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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지난 1, 2회에서는 그때그때 일어난 일을 다룬 제목을 대상으로 생각해 보았다. 이번 호부터는 한국편집기자협회에서 제정한 ‘이달의 편집상’, ‘한국편집상’, ‘심사위원 추천상’ 등을 받은 제목을 유형별로 모아 실물 파일도 함께 보이는 자리로 꾸며 보려 한다. 아울러 이 분야 전문가인 심사위원의 생생한 육성도 들려 주고 싶다. 다만, 평가 관련 자료의 양이 많거나 평가 스타일이 위원 간에 다를 때에는 이 소식지 성격에 맞게 조정하기로 한다.

  신문에 나타난 제목의 유형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관점에 따라: 객관형, 주관형.
  *육하원칙 중 어느 것이 비중 있게 나타났느냐에 따라: ‘누가’형, ‘언제’형, ‘어디서’형, ‘무엇을’형,
     ‘왜’형, ‘어떻게’형.
  *종결 형식에 따라: 어미 종결형, 어근 종결형, 체언 종결형, 부사 종결형, 조사 종결형.
  *단어 선택에 따라: 한 어구 제시형, 전문 용어 원용형, 새말 만들기형.
  *수사법에 따라: 비유 · 비교법형, 강조법형, 변화법형, 인용 · 원용법형, 희언법형(戱言法型),
     모순어법형(矛盾語法型).

  분류하는 방식에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음은 물론이다. 이 중 수상 제목들이 단어 선택에 따른 분류와 수사법에 따른 분류에 집중되므로 앞으로 이들을 중심으로 다루되, 이번 호에서는 수사법에 따른 유형 중 인용법형에 속하는 몇몇 예를 들어 본다. 제목 뒤 괄호 안에는 해당 언론사, 기자, 발간 연월일과 실린 면, 그리고 관련 심사위원을 밝혔다. (심사위원이 여럿이면 내용을 정리한 분을 맨 앞에 내세웠다.) 자료 공개 요청에 동의하고 협조해 준 이 협회의 김윤곤 회장, 그리고 심사위원 여러분에게 감사한다.


  

  ‘인용법형’은 뉴스의 주인공이 한 발언 중 가장 중요하거나 특기할 만한 대목을 인용하는 유형이다. 인용되는 대상에는 경구, 속담 · 격언, 관용어, 사자성어, 유행어 · 회자어(膾炙語) · 통계 등이 있다. 지명도 높은 인사의 어록이나 잘 알려진 책의 문구(文句)를 인용하기도 한다. 이 자리에서는 뉴스의 주인공이 한 발언으로 한정한다.

  
(2003. 2. 19. 1. 함정훈·구자건·김무곤·김민수)

  2003년 2월 18일에 대구에서 일어난 지하철 방화 사건을 보도한 제목이다. 기자는 텔레비전, 인터넷에서 보도한 뉴스를 뒤늦게 재탕만 하고 말 것인지를 놓고 고심하다가 위의 제목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저널리즘의 본령, 특히 신문 제목의 기능의 사회적 상관 조정 면에서 이 따옴표 표제는 반(反)저널리즘적이며 사실에 의거한 사건의 집약적 표출 기능에도 어긋난다는 의견이 있었다. 문자 매체인 신문은 전달자이면서 해석자임을 간과할 수 없을뿐더러 감성이 너무 앞서면 참사가 연성화(軟性化), 감성화(感性化)로 흐를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편집의 직분은 생생한 사실 전달에 있으므로 "대구 지하철 방화 수백 명 사망"이라는 편한 공식을 버리고 “아빠…”를 주제목으로 하고, 처참하게 불탄 전철 사진을 부제목으로 삼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로써 편집자의 고독한 결단이 편집 역사의 한 페이지를 엮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4. 2. 7. 1. 구자건·김택근·장하용·최상현·홍휘권)

  이날 조간신문은 강삼재 씨의 법정진술을 한결같이 1면 머릿기사로 올렸다. 안풍(安風) 자금으로 불리는 940억 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서 직접 받은 돈이라는 것. 이날의 증언 내용은 오래 전에 이미 강 씨 변호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적이 있다. 그 이후로 강 씨가 직접 법정진술을 할 것으로 예상하였으며 세상이 그의 ‘입’을 주시하던 터였다. 그렇다면? 이날 뉴스의 핵심은 바로 '강삼재의 말'이라는 데에 있다. 이를테면 주제에서 ‘강삼재’라는 주어가 결코 생략될 수 없는 경우라 하겠다. 위 (2-1, 2)는 부침(浮沈)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뉴스의 핵심이 어디 있는지를 꿰뚫고 습관적으로 주제의 주어를 생략하는 편집기자의 타성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다시 한번 일러 준다. ‘뉴스 속의 뉴스’를 놓치지 않는 안목이야말로 편집기자가 갖춰야 할 소중한 자질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목에 관심을 쏟는다. ‘제목, 제목’ 하며 달려들어 멋지고 매력 있게 만들어 내려 고심한다.
  “아빠… 문이 안 열려요”의 이상훈 기자. 단지 다른 신문과의 차이를 드러내려고 이 제목을 만든 건 아니라고 본다. 신문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 이미 사건을 알고 있는 독자에게 어떻게든 전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하철 안에 갇힌 여학생이 휴대전화로 사고를 가족에게 알린 상황만큼이나 절박했을 것이다.
  ‘강삼재’라는 행동주를 분명히 밝힌 양규완 · 이만열 기자도 사건의 경과나 추이를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지켜보다가 ‘바로 그때’를 맞이하자 제목을 ‘반듯하게 제대로’ 단 것이다. 이것이 기발한 아이디어나 탁월한 재능으로만 될 수 있었겠는가.
  독자를 위한 서비스 정신, 사실을 충실히 전달하려는 마음 자세, 뉴스의 흐름을 제대로 짚어내는 감각과 안목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신문은 결국 한 줄의 제목으로 남는다”는 함정훈 위원의 발언이 가슴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