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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희영(성미산학교)
   한 달 전쯤이었나? 7학년 제옹이가 라디오 프로젝트 과제라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내심 귀찮은 마음도 있고 다른 할 일이 있기도 해서 거절하려는데 꼭 해 주셔야 한다며 나를 자리에 앉혔다. 어떻게 인터뷰에 응하면 되냐고 물었더니 “그냥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하시면 돼요”라고 말하며 녹음 준비에 여념이 없다. 어떤 질문이 나올지 걱정이 되어 약간 긴장을 한 채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녹음이 제대로 되지 않아 똑같은 질문만 세 번째! 슬슬 장난기가 발동했다.
   “여 쌤, 다시 할게요. 죄송해요. 이번엔 진짜예요! 흠흠. (목소리 변조)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제 이름은 여희영이구요, 학교에서는 여 쌤, 여희, 마빡이, 문빡이로 불려요. 저 개인적으로는 밤에 피는 장미라고 불러 주는 게 제일 좋아요.”
   “여 쌤! 선생님이란 직업 마음에 드세요?”
   “뭐, 괜찮은 거 같아요.”
   “학생들은 어떠세요?”
   “예쁘죠! 말은 지지리 안 듣는데요. 되게 재미있어요! 예뻐요!”
   “어떨 때 제일 힘드세요?”
   “배고플 때. 아침에 밥 안 먹고 수업할 때요. 흑흑!”
   “힘들 때 어떻게 푸세요?”
   “이거 비밀인데…, 흐음! 전 고스톱을 해요”
   “(킥킥거리며) 학생들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하하하! 음…, 29살짜리 남자들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학생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시겠어요?”
   “얘들아! 삼촌 있으면 전화번호 넘겨라!”
   이 대목에서 제옹이와 나는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웃다가 꺽꺽거리며 “여 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시면 해 주세요.”라고 하며 제옹이는 서둘러 인터뷰를 마무리하려 한다.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 진지하게 갈 것인가? 가던 대로 갈 것인가? 에라 모르겠다! “아까 29살짜리 남자라고 했는데요. 32살짜리 남자로 바뀌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동갑은 싫거든요!”
   인터뷰를 끝내고 교무실로 돌아오는데 뭔가 뒷맛이 씁쓸하다. 여 쌤이라고 불린 지도 1년 반이 다 되어 가는데 아이들하고 있으면 학생인지 선생인지, 애인지 어른인지 여전히 분간이 안 가는 이 상황! 2번의 방학을 마치고 개학하면서, 아침에 출근하며 매일같이 ‘오늘은 학교에 가서 실없는 농담을 하지 말아야지!’ 하고 굳게 다짐을 하는데, 막상 아이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다. 매번 머리를 치며 아차 하는데도 내가 꿈꾸는 카리스마 넘치는 교사가 되는 길은 정말 어렵고 멀다. 사실 카리스마 넘치는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을 전혀 안 한 것도 아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눈빛 한 번, 말 한마디로 확 휘어잡을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하고, 경험이 많은 다른 선생님들에게 이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몇몇 선생님들이 경험에서 나온 몇 가지 요령을 알려주면 살짝 혼자 연습도 해보지만 결론은 늘 ‘이건 너무 어색해’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생긴 대로 살아야지!’라는 말이 생각나며 ‘아이들하고 함께 뒹굴고, 즐겁고 편안하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잖아!’ 하고 만다.
   사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카리스마 하나도 없는 교사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어 늘 즐겁고 행복했다. 9학년(중학교 3학년) 말랑한 남학생 하나가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엄마’라고 부를 때의 그 기분. “여 쌤! U&I 수업 너무 재미있어요! 근데 남자 친구 빨리 만드세요! 도대체 언제 결혼하실 거예요? 내년이면 노처녀라구요!”라며 구박인지 걱정인지 모를 말들을 전할 때의 그 기분. “여 쌤 싸랑해요! 앞으로도 잘 놀아주세요! 여 쌤은요, 스스로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선생님 같아요.” 요 녀석들의 이야기들, 이야기들….
   말로는 “아이들이 있으면 전쟁이요, 아이들이 없으면 그 어떤 곳이라도 평화!”라고 부르짖고 다니지만 아이들이 없으면 심심하고, 아이들하고 있을 때 더 편안하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대단한 지식을 전해주지도 못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다 주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뿐인가? 어쩌면 나는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내가 꿈꾸는 카리스마 넘치는 교사가 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이 영글어 가듯 나도 여선생으로 영글어 갈 것을 믿는다.
   즐겁게 아이들에게 푹 빠져 1년을 지내고 이제 겨우 ‘나는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 걸까?’ ‘나는 지금 어떤 교사지?’라고 질문하기 시작한 지금, 갈 길 모르고 어리바리 헤매는 새내기 교사지만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 설레고 말 한마디에 좌절하는 그 마음 그대로 많이 듣고, 배우고, 나누면서 여 선생만의 작은 길을 만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작년 이맘때 있었던 대화다.
   "여 쌤!”
   “응?”
   “근데요, 내년에도 있을 거죠?”
   “응, 그럴걸?”
   “와! 대단하다! 우리를 견디다니!”
   “야! 너네들을 내가 왜 견뎌! 난 이번 학기 진짜 재미있었는데! 잘해줘서 고마워!”
   “근데요, 지금까지 우리를 한 학기 넘게 견딘 통합 교사는 없었어요.”
   “킥킥! 내가 좀 독해!”
   “다행이다. 9학년들 졸업해서 외로울 뻔했는데 여 쌤이 있어서….”
   탁구공 같은 남자아이들 입에서 나온 예쁜 말 때문에 가슴이 설레었다. ‘너희들 때문에 내가 살아! 철없는 여 선생 파이팅!’