보기 
말의 뿌리를 찾아서 
이런 일을 했어요 
문화 들여다보기 
만화로 배우는 우리말 
우리말 다듬기 
우리 시 다시 보기 
내가 본 한국 사람, 한국말 
일터에서 말하다 
국어 관련 소식 
우리말 실력 알아보기 
처음으로 |국립국어원 |구독신청 |수신거부 | 다른 호 보기

한은영(진주중앙고등학교 교사)

  오늘 아침에 차를 타고 학교로 오는데, 진주 엠비시에서 시민교양강좌에 교과통합 논술 강좌를 한다고 광고를 한다. 귀를 활짝 열고 들으니, 서울 ◯◯학원장 최 아무개 씨를 모셔다가 한단다. 차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매일 오르는 길이건만 정신을 딴 데 파는 날이면 늘 이 모양이다. 지난 팔월 열 하루에는 경남 교육청 주최 독서논술대회가 열렸다. 논술대회가 있는 줄은 몇 달 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막상 학생 지도에는 소홀하였으므로 내 마음 속에는 죄의식이 깔려 있었고, 이를 보상하는 차원에서도 대회 당일에는 반드시 참여해야 했다. 논술대회인 줄 알고 갔더니 논술 앞에 독서라는 단어가 뚜렷하였다. 얼굴을 아는 사람들 가운데 국어선생님이 심사위원으로 많이 와 있어서 마음이 어지러웠다.
  “논술을 어떻게 보십니까?” 옆에 있는 선생님에게 여쭈어 보았다.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시간이 좀 흐르자 선생님은 답답한 듯, “현재의 논술 바람은 어쨌거나 공교육 안에서 해결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고, 공교육 교사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공교육에서 읽기와 쓰기를 결합하여 사고력을 기르는 교육을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공교육이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
  “선생님, 대학에서 입시요강을 발표하면 신문에서는 학원가의 분석을 같이 싣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에서 2008학년도에는 학생부, 수능, 교과통합 논술을 통해서 학생을 뽑겠다고 하면, 신문에는 그 발표 아래 유명 학원에서 분석한 결과 결국, 논술이 당락을 좌우할 것이라는 기사가 같은 면에 실립니다. 지금의 논술은 바람이라고 할 만합니다. 공교육에 종사하는 저 같은 사람조차 교과통합 논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방송국에서도 이미 이런 흐름을 알기라도 했다는 듯, 대학에서 입시요강을 발표하기도 전에, 어렵게 강남의 유명 대표 강사를 모셨다고 할 정도입니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학생부, 수능 외의 것으로 이득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의 선동에 교과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애쓰던 교사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른 교육을 하려고 하는 교사일수록 이런 환경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공교육만으로 논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형태의 논술이든 사교육이나 발빠른 장사치들이 차지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학교 교육만으로도 충분히 대학입시가 가능하게 되므로 결국 대학에도 이득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대안을 당장 바라는 부모와 수험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종이 울리자 선생님은 교실로 가신다. 9월부터 팔고 있다고 서점에서 논술 교과서와 지도서를 놓고 간다. 책머리에 사고원리로 풀어내는 통합교과논술이라고 쓰여 있다. 선생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무거운 마음으로 교과통합논술 강좌가 열리는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정강이가 욱씬거려서 보니 아침에 넘어져 부딪친 자리에 피멍이 단단히 자리를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