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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성(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회 선임연구원)

  지난 호에서는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한글 주소: 말터, 영문 주소: www.malteo.net)’에서 다듬어서 성공적으로 쓰이고 있는 ‘누리꾼’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말터’에서 다듬은 말들 가운데 글쓴이의 생각으로는 잘 다듬은 것 같은데도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묻혀 있는 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듬는 일보다 다듬은 말을 널리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1) 이모티콘(emoticon) → 그림말

  ‘이모티콘’은 감정을 뜻하는 ‘이모션(emotion)’과 기호나 부호를 뜻하는 ‘아이콘(icon)’을 합친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휴대전화로 쪽지(문자메시지) 하나를 보내더라도 다양하고도 기발한 이모티콘 한두 개는 꼭 넣어서 보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만큼 널리 쓰이는 말인데도 아직까지 ‘이모티콘’을 다듬어 쓰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모티콘’이 통신 공간에서 생각이나 감정을 간단한 그림으로 압축하여 표현하는 말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림말’은 ‘이모티콘’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 콘텐츠(contents) → 꾸림정보

  영한사전에서 ‘콘텐츠’를 찾아보면 너무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어 이를 한 낱말로 다듬어 쓰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은 각종 전자 정보나 전자 자료를 통틀 어 가리킬 때 ‘콘텐츠’라는 말을 쓰는 것일 뿐이므로 영한사전에 소개된 ‘콘텐츠’의 모든 뜻을 다 다듬을 필요는 없다. 그런 점에서 ‘꾸림정보’는 ‘콘텐츠’를 다듬은 말로 적절해 보인다. ‘꾸리다’는 “집이나 자리, 이야기 따위를 손질하여 모양이 나게 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정보를 잘 다듬어서 보기 좋게 꾸며 놓은 것’을 가리키는 말로 ‘꾸림정보’를 이해한다면 ‘콘텐츠’를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관광부에는 ‘콘텐츠진흥팀’이라는 부서가 있다. 문화관광부는 국어 정책을 주관하는 부서이다. 이런 부서에서조차 다듬어 쓰려 하지 않는 말을 국민들에게 쓰라고 할 수는 없다. 하루 빨리 고쳐야 할 것이다.

  (3) 퀵 서비스(quick service) → 늘찬배달

  ‘늘찬배달’은 ‘능란하고 재빠르다’라는 뜻을 가진 우리말 ‘늘차다’와 ‘배달’을 합쳐서 만든 새말이다. 사전 속에서만 살아있던 우리말을 용케 잘 찾아내어 참으로 예쁜 말을 만들어 내어 고마운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에게 ‘퀵 서비스’가 ‘늘찬배달’로 다듬어졌다고 하면 다들 촌스럽고 어색하다면서 ‘퀵 서비스’가 더 낫다고들 한다. 영어로 된 말이어서 그런지 더 세련된 느낌도 든다고 한다.
  말의 생명은 전적으로 그 말을 쓰는 사람에게 달려 있으므로 ‘늘찬배달’을 안 쓰겠다면 어찌할 수는 없다. 그러나 ‘퀵 서비스’를 쓰더라도 이 말이 이른바 ‘콩글리시(한국식 영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영어권에서는 ‘express/special delivery’를 쓴다.
  제 아무리 영어를 모르고는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일지라도 미국에서는 통하지도 않는 영어가 순우리말보다 더 대접받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4) 컬러링(color ring) → 멋울림

  통화 연결음을 기존의 단순한 기계음 대신에 음악이나 음향 효과음으로 바꾸는 일을 가리키는 ‘컬러링’은 원래 우리나라의 한 통신회사가 지은 상품명이다. 그래서 다른 통신회사에서는 같은 상품을 ‘필링(feel ring)’이나 ‘콜러링(caller ring)’과 같이 이름 붙여서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영어로만 그럴싸하게 보이려는 거대 통신회사들의 행태가 참 못마땅하다.
  어쨌든, ‘필링’이나 ‘콜러링’은 잠깐 쓰이다 말고 이제는 ‘컬러링’이 보통명사가 되어 버려서 ‘음악이 나오는 통화 연결음’ 하면 으레 ‘컬러링’이라고 하는데, 이는 고유한 상표 이름이었던 ‘바바리’나 ‘나일론’이 지금은 보통명사로 확대되어 쓰이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바바리’나 ‘나일론’은 본래 외국에서 비롯한 말이니까 어쩔 수 없지만 ‘컬러링’은 우리가 만들어 쓰고 있는 말이다. 한 통신회사의 고유한 상표 이름이야 어떤 말을 만들어 쓰건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이것이 국어사전에도 오를 수 있는 보통명사가 될지도 모른다면 상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컬러링’을 ‘멋울림’으로 다듬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소리를 멋스럽게 울린다는 뜻으로 지은 말인 ‘멋울림’은 ‘컬러링’에 비해 뜻도 분명하게 전달되고 운치도 느껴져서 잘 다듬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말터’에서는 상표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포스트잇(Post-it)’도 ‘붙임쪽지’로 다듬었다. 이 말도 널리 쓰이길 바란다.

  (5) 클린 센터(clean center) → 청백리마당

  칠순이 다 되신 글쓴이의 어머니는 ‘엘리베이터’를 ‘에레베타’라고 하신다. ‘에스컬레이터’는 ‘에스카레타’라고 하신다. ‘승강기’나 ‘자동계단’이 널리 쓰이고 있다면 그 어려운 영어 발음을 안 하셔도 될 터인데 참 쓸데없는 고생을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구청 어딘가에 적혀 있을 ‘클린 센터’도 우리 어머니는 ‘크린쎈타’라고 발음하시면서 “저게 뭐하는 곳이냐?”라고 물어보실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글쓴이의 조카는 글쓴이보다 더 정확하게 영어 발음을 구사한다. 그러니 이런 아이들에게 ‘승강기’나 ‘자동계단’은 쓸데없는 말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글쓴이의 조카는 ‘클린 센터’를 청소하는 곳으로 착각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공공기관은 글쓴이의 어머니나 조카처럼 우리 사회에서 언어적으로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공무원들끼리만, 또는 좀 배운 사람들끼리만 알 수 있도록 말을 쓰고 적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몇 해 전부터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클린 센터’라는 이름을 ‘청백리마당’으로 다듬은 것은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청백리(淸白吏)’란 원래 조선 시대에 이품 이상의 당상관과 사헌부·사간원의 장들이 추천하여 뽑던 청렴한 벼슬아치를 이르던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이 곧고 깨끗한 관리’를 가리키는 말로 확대되어 쓰이고 있다. 그래서 ‘청백리마당’이라고 하면 ‘클린 센터’의 기능을 손쉽게 연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잘 다듬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글쓴이의 조카가 ‘청백리마당’이라는 표지를 보면서 청소하는 곳으로 오해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